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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젤렌스키 피로감', 서방 단결 흔든다

박영서 입력 2022. 06. 23. 22:08 수정 2022. 06. 2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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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놓은 것 내놓으라는 式' 끝없는 지원요구
분노했던 서방, 전쟁 길어지며 점차 관심 식어
전쟁 인플레로 美바이든 11월 중간선거 초비상
지원무기 암시장으로 흘러가 서방 겨냥 우려도
러와 서방 사이서 터키만 경제적 외교적 잇속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지 4개월이 지났다. 전쟁이 장기전·소모전 양상이 되면서 서방의 피로감은 누적되고 있다. 이른바 '젤렌스키 피로감'이다.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열광은 엷어지고, 그 자리를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대신하고 있다. 서방은 서서히 발을 빼려고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터키만이 유일한 승자같다.

◇도대체 끝이 안보인다, 지원에도 한계 있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맹비난이 쏟아졌다. 세계는 너도 나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그런데 전쟁이 길어지고 있다. 기대와는 달리 전황은 러시아에 유리해지고 있다. 맹렬하게 포탄을 퍼붓고 있는 러시아군 앞에 우크라이나군은 열세에 놓여 있다. 돈바스 루한스크주의 요충지인 세베로도네츠크는 러시아군에 의해 거의 점령됐다. 돈바스 운명이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롭다. 러시아군의 문제가 있다면 병력 부족, 특히 보병 부족이다. 하지만 대대적인 징집 명령만 내려지면 이 문제는 해소될 것이다.

"전쟁을 끝내려면 중화기 수준을 러시아와 동등하게 만들어야 한다. 빠른 지원을 촉구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일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게 무기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그가 요청하는 무기들은 곡사포, 다연장 로켓시스템, 대전차 미사일, 탱크, 장갑차, 드론 등이다. 이런 지원이 없으면 러시아군을 당해낼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긁어모아도 이만한 무기를 대주기는 힘들어 보인다.

젤렌스키의 필사적인 요구에 서방 지도자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렇게 무기를 공여해도 러시아는 전혀 포기할 기미가 없다. 이제 전쟁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관심도 떨어지고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서방 지도자들의 귓가에 '젤렌스키 피로'의 소리가 크게 들리고 있다. 그럼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에 지원을 계속 호소하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다.

◇'내 코가 석자' 바이든, 유럽도 '도찐개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10억 달러(약 1조2800억원) 상당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추가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번 지원을 포함하면 미국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총 56억 달러(약 7조2000억원) 상당의 무기를 지원하는 셈이 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이번 추가지원은 돈바스 방위에 특히 중요하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에 감사한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속내는 복잡하다. 지금 그에겐 우크라이나 전쟁 보다는 국내 문제가 '발등의 불'이다.

미국은 급격한 인플레이션 속에 갇혀 있다. 8.6%라는 경이로운 인플레이션이다. 휘발유 가격은 연일 상승세다. 자동차 없이는 살지 못하는 미국인들의 불만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물가는 치솟는데 경기 침체까지 온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총기난사 사건까지 잇따라 터지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로선 초비상이다. 표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 이슈는 뒷전으로 물러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내 지지 여론도 전쟁 초기만큼 높지 않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 기사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점차 뒤쪽으로 배치되고 있다. 전쟁 자체에 관심이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분위기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휴전 협상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러시아 정부 및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를 재개했다. 이탈리아 여권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문제를 놓고 두 쪽으로 분열될 판국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범여권의 의석 과반 확보 실패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이제 마크롱 대통령은 국제문제 보다는 국내문제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 영국의 우크라이나 지원도 그다지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보리스 존슨 총리의 연명을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서방은 지금도 일정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보내도 보내도 끝이 없을 것 같다. 더 보내봤자 별 효과가 없을 것이란 생각도 싹 트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지원되는 무기 그 자체도 향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부 무기들이 외화 획득을 위한 '상품'으로 둔갑되어 '누군가'에게 팔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 무기시장이 활황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테러조직이나 적대국이라면 자기 발등을 찍는 꼴이 된다. 과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서방이 지원한 무기가 돌고 돌아 서방을 향하는 '끔찍한' 역사가 반복될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암거래의 '딜레마'다.

◇엔도르핀 펑펑 솟는 터키 에르도안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다. 유독 에르도안 대통령만 엔도르핀이 펑펑 솟는다. 그는 이번 전쟁을 자국의 이익 확대와 자신의 위상 강화에 능숙하게 활용하고 있다. 외교상 절묘한 입지를 강화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부상했다. 터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중립적 입장을 내세워 평화협상을 중재했다. 갈수록 터키 외교의 위상은 높아져 간다. 최근에는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운송 재개를 위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양국을 중재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토의 핵심 회원국이지만 대러 제재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어 러시아와의 관계는 여전히 돈독하다. 러시아와 터키를 오가는 직항 항공기는 매일 운항된다. 무비자 도항을 상호 허용해 러시아 인력과 기업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러는 사이 터키는 러시아 기업들의 국제 조달과 판매 창구가 되고 있다. 대(對)러시아 제재의 큰 '구멍'이다.

서방은 이를 막고 싶다. 하지만 서방의 요청이 많아질수록 역으로 에르도안 정권은 서방과의 외교적 협상 카드를 더 많이 갖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쿠르드족 문제다. 터키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반대하면서, 양국 정부가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는 일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좌절됐던 미국산 F-35 전투기 도입도 다시 추진하려는 모양새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벌이는 에르도안의 '일타 쌍피' 전략에 서방은 뾰족한 대안이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기사회생했다. 내년 6월 선거에서 승리가 점쳐진다.

서방 지도자들은 지쳐가고 있다. 전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남은 것은 '냉정한 선택'뿐이다. 우크라이나가 계속 피를 흘리도록 지원해주거나, 아니면 지원을 끊고 러시아가 승리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런데 두 개 모두 '정답'은 아니다.

결국 이번 전쟁은 지난 1953년 공식적으로 종결되지 않은 채 휴전 협정으로 매듭지어졌던 '한국전쟁'과 비슷한 양상으로 끝날 것 같다. 이제 관심은 '정의 구현'보다는 '전쟁 종식'으로 기울고 있다. 국제정치의 냉혹함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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