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마다 울린 고환율 시그널.. 기업도 가계도 초비상 [뉴스 투데이]

이도형 2022. 6. 2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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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고공행진
구제금융·닷컴버블·금융위기 당시
경제위기 시작 알리는 신호 역할
파월 美 연준의장 "경기침체" 언급
안전자산 달러 선호현상 급가속
당분간 고환율.. 1350원 전망까지
원·달러 격차 클수록 고물가 심화
달러로 대금지불 항공업계 직격탄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미국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최근 미 달러화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에 힘입어 원화는 물론, 엔화나 금 등 전통적인 안전자산들에 비해 두드러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원·달러 환율이 13년 만에 처음으로 1300원을 돌파하자 한국 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치솟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300원 위에서 움직인 것은 역대로 봐도 세 차례에 불과했고, 그때마다 한국 경제는 위기 국면이었다는 기시감에서다. 고물가·고금리 속에 고환율까지 엄습하자 복합위기 공포감에 기업이나 가계 모두 초비상이다.

◆‘경제위기 시금석’이었던 환율 1300원

1990년대 이후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섰던 사례들은 대부분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환율이 2000원 선 가까이 치솟은 바 있고, 1998년까지 장기간 환율이 1300원 이상에 머물렀다. 이어 2001∼2002년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에 따른 엔저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한동안 달러당 1300원대에 머물렀다. 이후 2000년대 중후반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900원대까지 떨어졌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2008∼2009년 다시 1300원 위로 치솟은 바 있다.

13년 만에 다시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선 건 경기침체 우려가 강해지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가 상승함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2일(현지시간) 미 의회 청문회에서 “(경기침체는) 우리가 의도하는 결과는 아니지만 분명히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이날 통화에서 “국내총생산(GDP)이나 산업활동동향, 수출 등을 보면 아직은 경기침체는 아니지만 하반기로 가면 갈수록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고환율이 물가상승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6일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5월 수입물가지수(2015년 수준 100)는 원화 기준으로 전년 동월 대비 36.3% 상승했는데, 계약통화 기준으로는 23.1%, 달러 기준으로는 20.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며 오름폭이 더 작았다. 전년 동월 대비 원화지수와 계약통화지수 간 격차는 지난 2월 8%포인트에서 5월 13.2%포인트로 점점 벌어지고 있다. 달러를 비롯한 계약통화로 결제한 뒤 원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물가 오름폭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 가능성이 한층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1350원까지 치솟나… 기업들 초비상

전문가들은 고물가와 미국의 고강도 긴축정책,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환율 변동성 확대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본다. 일각에선 환율이 단기적으로 달러당 1350원 선까지 추가 상승할 가능성도 열어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이날 통화에서 “1300원이 일종의 ‘빅피겨’(큰 자릿수)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이게 뚫리면 심리적 저항성이 무너지면서 ‘오버슈팅’ 가능성이 있다”며 “당국이 ‘안 막겠다’는 스탠스를 보이게 된다면 1350원까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도 “미국의 통화긴축 등으로 달러화 강세요인이 우세하다”며 “하반기에도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통상 환율이 상승하면 우리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매출액이 늘어난다는 이점이 있지만, 이 같은 효과가 과거처럼 크지 않다는 것이 기업들의 분석이다. 수출이 주력인 자동차·조선·가전 등의 경우 단기적으로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보겠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하는 등 부작용도 크다는 것이다.

특히 항공업계는 높아진 환율로 인해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항공사들은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비를 주로 달러로 지급하고 있다. 유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환율까지 오르며 ‘이중고’에 처한 상황이다. 달러로 갚아야 하는 외화 부채도 문제다. 환율이 10원 오를 경우 대한항공은 약 41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약 284억원의 외화평가손실이 발생한다. 신규 항공기 도입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 정유업계는 고환율 상황이 지속될 경우 수요 위축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국제유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오르면서 기업은 물론, 소비자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이도형·유지혜·이강진·남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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