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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戰이 낳은 '프렌드쇼어링'.. 장기적으론 毒

곽창렬 기자 입력 2022. 06. 23. 20:00 수정 2022. 06. 25.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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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의 냉전 위기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에 속도를 내고 있다. 친구(friend)와 생산 시설을 구축한다는 의미인 ‘쇼어링(shoring)’을 합친 신조어로, 동맹이나 우방국끼리 똘똘 뭉쳐 공급망 혼란과 인플레이션 등 산적한 경제 현안을 돌파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으로 나눠 대립했던 시절로 시계를 되돌려 세계 경제의 쇠퇴를 촉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미국과 한국 기업들이 공급망 복원력과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면 양국에 많은 이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리쇼어링→동맹쇼어링→프렌드쇼어링

지난 2010년대 주요 선진국들의 화두는 ‘리쇼어링(re-shoring)’이었다. 인건비 등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국으로 떠난(오프쇼어링·off shoring) 기업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이는 것을 말한다. 쇠퇴한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 등 선진국들은 본국으로 회귀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방법으로 리쇼어링에 힘을 쏟았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19가 발발하자 ‘동맹쇼어링(ally-shoring)’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중국의 호주산 와인과 석탄 수입 제한 조치 등으로 서구 사회와 중국 간 대립이 격화되자 동맹국끼리 힘을 합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다. 보니 글릭 미국 국제개발청 부국장이 사석(私席)에서 처음 쓴 동맹쇼어링은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려진 뒤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프렌드쇼어링으로 변형돼 정부 공급망 관련 보고서 등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프렌드쇼어링이 본격 주목을 받은 것은 작년 4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언급하면서다. 옐런 장관은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연설에서 “특정 국가가 원자재 등에 대한 지위를 이용해 미국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지정학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신뢰할 수 있는 많은 국가와 공급망 프렌드쇼어링을 강화하면 시장 접근을 안전하게 확장할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광물 동맹에 주력하는 미국

프렌드쇼어링에서 미국이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 반도체와 주요 광물이다. 희토류가 대표적이다. 희토류는 반도체·스마트폰 등 첨단 제품의 핵심 원료인데, 중국의 생산량이 전 세계 생산량의 60%를 차지한다. 중국은 지난해 환경 문제를 이유로 희토류 생산을 절반가량 줄이기로 했다.

미국과의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나온 이런 조치를 미국은 ‘희토류 무기화’로 간주하고 우방국들과 공조에 나섰다. 희토류 생산이 많은 호주·캐나다와 함께 희토류를 포함한 전략 광물이 매장돼 있는 곳을 표시한 지도 사이트를 마련했고, 호주 희토류 업체 리나스에 3040만달러(약 380억원)를 지원해 텍사스주에 희토류 처리 가공 시설을 짓기로 했다.

올해 들어서는 프렌드쇼어링 행보가 더 빨라졌다. 디지털과 공급망 등 새로운 통상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결성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지난달 출범했고, 우방국 간 희토류와 리튬·니켈 조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이 최근 출범했다. 미국 주도로 결성된 이 협의체에는 한국과 일본, 호주 캐나다 등이 공통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것도 프렌드쇼어링 차원의 행보다. 미국에는 퀄컴처럼 반도체 설계를 잘하는 회사(팹리스)는 많지만,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등이 장악하고 있다.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문제를 동맹국인 한국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전자가 프렌드쇼어링의 이점을 누리는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마셜플랜vs코메콘 재연되나

하지만 프렌드쇼어링이 냉전 시대 형성된 ‘마셜플랜’과 ‘코메콘’ 간 대립과 유사한 경제 블록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서유럽 16국에 대한 경제원조계획, 일명 ‘마셜플랜’을 내놨다. 그러자 소련은 1949년 동독·루마니아·폴란드·체코 등 9개 공산권 국가를 끌어들여 코메콘(경제상호원조회의)을 창설해 경제 지배의 수단으로 삼았다. 세계 경제가 50여 년간 이 두 축을 기반으로 쪼개지면서 성장이 지체됐다. 피에르 올리비에 구린차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프렌드쇼어링으로 인해 미국 주도의 서방 중심 경제 블록과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블록으로 다시 나뉘어 서로 거래가 단절되면 세계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냉전 해체 이후 30년 동안 쌓아올린 세계화의 혜택도 퇴보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온라인 매체 쿼츠는 “미국 유타주의 한 욕조 회사가 만드는 제품에는 7국에서 들여온 부품 1850개가 들어가 있고, 애플은 6개 대륙 43국에서 아이폰 부품을 구입한다”며 “서구 우방국끼리 조성한 공급망으로 물건을 제작하면 엄청난 비용 상승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가령 800달러에 팔린 아이폰5를 미국에서 생산된 부품으로만 만들면 2000달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프렌드쇼어링으로 세계 경제가 블록화되면 비슷한 현상이 모든 제품군에 걸쳐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세계 경제가 두 블록으로 분리될 경우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는 5% 감소해 4조달러(5150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에 타격이 크다. 미국은 GDP가 1% 감소하는 데 그치는 반면 개발도상국은 7%, 인도는 9% 감소할 것으로 WTO는 예측했다.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는 “프렌드쇼어링에 참여한 나라가 더 부유해지려고 노력하다 보면 무역을 가장 필요로 하는 가난한 나라들을 배제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게 되면 가난한 나라들은 테러리즘을 육성하고 수출할 수 있는 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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