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신문고' 역사 속으로..'국민제안' 성공 조건은?

조태흠 입력 2022. 6. 2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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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오늘(23일) '국민제안'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국민 소통 창구를 열었습니다. 임기 종료와 함께 운영도 중단됐던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이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 현대판 '신문고'…'청와대 국민청원'의 명암

'청와대 국민청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취임 100일이던 지난 2017년 8월 문을 열었습니다. 누구나 청원을 올릴 수 있고 30일 안에 20만 개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청와대나 정부 책임자가 직접 답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억울하다'는 사연부터, 각종 정책에 대한 제안, 갈등 중인 현안에 대한 주장까지 5년 동안 111만여 건, 하루 평균 670건의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누적 방문객은 5억 명을 넘어섰습니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에 민원을 직접·어렵지 않게 호소할 수 있고, 채택되면 책임자가 직접 답한다는 '정치적 효능감'이 주효했습니다. '국민청원'에서 관심을 받은 민원은 자연스레 공론화되다 보니, '국민청원' 자체가 일종의 공론장, 때로는 정치권 대결의 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은 '국민청원'은, 그래서 현대판 '신문고'로 불렸습니다. 스스로 '세상을 바꾼 국민청원 5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가장 많은 동의를 받았던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청원은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 개정을 이끌어내 말 그대로 세상을 바꿨습니다.

음주운전 피해자인 故 윤창호 씨 관련 청원은 음주운전 처벌 강화 여론을 불러왔고, 이른바 '윤창호법' 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수술실 CCTV 설치 등도 '국민청원'이라는 공론장에서 시작됐습니다.

'국민청원'이 빛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무리하거나 심지어 황당한 청원도 적지 않았습니다.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될 뻔했을 때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탄핵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로 판사를 탄핵해 달라는 청원도 있었습니다. 2019년 이른바 국회 패스트트랙 사태 때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해산시켜달라는 청원이 경쟁적으로 올라왔습니다. 젠더 문제, 난민 문제 등이 이슈가 됐을 때는 상대에 대한 혐오 섞인 청원도 있었습니다.

더 많은 동의를 얻으면 상대를 이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국민청원' 자체가 거대한 세력 대결의 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다른 의견'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민주주의이지만, '국민청원'은 애초에 이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분열과 갈등이 이곳에서 더 뾰족하게 드러나고 커지기도 했습니다.

■ 윤석열 정부 '국민제안' 개설…"청원 비공개·실명제"


윤석열 정부의 소통 창구 '국민제안'은 '국민청원'의 이런 문제를 보완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밝힌 새 소통 창구 '국민제안'의 원칙은 네 가지입니다. ▲관련 법률에 따른 민원 비공개 ▲여론조작 방지를 위한 100% 실명제 ▲특정 단체나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댓글 제한 ▲책임지고 답변하는 민원 책임 처리제 등입니다.

대통령실의 국민 소통 창구가 '여론 대결의 장'이 되지 않도록 비공개·댓글 제한을 하고, '국민청원'이 20만 개의 동의를 받기 위해 매크로 등 여론 조작을 했다는 논란이 있었던 만큼 이를 막기 위해 실명제를 하고, 많은 동의를 얻지 못한 민원도 책임지고 답변하겠다는 것입니다.

강 수석은 "'청와대 국민청원'은 민원 및 청원법을 근거로 하지 않아 처리 기한에 법적 근거가 없었고, 답변도 20만 건 이상의 동의 건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답변하면서 대다수 민원은 답변을 받지 못한 채 사장된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국민청원' 폐지를 선언했습니다.

'국민청원'의 문제로 지적되는 여론 대결·여론 조작 등은, 어찌 보면 많은 의견과 관심이 쏠린 데 따른 것일 수 있습니다. 자칫 문제를 없애려다 장점마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새 정부 '국민제안'의 성공 여부는 '국민청원'의 문제점은 보완하면서, 정치적 효능감·공론장 역할이라는 장점은 살려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접수된 국민제안 가운데 민관 심사위원이 '우수 제안'으로 선정한 제안은 온라인 투표를 통해 국정 운영 등에 반영하고, 매달 주제를 정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이벤트도 실시하겠다고 했습니다. 부작용은 줄이면서 관심과 정치적 효능감 등은 이어가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대통령실 '국민제안'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서 방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epeople.go.kr/nep/withpeople/index.npaid)

조태흠 기자 (jote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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