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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중산층 키워야 나라가 큰다

정재홍 입력 2022. 06. 24. 00:24 수정 2022. 06. 24.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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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지난 19일 중남미 콜롬비아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좌파인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당선됐다. 중남미에서 200년 넘게 우파가 집권했던 콜롬비아에서 좌파 대통령 탄생은 코로나19로 중산층이 붕괴하면서 유권자들이 경제 불평등 해소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오는 10월 2일 대선을 치를 브라질에서도 좌파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현재 50% 이상의 지지율을 보여 멕시코·아르헨티나·칠레·페루·콜롬비아를 잇는 좌파 정권 탄생이 예상된다. 중남미의 좌파 물결은 코로나19 등으로 중남미에서 중산층 탈락자들이 속출했으나 우파 정권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영향이 크다.

중산층은 민주주의의 보루다. 중산층이 튼튼한 국가는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에 활력이 넘친다. 독일·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반면 중산층이 쪼그라들면 빈부 격차로 사회가 양극화된다.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만성적 정치·경제 불안에 시달리는 이유는 중산층이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위층이 이익을 독점하는 정책은 빈부 격차를 극심하게 하고, 하위층에 지원을 집중하는 정책은 국가 재정을 흔들어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했듯 “가장 완벽한 공동체는 중산층이 지배하고, 수적으로도 상위층과 하위층을 압도하는 공동체다.”

「 한국사회 중산층 계속 줄어들어
중남미선 좌파정권 탄생 잇따라
좋은 일자리로 양극화 완화해야

지난 19일 콜롬비아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한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국은 경제 성장의 과실을 비교적 고루 나누는 사회였다. 세계에서 드물게 2차 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뒤 경제 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데는 튼튼한 중산층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성장의 과실이 공평하게 분배되는 포용적 경제뿐 아니라 자신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포용적 정치를 원한다. 한국은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5000달러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정치에서도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파와 좌파가 평화로운 정권 교체를 이루는 역동적인 민주 국가로 발돋움했다.

한국의 발전을 지탱했던 중산층이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줄고 있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산층을 해당 국가 중간 소득의 75~200%인 가구로 정의한다. 이 기준에 따른 한국의 중산층은 IMF 사태 이전엔 70%에 육박했으나 지금은 60% 수준이다. IMF 사태 때 IMF 등에서 외화를 빌리기 위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며 계약직 등 비정규직이 많이 늘어난 게 중산층 축소의 요인이 됐다. 통계청과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806만6000명으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800만 명을 넘었다.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도 38.4%로 역대 최고다. 코로나19 사태로 폐업이 늘고 배달 등 플랫폼 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난 게 주요 원인이다.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욱 줄었다. 1989년 갤럽 조사에서 “당신은 중산층입니까?”라는 질문에 20~60세 한국인의 75%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난 2월 한국경제신문 조사에선 53%만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중산층이라고 하면 4인 가구 기준 월 소득이 500만원이 넘고, 30평형대 아파트와 중형차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집값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졌고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잇따르며 중산층의 꿈이 더욱 멀어졌다. 내 집 마련이 힘들어진 젊은이들이 빚을 내 암호화폐·주식 등에 투자했다가 가격 폭락으로 빚더미에 앉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산층 감소는 세계적 현상이나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스웨덴의 중산층 비중은 65.2%지만, 신자유주의 영향이 큰 미국은 51.2%이다. 자본주의는 중산층을 줄이고 양극단을 키우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나서 시장 실패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정부와 시장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국가가 발전한다. 시장이 득세하면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지고, 정부가 득세하면 민간 활력이 줄어 경제 성장이 더뎌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정부의 정책 타깃인 중산층과 서민들의 민생 물가를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잡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비상한 시기에 중산층과 서민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정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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