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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민일보

[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5. 인제 금성여인숙

진교원 입력 2022. 06. 2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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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행지 낡은 간판 아래 낯익은 추억들이 모이는 곳
58년째 인제찾는 사람에게 휴식 제공
현재 2층 건물 방 9개 곳곳 옛 모습
방에는 TV·에어컨 편의시설 완비
극단 미인, 금성여인숙 모티브로 공연
인제 천리길 고객들의 하루 잠자리
전국 방방곡곡 다양한 이야기 서린 곳

‘여인숙(旅人宿)’.

그 이름이 다소 생소한 여인숙은

도시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희로애락이 담긴 공간이다.

고된 삶을 이어가던 서민의 둥지로,

부초처럼 떠도는 인생의 안식처로,

가출한 학생의 도피처로,

한밤 사랑을 꿈꾸는 애정의 공간으로, 그리고 수 많은 달방을 원하는

사람의 집으로,

접경지역인 인제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아들을 만나러 온 면회객의 휴식처로…


여인숙은 때로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땀을 섞으며 대화하는

온기 가득한 곳이었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이 짓누르는

애잔한 사연이 깃든

뒷골목의 생존의 터이기도 했다.

▲ 인제 금성여인숙 방문객 모습. 인제 천리길 하루 일정 중 하나로 여행객들의 반응이 좋다.

인제에 그 당시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관이 있다.

인제읍의 ‘금성여인숙’ 이 여인숙은 2층 건물로 방은 9개. 우리나라 여인숙의 역사를 말해주듯이 옛 모습 그대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금성여인숙 주인은 강북섭(81·여) 씨.

지난 8일 강 씨를 만나러 갔다.

“똑똑똑, 계십니까?”

1층 카운터로 들어가는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다. 여인숙 안으로 들어서니 좌측벽에는 1972년 영업 허가서가 가장 먼저 보인다. 그 아래쪽에는 작은 칠판과 머리빗 등이 진열된 잡동사니 탁상이 놓여 있다. 몇발짝 더 들어서니 로비같은 공간이 보이고 2층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벽면으로 인제의용소방대 사진이 걸려 있다.(남편인 이상주(84)씨가 의용소방대 출신이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모습을 보였다. 첫 인상은 마음씨 좋은 아줌마였다. 강 씨의 고향은 충남 예산. 16살 되던 해인 1957년쯤 부모를 따라 인제읍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강 씨의 어머니는 인제에 오면서 여인숙을 시작했고, 광천여인숙을 거쳐 삼성여인숙을 운영하다가 작고하셨다. 강 씨는 횡성 갑천면으로 시집을 갔다. ‘깡촌 중에 깡촌’,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33세때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큰 아들(2022년 62살)이 4살때인 1964년 인제로 다시 이사를 왔다. 그리고 4남매의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여인숙을 시작했다고 한다.

▲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금성여인숙 방.

“자식 키우고 먹고 살기 위해 인제로 왔죠. 어머니의 피를 이어 받아서인지 여인숙을 시작했어요. 거의 58년쯤 됐네요. 처음에는 무허가로 하다가 벌금도 받고 그랬죠. 그래서 지난 1972년에 정식 허가를 냈어요. 처음 여인숙을 할 때는 1층이었는데 말이 집이지 흙벽집이었죠. 비가 새서 미군부대에서 자재를 얻어다 지붕도 하고……. 10년뒤인 1990년에 벽돌집을 짓고, 그 다음해에는 2층으로 올렸죠. 그리고 15년전에 다시 리모델링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어요.”

강 씨는 이제는 옛날 생각이 가물하다고 한다. 심장도 나쁘고, 관절도 아프고 온 몸이 종합병원이란다. 그래도 웃음 띤 얼굴에서 건강한 기운이 보인다. 남편 이 씨는 옆에서 보충 설명에 바쁘다. 하룻밤 여인숙 비용은 보통 3만원. 달방은 침대 큰방은 50만원, 온돌 작은방은 40만원. 연료비 등을 제하고 나면 크게 남는 것은 없다. 금성연인숙도 코로나19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손님도 급격히 줄었다. 자식에게 손을 빌리지 않기 위해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강 씨가 하나둘 추억을 끄집어낸다.

“1973년도인가, 누가 맡긴 돈을 잠시 찬장 반찬통에 넣어뒀는데 도둑이 훔쳐갔어요.그때 13만6000원이면 큰 돈인데…내가 갚았죠. 또 송이캐러 온 사람이 숙식하고 몰래 도망가고, 부모 산소왔다는 사람이 2번씩이나 달아나고, 공사판에 왔다가 숙박료 안내고 줄행랑 치고, 술 먹고 방을 다 부수고 도망가고……. 에휴, 별일이 많았죠. 방물장수나 소금장수, 떠돌이 약장수 등이 장날에 맞춰 찾아 왔지요. 전국에서 자식 면회 온 가족들이 밥해 먹고 쉬고 갔죠. 쎄가 빠지게 몸은 힘들었지만 그 시절이 좋았지요. 인정도 넘치고, 나름대로 행복한 시절이었죠.”

‘ㅁ’자형 여인숙 방에는 화장실, TV, 욕실이 딸려 있다. 에어컨도 있다. 강씨의 손길이 수 없이 닿았을 것으로 보이는 빗과 이불도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돈은 많이 벌었는지를 강 씨에 물었다. “아이고, 돈은 못 벌었어도 자식들 잘 키웠으면 됐다”는 강 씨의 간단 명료한 답이다.

▲ 금성여인숙 이상주·강북섭 씨 부부

금성여인숙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극단 미인과 인제 천리길의 역할이 컸다.

극단 미인은 지난해 12월9일~19일까지 서울 혜화동 1번지 소극장 무대에 올린 낭독 공연 몽신몽신 프로젝트4 중 하나로 금성여인숙(연출 김수희)을 선보였다. 인제 금성여인숙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극속에서 여인숙 주인인 강부민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여인숙을 운영하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아들 내외와 싸우고는 충동적으로 아무 버스나 타고 이동한 유순희는 인제에 도착하고 버스 기사에게 아주 저렴한 숙소를 물어 금성여인숙에 묵게 된다. 일용직 노동자, 드랙 아티스트, 송이 캐는 사람 등 각기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함께 지내고 있다. 모두 함께 모여 막걸리 한잔을 걸치려는 순간,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으로 인해 여인숙에서 자가격리를 하게 된다. 이 공연은 지난 10일 금성여인숙 골목에서 열린 옥스팜 트레일워커 맞이 골목 문화제에서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또 인제 천리길의 게스트하우스 같은 장소다. 인제 천리길의 김호진 대표는 천리길 고객들을 금성여인숙에서 재운다. 김 대표는 “하루 일정을 금성여인숙에서 보내는데, 여행객들이 아주 좋아한다. 편하고 안락하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금성여인숙 2층 한방에는 지난해 6월부터 장기 투숙하면서 작품 활동중인 ‘꼬부랑게하’의 주인공 강영민 작가가 있다.

나그네들의 하룻밤 보금자리였던 금성여인숙은 전국 방방곡곡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여인숙이었던 시절, 손님들이 묵었던 각각의 방에는 금성의 지나온 시간들이 잠자고 있다. 누군가는 젊은날의 추억이, 또 누군가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추억이 되고 있다. 그렇게 남긴 흔적이 모여 기록으로 남긴 공간이 금성여인숙이 아닐까. 진교원 kwchine@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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