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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 가상·현실 다 있다[정은진의 기술을 기술하다]

입력 2022. 06. 23. 22:09 수정 2022. 06. 2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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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연례행사인 빌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는 MS가 현재 주력으로 내세우는 10가지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그중 마지막으로 언급된 기술이 ‘메타버스’였는데 일본의 로봇 제작회사 가와사키와의 협업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전문가가 로봇 수리를 도울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기술의 핵심은 “디지털 트윈”이라고 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로봇의 움직임을 전문가의 눈앞에 똑같이 보여주는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소프트웨어와 이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홀로렌즈 하드웨어였다.

메타버스라는 말은 많이 보지만, 막상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뉴스를 접하면 메타버스는 VR, 혹은 VR과 AR(Augmented Reality·증강현실)을 포괄하는 XR(Extended Reality·확장현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기존의 VR, XR 기술과 뭐가 다를까?

■메타버스는 실제와 가상세계들의 총합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1992년 닐 스티븐슨의 SF <스노 크래시>에 처음 등장했다. 현실세계에서는 피자 배달을 하는 주인공이 가상세계에서는 뛰어난 검객이자 해커라는 설정인데, 고글을 쓰면 들어갈 수 있는 가상세계를 메타버스라고 불렀다. ‘메타’라는 접두어는 여러 실험 데이터를 모아 좀 더 광범위한 발견을 얻고자 하는 메타분석이나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고 불리는 메타인지처럼 기존의 것들을 연결하거나 한 차원 높은 시점에서 바라볼 때 쓰이는 단어다.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에서 버스를 따오고 거기에 메타를 붙여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와 다른 가상의 세계를 메타버스라고 명명한 것이다.

진정한 메타버스의 의미는 소설의 주인공이 가상공간에서 유통되는 마약이 실제 인체에 위해를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분명해진다. 가상의 세계는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세계와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고, 한쪽 세계의 경험이 다른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메타버스는 실제 세계와 가상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구성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가상세계들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고 여러 세계들의 경험을 통합해주는 모든 기술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에 살고 있다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몰라도, 우리 삶에는 이미 가상세계들이 녹아들어 있다. 1990년대 크게 유행했던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미니미라는 아바타가 미니룸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방문자들을 맞이했다. 이 미니룸을 3D로 재구성해 메타버스 버전으로 출시한다는 소식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비슷한 예로, 여러 사용자가 팀을 구성해 즐기는 2D 게임들도 3D 아바타가 서로 상호작용하는 렉룸 같은 VR 소셜 플랫폼으로 옮겨갈 수 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래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이 급속도로 늘어났고, 가상세계에서 할 수 있는 활동도 다양해졌다. 학생들은 가상교실에서 아바타로 등교하고 소그룹으로 토론도 하고 발표도 한다. 직장인들은 예전이라면 출장을 가서 직접 했을 발표와 협상을 가상공간에서 하게 되었다. 운동이나 요리, 미술 등의 온라인 강습은 물론, 비슷한 배경의 사람들끼리 네트워킹을 위해 화상통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거나 와인을 마시는 행사들도 생겨났다.

이렇게 가상세계들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활동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가상세계 안에서의 경험을 좀 더 편리하게 만드는 기술이 각광받았다.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줌은 팬데믹 초기 투자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는데, 같은 이름의 다른 회사 주식마저 2배 이상 상승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VR 헤드셋 시장 점유율 1위인 오큘러스 리프트의 경우, 물량이 부족해 중고시장에서 정가보다 비싸게 거래되기도 했다.

■실제와 가상세계들이 통합되는 엔데믹

많은 나라들이 ‘위드 코로나’ 엔데믹으로 접어들면서 실제 세계와 가상세계를 통합하는 애플리케이션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 글 서두에 언급한 MS와 가와사키의 협업의 경우, 로봇이 사용되는 실제 세계와 로봇의 디지털 트윈을 전문가가 관찰하고 진단하는 가상세계를 연결하여 전문가와 로봇 사이의 시공간 차이를 없앴다. 같은 콘퍼런스에서 3D 아바타를 이용해 원격으로 근무하는 직원들과 사무실에 출근한 직원들이 같은 가상공간에서 회의를 할 수 있는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도 선보였다. 다른 두 공간에 있는 직원들이 가상공간에서 함께 발표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엔데믹 시대에 어째서 우리는 아직도 가상세계에서 활동하고, 실제 세계와 가상세계를 이어주는 기술에 주목할까? “미래는 이미 여기 와 있다. 아직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윌리엄 깁슨의 말은 엔데믹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난 5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한 이래 처음으로 오프라인으로 개최됐다. 오프라인 참여자들은 백신을 맞은 사람들로 한정했고 간단한 항체 테스트를 매일 해야 했지만 행사는 마스크 없이 진행되었다. 같은 기간 미국 실리콘밸리 근처 알라미다 카운티는 실내 마스크 착용을 다시 의무화했고, 중국 상하이는 록다운 중이었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온라인 화상으로 다보스 포럼에 참여했다.

나라마다, 혹은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사정이 다르고 다른 규제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이라면 사무실에 출근하는 직원과 원격으로 일하는 직원들 모두를 포용하는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관련 규제가 없어진 다음에도 원격근무는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팬데믹 기간 동안 거의 모든 직원들이 원격으로만 근무했던 실리콘밸리의 테크기업들이 엔데믹을 맞아 직원들에게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권고하자 많은 직원들이 반발했다. 애플에서 기계학습과 인공지능 부서 디렉터로 일하던 이언 굿펠로가 1주일에 월, 화, 목 3일은 출근하라는 정책에 불만을 갖고 구글 인공지능 부서로 이직했다거나, 애플이나 구글 엔지니어들 중 상당수가 풀타임 원격근무를 허용하는 메타로 이직했다는 소식이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불가능이 가능해지는 메타버스

팬데믹과 엔데믹의 영향을 감당하기 위해서만 메타버스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왔다. 4D 영화관의 시제품 격인 센소라마가 발명된 것은 1956년이었다. 의자가 움직이고 냄새도 맡을 수 있어 지금의 4D 영화관과 유사한 기능을 선보였다. 미 공군은 1966년부터 관련 기술들을 사용하여 비행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개발했고 조종사들의 훈련에 사용했다.

실험작이거나 군용으로만 제작되어오던 VR 시스템이 일반 대중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된 첫번째 제품은 잘 알려진 오큘러스 리프트다. 방 안에 카메라를 두 군데 설치하고, 헤드셋을 쓴 뒤 양손에 리모컨 같은 작은 장치를 들기만 하면 사용할 수 있는 이 제품은 2012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과 개발 비용을 마련했을 때 이미 대단한 인기를 끌어, 2014년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했다. 2016년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내레이션을 한 미국 국립공원 100주년 기념 VR 동영상이 삼성 기어 VR 헤드셋을 통해 최초 공개되기도 했다. 이 동영상은 팬데믹이 시작된 다음 직접 여행을 다니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연 속에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해 더욱 인기를 얻었다.

대중에게 AR이라는 단어를 각인시킨 것은 2016년에 출시된 애플리케이션 ‘포켓몬 고’일 것이다. 가상의 캐릭터가 주위 풍경 안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사용자들이 ‘포켓몬 고’를 하면서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AR 기술을 사용한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급속도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메타버스에서도 자기표현이 중요하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온라인에서 우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도 중요해졌다. 2021년 미국의 유력 전자상거래 플랫폼 스퀘어스페이스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Z세대의 60%, 밀레니얼 세대의 62%가 온라인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오프라인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싸이월드에서 미니미와 미니룸을 꾸미기 위해 도토리를 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게임 속 아바타를 꾸미기 위한 상품을 구매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영국 가디언지는 디지털 게임 속 아바타를 꾸미기 위한 아이템 시장 규모가 2022년 말에는 약 5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각종 명품 브랜드들은 젊은 구매층을 잡기 위해 가상 제품 판매를 시작했다. 구찌는 로블록스 게임 안에서 핸드백, 선글라스, 가상 향수까지 판매했다. 실제 명품에 비해 현저히 낮은 6000원 정도의 가격에 판매되었으나, 이 중 한정판 핸드백의 경우 2차 거래 시장에서 500만원 가까운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는 실제 구찌 핸드백 가격보다도 높은 것으로, 온라인에서 자신을 꾸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매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구매층이 있으니 ‘짝퉁’ 분쟁도 등장했다. 올해 초 에르메스는 자사의 버킨 가방 이미지를 차용하여 ‘메타버킨’ NFT를 제작한 메이슨 로스차일드를 저작권 침해로 고소했다. 로스차일드는 자신의 작품은 예술적 표현이므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며 고소 취하를 요청했으나 법원은 버킨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점, 이미지를 보고 누구나 원래의 버킨 가방을 연상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소송 결과에 따라 가상 패션업계서의 저작권 분쟁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은 국가 간의 문자정보 교류를 혁신하는 것으로 시작해 이미지와 동영상으로 발전했다. 메타버스는 사람들 간의 교류를 실제 공간에서 2차원 가상공간으로, 거기서 다시 3차원 가상공간으로 발전시키면서 실제 세계와 가상세계 간의 간격을 좁히고, 실제 세계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가상세계에서 실현시켜 우리의 경험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은진 교수



서울대 전산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주립대학에서 전산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샌프란시스코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분산시스템과 인터넷에서의 보안을 연구했고, 최근에는 게임이론을 이용해서 합리적인 사람들이 블록체인처럼 탈중앙화된 시스템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최신 기술의 발전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실리콘밸리에서 컴퓨터과학을 오래 가르치면서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 영향력을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기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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