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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없이도 사는 법] 재개발 반대하며 버티던 을지면옥, 법원이 '인도' 판결한 이유는

양은경 기자 입력 2022. 06. 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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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서울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을지면옥이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세운지구 3-2구역 시행을 맡은 A사가 을지면옥 측을 상대로 낸 부동산 명도 단행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을지면옥이 A사에 건물을 인도하라"고 명령했다. /연합뉴스

최근 서울 세운상가 재개발 구역에 있는 냉면집 ‘을지면옥’이 재개발 시행사에 건물을 넘겨줘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서울고법 민사 25-2부(부장판사 김문석·이상주·박형남)가 재개발 시행사가 을지면옥을 상대로 낸 ‘부동산 명도단행 가처분’에서 1심을 뒤집고 “건물을 넘겨주라”고 판결한 데 따른 것입니다. 이미 시행사에 건물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여서 건물 인도 이후에는 철거가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부동산 명도단행 가처분’은 명도소송이 끝나기 전 이뤄지는 임시처분이지만, 가처분 자체로 소송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단행적 가처분’에 해당합니다. 소송을 당한 측의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좀처럼 없습니다. 1심 또한 “가처분이 받아들여지면 을지면옥이 본안소송에서 다퉈볼 기회도 없이 현재의 이용상태를 부정당한다”며 가처분을 기각했습니다.

2심은 항고소송에서는 드물게 22쪽이나 되는 판결문을 통해 1심을 뒤집었습니다. 이 판결문에는 재개발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주장을 펴는지, 법원은 어떻게 판단하는지 상세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지분쪼개기, 보상절차 미비, 변경절차 하자.. 모든 절차 문제삼은 을지면옥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2구역 시행사는 2017년 3월 토지등 소유자 60명중 46명의 동의를 받아 중구청장에게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을 했습니다. 사업시행계획 인가는 시행사가 공사에 착수할 권리를 갖는 절차로 토지 등 소유자 4분의 3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해 4월 사업시행계획 인가가 이뤄졌고, 이후 2020년 4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시행사를 A사로 변경하는 사업시행 변경인가가 있었습니다.

을지면옥은 분양신청을 하지 않아 현금청산 대상자가 됐습니다. 분양신청 기간 내에 신청을 하지 않으면 재개발 이후 건물을 받을 수 없고 감정평가에 따른 현금보상을 받고 지역을 떠나야 합니다. 보상협의가 이뤄지지 않자 서울시 토지수용위가 2020년 3월 을지면옥 일부 건물에 대해 수용보상금을 51억여원으로 정해 수용재결했습니다. 수용재결 후 시행자가 보상금을 공탁하면 토지수요자가 반대해도 토지가 수용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을지면옥이 수용재결에 대해 이의신청하면서 중앙토지수용위가 토지 및 건물에 대한 손실보상금을 3억원 가량 늘려줬고, 시행사는 2021년 7월까지 토지 및 건물 보상금 54억여원 및 영업손실 보상금 2100여만원을 모두 공탁했습니다. 이로써 토지 및 가옥의 소유권이 시행자에게 넘어가는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같은해 7월엔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이뤄졌고 중구청이 이를 고시했습니다. 관리처분계획 인가 및 고시가 이뤄지면 토지나 건축물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고, 지역을 떠나야 합니다. 수용재결을 통해 을지면옥 대지 및 건물소유권이 사업시행자에게 넘어갔고, 이후 관리처분계획 인가 및 고시까지 이뤄지면서 을지면옥이 건물을 넘겨줘야 할 상황이 된 것입니다.

◇ “인도를 거부할 권리 없어” 모든 주장 배척한 법원

재개발에 반대하던 을지면옥은 이들 절차가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업시행계획 인가에 필요한 소유자 4분의 3 동의가 10명의 건물 지분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지분쪼개기’ 방식으로 이뤄져 탈법적으로 이뤄졌다며 무효 주장을 폈습니다. 이미 같은 내용의 주장으로 ‘인가 취소’소송도 냈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2019년 4월 “지분쪼개기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고, 이뤄졌다고 해도 동의자 숫자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다 “며 패소판결을 했고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서울고법은 이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을지면옥은 ‘사업시행 변경인가’에 대해서도 “사업시행자 변경은 중요한 사항이어서 토지등 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런 절차를 생략해 무효”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사업시행자 변경은 자금을 대출받기 위한 절차로 이로 인해 토지등소유자의 권리가 침해된다고 볼 수 없다”며 무효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을지면옥은 또한 “손실보상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서울시 토지수용위원회가 보상금을 정하는 데 영업이익과 감소액만 고려했고 영업시설 이전에 드는 비용은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시행자가 손실보상금을 공탁한 경우 법에 따른 손실보상이 완료된다”며 “현금청산 대상자는 별도 소송으로 보상금 증액을 구할 수 있을 뿐 인도청구를 거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을지면옥은 또한 “서울시 토지수용위를 상대로 수용재결 취소 소송을 냈고, 시행사와 서울시, 중구청장 등에도 관리처분계획 및 인가 취소 소송을 냈다”며 “이들 처분이 취소되면 건물 인도 의무가 없다”고 했습니다.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행정처분의 하자가 중대·명백하지 않으면 처분이 취소되지 않는 한 효력이 있다”며 “을지면옥이 낸 자료만으로는 하자가 중대·명백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합니다. 판결의 효력과 유사하게, 행정기관의 행정행위도 ‘공정력’이 있기 때문에 취소되기 전에는 함부로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을지면옥의 모든 주장을 검토한 2심은 “시행사는 도시정비법이 정한 바에 따라 건물을 인도받을 권리가 있는 반면 을지면옥이 인도를 거부할 정당한 권리가 있음을 소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시행사는 시행구역 103개 영업장 중 을지면옥을 제외한 102개 영업장을 인도받았는데 을지면옥의 인도 거부로 인해 사업 시행지 지연되고 있다”며 시행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분쟁의 백화점’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법적 분쟁이 발생합니다. 재개발을 원하지 않더라도 수용이 이뤄지만 살던 집이나 운영하던 가게를 넘겨주고 떠나야 하는 ‘강제 매매’ 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전재산과 맞바꾼 보상금의 규모에 만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사업시행계획 인가, 수용재결, 관리처분 인가 등 재개발 과정별로 효력을 다투는 분쟁이 빈발합니다.

그러나 도로 등을 포함해 낙후된 지역 자체를 개편하는 재개발의 경우 재건축에 비해 공적(公的)성격이 강합니다. 재개발로 민간 사업자가 이득을 보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재개발 과정을 행정소송으로 다툴 경우 법원이 조그만 하자를 들어 한참 진행중인 사업을 ‘엎는’ 판단을 내리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그런 하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원고 패소 외에는 다른 선택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항고소송으로는 드물게 1심을 뒤집고 ‘단행적 가처분’ 을 허락한 2심 판단은 이같은 재개발의 ‘사업 계속 필요성’에 무게를 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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