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31년 만에 내무부 시절 경찰지휘조직 부활 추진..경찰 직접 통제 시도에 반발 확산되나

김기범 기자 2022. 6. 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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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으로 커질 경찰 권한 통제 취지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국회 패싱 꼼수
한창섭 차관 "권고안 토대로 충실히 추진"
행정안전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의 경찰 통제 방안 권고안 발표가 예정된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 경찰국 신설 반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가 31년 만에 경찰을 직접 지휘하기 위한 조직을 만드는 내용이 포함된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 위원회에서 논의해온 경찰 통제 방안에 대해 정부의 경찰 장악 시도라고 비판해온 경찰과 야당, 시민단체 등은 더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행안부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 공동위원장인 한창섭 행안부 차관과 황정근 변호사는 2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찰 통제 방안 권고안을 발표하고, 기자 브리핑을 진행했다. 한 차관을 포함한 행안부 공무원 2명, 경찰 1명, 민간위원 6명으로 이뤄진 자문위는 지난달 13일 이후 4차례 회의에서 경찰 조직, 인사, 징계·감찰 등 방안을 논의해 왔다.

자문위 권고안은 기존에 알려졌던 대로 행안부 내에 과거 내무부 시절의 경찰국처럼 경찰을 통제하기 위한 조직을 신설하는 방안과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 제정, 고위직 경찰공무원에 대한 후보추천위원회 등 설치, 대통령 직속 경찰개혁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자문위는 권고안에서 경찰의 민주적 관리·운영을 위한 방안으로 우선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지원조직을 신설하도록 권고했다. 자문위는 그 근거로 정부조직법, 경찰법 등은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과 관련해 법령 발의·제안, 소속청장 지휘, 인사 제청, 국가경찰위원회 안건 부의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지만 현재 행안부 내에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조직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다만 자문위는 경찰 관련 신설조직의 명칭으로 ‘경찰국’, ‘경찰정책관’ 등의 구체적인 명칭 대신 ‘경찰 지원조직’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사용했다.

경찰국이 사라진 것은 내무부 시절이었던 1991년 경찰법 제정에 따라 경찰청이 행안부 외청으로 독립하면서부터다. 당시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서 내무부 장관 권한 가운데 치안 사무도 삭제됐다.

자문위는 또 정부조직법상 소속청을 두고 있는 기획재정부 등 7개 부처도 관련 지휘 규칙을 제정·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경찰청장 지휘 규칙을 제정하도록 권고했다.

자문위는 경찰 인사 절차의 투명화를 위해서는 경찰청장, 국가수사본부장 등 총경 이상 고위직 경찰공무원에 대한 후보추천위원회 또는 제청자문위원회 등을 설치하도록 권고했다. 감찰 및 징계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경찰청장을 포함한 고위직 경찰공무원의 징계 요구 등 관련 절차를 개선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자문위는 경찰청장 징계에 대해 “경찰청장이 스스로 자신의 징계를 요구해야 징계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라면서 “경찰청장을 포함한 일정 직급 이상의 고위직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는 행안부 장관에게 징계 요구권을 부여할 것”을 권고했다.

이는 행안부가 경찰 인사는 물론 감찰과 징계까지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보니 경찰이 특히 강하게 반발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경찰청장이나 국가수사본부장은 개별 규정이 있고, 총경 이상의 임명은 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행안부 장관이 제청하게 돼 있다”며 “제청 행사에서 필요한 그런 기능을 수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황 변호사는 “행안부 장관이 총경 이상의 인사제청권 있다는 게 경찰공무원법에 나와 있기 때문에 그 제청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건데, 그동안 제청권을 행사했는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방안은 대체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커질 경찰 권한을 통제하기 위해 행안부가 외청인 경찰청을 통제하기 위한 취지로 보인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회의 법 개정이 필요 없고 국무회의 의결사항인 시행령 개정만으로 시행이 가능하다.

법률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등은 자문위의 이같은 권고안에 대해 정부조직법 상 행안부 장관 사무에 치안 등 경찰 관련 내용이 없는 상황에서 행안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경찰 통제를 추진하는 것은 국회 패싱을 위한 꼼수라고 비판하고 있다. 경찰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지휘 권한을 추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찰법 제정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자 경찰 민주화에 반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경찰개혁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안부의 경찰 통제 권한이 강화될수록 경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은 약화하고, 경찰이 정치 권력에 직접적으로 종속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네트워크는 “자문위 권고는 경찰 권한을 축소하거나 분산하는 방안을 장기과제로 미루고, 대통령-행안부-경찰청장으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지휘라인을 부활시켜 정치권력이 경찰을 직접 통제할 방안을 논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네트워크는 “경찰개혁을 행안부 비공개 자문위원회가 좌우해서는 안 된다”며 “자문위라는 형식만 거쳤을 뿐 밀실에서 논의된 내용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권고안에는 경찰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당근책으로 수사역량 강화를 위한 인력 확충, 계급정년제 및 복수직급제 개선, 순경 등 일반출신 경찰공무원의 고위직 승진 확대, 처우 개선 등의 방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현재 언급된 당근책만으로는 경찰의 집단 반발을 잠재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퇴임을 앞둔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20일 “경찰법 정신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자문위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경찰청 자문기구인 경찰청 인권위원회는 행안부 자문위원회의 경찰 통제 방안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자문위는 또 경찰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발전방안 마련을 위해 대통령 소속으로 ‘경찰제도발전위원회’(가칭)를 설치할 것을 건의했다. 자문위는 경찰제도발전위에서 논의할 사안들로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장관 사무에 경찰 관련 사항 명확화, 사법·행정경찰 구분, 정보경찰 기능 범위 제한, 국가경찰위 사무수행부서 행안부로 이관 등이 논의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날 발표된 내용은 자문위 권고안이라는 형식을 띠기는 했지만 차관과 기획조정실장이 자문위에 포함돼 만든 내용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행안부 안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권고안 내용에 대한 향후 계획에 대해 “장관 보고 후 바로 시행할 수 있는 사항은 일정한 절차를 거쳐 바로 시행하고, 법률 개정 사항은 경찰제도발전위원회에 상정해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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