[박재현의 한발 멀리서] 위기 대책이 또 다른 위기를 부를 수 있다

박재현 기자 2022. 6. 1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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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일상을 짓눌렀던 지난 2년, 엔데믹이 되면 일상회복과 더불어 경제도 활기를 띠리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지금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 공포에 떨고 있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풀었던 유동성이 물가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연임을 위해 유동성 회수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비난이 커져가던 올해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돌발 변수까지 겹치며 공급 부족과 물가 상승은 더욱 심해졌다. 물가는 오르는데 성장까지 후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도 커지고 있다.

박재현 콘텐츠랩부문장

인플레이션 공포에 금융시장은 크게 휘청였다. ‘블랙먼데이’였던 지난 13일 코스피는 3.52% 폭락하면서 간신히 2500선에 턱걸이했다가 바로 다음날 1년7개월 만에 2500선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원·달러 환율은 월요일 하루에만 15.1원 급등하는 등 달러당 1300원을 위협하고 있다.

이 같은 경제 불안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ℓ당 2000원을 넘기며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대표적 공공요금인 도시가스와 전기 요금 인상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이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가계부채가 1900조원에 달하는 여건에서 금리 상승은 취약계층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증가시킨다. 또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하락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고조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등 대외 환경 악화는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는 불확실성을 높인다.

윤석열 대통령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처럼 우리 경제는 “복합 위기”에 처해 있다. 엄중한 비상시국이라는 의미다. 국가적 역량을 결집해 특단의 대책을 신속하게 수립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이견이 있을 리 없다. 다만 위기 극복이 물가 상승률을 낮추고 주가 및 환율의 급격한 변동성을 줄이는, 외형적인 ‘숫자 안정’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경제위기 너머 양극화와 불평등의 문제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인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미국 정부는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금융회사에 지원금으로 투입했다.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 실행으로 금융위기를 넘겼지만 정작 위기를 일으킨 금융사 경영진은 자신들의 보너스를 늘리며 ‘돈잔치’를 벌였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 2011년 9월17일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다.

이명박 정부도 출범 직후부터 불어닥친 경제위기를 수출로 살리겠다며 고환율 정책을 펼쳤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로 위기의 정점을 넘겼지만 고환율 정책 이면에는 물가 상승에 따른 서민들의 고통이 있었다. 정부가 위기 극복의 과실을 삼성전자, 현대차 등 수출 대기업에 몰아준 셈이다.

지금도 물가 상승으로 인한 고통은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에 집중된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지난 1분기 소득 하위 20% 계층의 가처분소득 대비 식료품·외식비 지출 비중은 42.2%에 달한다. 소득 상위 20%의 식비 지출은 가처분소득의 13.2%에 불과했다. 은행 금리가 오르자 무주택 전세가구의 이자 부담이 23% 증가했고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7%가 되면 월급의 70%를 빚 갚는 데 쓰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집을 산 사람들 사이에서는 “빚 갚느라 등골이 휜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는 위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살펴보면 그 혜택이 부자들에게 돌아갈 것들이 많다. 대기업 법인세·상속세 인하 등 각종 부자감세 정책들은 오히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시중 유동성이 세금으로 회수되는 기회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서민 대책이지만 실상은 부자감세인 경우도 있다. 지난달 30일 발표한 ‘긴급 민생 안정 10대 프로젝트’의 핵심은 결국 고가 주택의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었다. 16일 발표한 새 경제정책방향 역시 대기업과 다주택자 감세의 출발점으로 읽힌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고통을 어떻게 나눌지 정치권의 진지한 고민과 세심한 정부 정책이 필요한 시기다. 지금 당·정·대에서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위기 극복 대책이 또 다른 위기를 낳는 악순환은 이제 그만 봤으면 한다.

박재현 콘텐츠랩부문장 park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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