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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지행합일 실천.. 韓 '경제학 거목' 지다 [고인을 기리며]

배민영 입력 2022. 06. 23. 20:36 수정 2022. 06. 2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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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학계의 '북극성'이 졌다.

당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고인에게 영어를 배웠다.

고인은 경제학원론 교재를 같이 쓸 정도로 정 전 총리를 아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빈소에서 고인을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고인은) 정 전 총리 세대를 많이 좋아하셨지만, 그다음 좋아하시는 세대는 저희였던 것 같다"며 "자주 찾아뵙고 그랬는데 가시니까 정말 서운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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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前 경제부총리
日유학파 주류 韓 경제, 美 중심 개편
노태우 때 경제부총리·한은총재
1995년 서울시장 당선.. 정치 입문
최근까지도 후학 양성.. 향년 94세
尹대통령, 빈소 찾아 유가족 위로
한국 경제학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23일 새벽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조 전 부총리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뉴스1
한국 경제학계의 ‘북극성’이 졌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유학파가 주류를 이뤘던 한국 경제학계를 선진 미국 경제학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선구자였다. 정계에 진출한 뒤로는 민선 1기 서울시장과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초대 총재를 지내는 등 족적을 남겼다. 평생을 좌우명인 ‘지행합일’(知行合一: 아는 것과 행동이 일치됨)을 실천했다.

고인은 1928년 강원 강릉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고향에서 영어교사로서 교편을 잡았다. 6·25전쟁이 터지자 통역장교로 입대했고, 육군사관학교 영어 교수 요원으로 선발됐다. 당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고인에게 영어를 배웠다.

1957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고인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1968년부터 모교인 서울대에서 경제학 교수로 강단에 섰다.

고인이 20년간 길러 낸 제자들은 ‘조순 학파’로 불리며 정재계를 주도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대표적이다. 고인은 경제학원론 교재를 같이 쓸 정도로 정 전 총리를 아꼈다.

1988년에는 육사 시절 제자인 노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임명됐다.

노태우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던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세계일보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이 조순 박사를 상당히 생각했었다”며 “대통령이 조 박사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던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박 전 총재는 “노 전 대통령이 ‘이분을 활용할 수 없겠느냐’고 하더니 부총리로 기용하더라”고 했다.
2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빈소에 윤석열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고인은 부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인 1992년 한은 총재에 임명돼 물가안정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정계에 뛰어든 것은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설득에 따른 것이었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생 1막을 화려하게 열었다. 희고 긴 눈썹 덕분에 ‘서울 포청천’이란 별명을 얻은 것은 이때부터다.

1997년 시장직을 사퇴하고 15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지지율 상승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이회창 후보와 단일화했다. 이후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해 탄생한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맡았다. 1998년 재보궐 선거에서는 강릉을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정계를 떠났다. 이후로는 서울대와 명지대 명예교수,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의 별세 소식에 애도가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고인의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언론을 통해 “아버지를 여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또 “그분이 안 계셨다면 저 역시 없었다”며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은 지난주인데, 그분께 전하고 싶었던 말들을 여러 가지 했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빈소에서 고인을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고인은) 정 전 총리 세대를 많이 좋아하셨지만, 그다음 좋아하시는 세대는 저희였던 것 같다”며 “자주 찾아뵙고 그랬는데 가시니까 정말 서운하다”고 했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자는 세계일보에 “제게 큰 스승이셨던 분”이라며 “고인은 최고의 경제학자이기도 하셨지만, 기존의 틀을 깨는 정치적 시도를 하시기도 했다”고 추모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 장지는 강릉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남희(92) 여사와 장남 기송, 준, 건, 승주씨가 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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