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철거 요청하러 오는 한국인에 대한 독일의 반응 [이유진의 어떤 독일]

이유진 2022. 6. 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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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어떤 독일] 베를린행 한국 극우파가 가야할 곳

[이유진 기자]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독일 라이프치히대 연극학과 학생들
ⓒ 이유진
지난 18일 폭염 경보가 내린 독일 라이프치히. 도시의 연례행사인 여성페스티벌(Frauenfestival)이 열리는 광장 한쪽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대여섯 명의 대학생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싸고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광장을 휘젓는 몸짓은 조용하고 낯설다. 학생들의 몸짓과 표정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군 '위안부' 주제 부스로 발걸음을 이끈다.

부스에는 독일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소녀상 스티커와 배지가 있다. 다양한 인종과 성별의 사람들이 소녀상 옆에 함께 앉아있는 모습이다. 이 창의적인 작업은 라이프치히대 학제간 연구 프로젝트 '포스트식민주의 기억 작업, 트랜스내셔널 여성주의'의 일환이다.

독일 평화의 소녀상, 라이프치히대 학제간 연구로 발전

프로젝트 기획자는 라이프치히대 일본학과 슈테피 리히터(Dr. Steffi Richter) 교수와 도로테아 믈라데노바(Dorothea Mladenova) 교수다. 지난 4월부터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초청해 강연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주제는 일본군 '위안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 전쟁에서의 성폭력과 트랜스내셔널 여성주의 네트워크
- '전쟁은 여성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후기 소비에트 시기 기억문화
- 유럽과 아시아에서 2차 세계대전 성폭력을 다루는 데 있어 공통점과 차이점
- 2차 세계대전 당시 라이프치히 여성 강제 노동자 – 착취와 자기주장 사이
- 법정책적 대화. '위안부' 전쟁 중 성폭력과 법적 청산의 가능성
- 국제법적 관점에서의 '위안부'

독일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힘을 얻는 것은 이처럼 담론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로 시작된 토론은 라이프치히에서 발생한 강제 성노동의 역사로, 전쟁 중 성폭력 범죄로 확장된다. 학제간 프로젝트를 이끄는 리히터 교수는 "전쟁중 성폭력 범죄는 한일 역사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금 이순간 우크라이나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며 현재성을 강조했다.

"평화의 상은 글로벌하지만 동시에 지역화되었습니다." 프로젝트에 함께 하는 라이프치히대 연극학과 베로니카 다리안(Dr. Veronika Darian) 교수의 말이다. 평화의 소녀상을 계기로 라이프치히 지역의 유사한 역사를 다루게 되었다는 의미다. 독일은 다시 자신의 역사를 돌아본다.
  
 독일 라이프치히대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평화의 소녀상 시각 프로젝트. 독일 평화의 소녀상은 한일관계를 넘어 현지의 맥락에서 보편성을 얻는다.
ⓒ 이유진
라이프치히대 일본학과의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어김없이 일본 극우파들의 이메일과 편지가 학교에 쏟아졌다. 리히터 교수의 입장은 단호하고, 분명하다.  "저희는 학술적으로 다룹니다." 일본의 퇴행적인 역사수정주의에 맞대응하지 않는다. 교수로서 학자로서 할 일을 할 뿐이다.
라이프치히 대학도 이날 행사를 소셜미디어에 공지하면서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일본 극우파들의 집단행동에 불편할 법도,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대학의 선택은 달랐다. 일본군 '위안부' 개념부터 관련 역사, 독일 내 평화의 소녀상 담론, 학제간 프로젝트, 학생들의 공연 프로그램을 상세하게 전했다. 대학 홈페이지에도 프로젝트가 크게 소개됐다.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 홈페이지 메인에 소개된 학제간 프로젝트 및 여성페스티벌 참여 프로그램 "전쟁중 성폭력 중점-군 '위안부'-빈 곳을 바라보는 소녀".
ⓒ uni-leipzig.de
평화의 소녀상은 독일에서 탈국가적 보편성과 지역성을 확보했다. 한일관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베를린의 경우 (전쟁 중) 여성 성폭력에 대한 보편적인 상징, 시민 연대의 상징으로 확장됐다. 소녀상의 일차적 표현 방식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지만, 그것도 그리 중요치 않은 상황이 됐다. 

리히터 교수는 대학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는 동아시아나 과거에 한정되지 않는다. 국가적인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라면서 "그보다는 전쟁과 폭력적인 충돌에서 반복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의 한 종류이며, 우리가 알고 싶은 그 메커니즘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이어 "담론의 복잡성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관점이 필요하다"며 "사회에서 이 주제가 어떻게 기억문화의 일부가 되는지, 역사수정주의나 역사적 사실 부정에 대해 국가와 시민사회 활동가, 학자, 법적 판단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역사 부정론자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
 
 6월 18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여성페스티벌에 소개된 평화의 소녀상. 라이프치히대 일본학과 슈테피 리히터 교수와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
ⓒ 이유진
이날 라이프치히 행사는 한국의 극우파 몇몇이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러 독일에 온다는 소식이 나온 직후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관련기사 : '소녀상' 철거 요청하러 독일 가는 한국인, 반기는 일본 극우)
독일의 반응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절레절레.' 익숙하다는 표정이다. 역사를 부정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도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 있다. 독일은 역사부정론자들에 이골이 났다. 이들이 존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독일이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공공장소에서 역사를 부정하면 형사 처벌을 받는다는 점이다.
 
'독일 형법 제130조 국민선동'

3항. 국가사회주의(나치) 지배 하에서 범해진 국제형법 제6조 제1항에서 규정된 종류의 행위를 공공의 평온을 교란하기에 적합한 방법으로 공연히 또는 집회에서 동의하거나, 부인하거나, 위험성을 경시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
 
4항. 공연히 또는 집회에서 국가사회주의(나치)의 폭력적이고 자의적 지배에 동의하거나 찬양하거나 정당화함으로써 피해자의 존엄을 침해하는 방법으로 공공의 평온을 교란한 자는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으로 처벌한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념비 앞에서 나치 부정론자들의 집회나 시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독일에서 유튜브 채널도, 후원 계좌를 운영할 수도 없다. 

홀로코스트 역사에서도 수많은 개인들의 다른 삶이 있었다. 나치 부역자도 있었고, 빵 한 조각에 같은 피해자를 팔아먹는 이들도 있었다. 유대인을 도왔던 독일인도 많았다. 이 모든 복잡성 속에서도 나치 역사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는 분명하다. 

끊임없는 역사 반성, 끊임없는 사과. 역사 부정론자들에 대한 단호한 대처와 처벌. 교육과 문화를 통해 세대를 넘어 계속되는 기억. 사안을 분절화해서 역사를 호도하지 않는다. 나치 반성에 몰두한 탓(?)에 이전의 제국주의 역사 반성이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는 정도다. 독일이 나치 역사를 짊어지고도 국제 사회에서 존중받고 평가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극우파가 독일 와서 가야 할 곳 

이런 곳에서 일본 제국주의 역사를 부정하겠다니, 번지수가 틀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게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 것도 현지의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대처였다. 한일관계에 고립되어 있는 건 오히려 그들이다. 

비싼 비행기표로 이왕 오는 김에 베를린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념비에 가 보기를 추천한다. 독일이 역사 반성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역사 부정론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고 있는지 보고 배울 수 있기를. 주소는 '코라 베를리너 길 1번지(Cora-Berliner-Straße 1, 10117 Berlin)'. 참고로 코라 베를리너는 나치 범죄 희생자의 이름이다. 

그 사이 독일 대학과 학생들,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현지 단체와 시민들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것이다. 

*참고 :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코리아협의회의 연재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사람들'에 소개돼 있다. http://omn.kr/1xbs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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