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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거목' 지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 별세

신준섭 입력 2022. 06. 24. 04:02 수정 2022. 06. 24.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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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학계의 거목이자 관료, 정치인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조순(사진) 전 부총리가 23일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조 전 부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아 경제 정책을 이끌었다.

조 전 부총리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2기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했다.

그중 한 명인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국 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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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경제학원론' 학계의 필독서
교수·관료·정치 분야 모두 거쳐
이창용 "한국 경제 큰 족적" 추모
연합뉴스


한국 경제학계의 거목이자 관료, 정치인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조순(사진) 전 부총리가 23일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정통 경제학자인 고인은 서울대 교수,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서울시장, 민주당 총재 등을 역임하며 한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경제학자로서는 한국 경제의 본질적 문제를 ‘거품’과 ‘불균형’으로 진단하고 성장이 최고의 복지라는 경제학 원리에 기반해 균형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974년 제자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함께 펴낸 ‘경제학원론’은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케인스 경제학 교과서의 표본으로 여겨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조순 전 부총리의 빈소를 찾아 고인의 장남인 조기송 전 강원랜드 대표를 위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1928년 강릉에서 태어난 조 전 부총리는 강릉중앙국민학교와 평양중, 경기고의 전신인 경기중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 상대에 진학했다. 이후 유학길에 올라 미국 보든대 학사를 거쳐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1967년부터는 모교인 서울대 상대에서 강단에 섰다.

2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는 군 시절 인연으로 관가에 입문하게 된다. 1950년대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할 당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속한 육사 11기 영어 수업을 담당했다고 한다. 조 전 부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1988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아 경제 정책을 이끌었다. 이어 1992년 한국은행 총재를 맡았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의 경제연구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분이 조순”이라고 말했다.

조순 전 부총리의 빈소에서 23일 한 유가족이 그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이한결 기자


조 전 부총리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2기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했다. 1997년 민주당 총재를 지냈고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로 대권에 도전했다.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와 단일화하며 뜻을 꺾었지만 대신 합당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이름을 지은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맡았다. 2002년 명지대 석좌교수로 학계로 돌아온 뒤 최근까지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

‘조순학파’로 불릴 만큼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고 이들은 지금도 주요 위치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중 한 명인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국 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비서관을 지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본에 충실하며 정책을 고민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저녁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직접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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