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박동기 달고 색채 실험 매달린 유영국..한국 추상 대가의 20주기 회고전

노자운 기자 2022. 6. 25.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8월 21일까지 국제갤러리 서울관 전관에서
기하학적 추상에 한국의 산과 바다 담아내.."절대주의 작가 말레비치의 직계"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를 주장할 만큼 형상 제거를 극단적으로 추구했다. 형상의 완벽한 제거, 그게 말레비치였다. (중략) 한국에서 말레비치를 주목한 화가는 유영국 정도였다. 산을 소재로 한 유영국의 작품은 단순할 정도로 면(面) 중심의 표현 방법을 활용했다. 유영국은 말레비치의 직계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윤범모 『백년을 그리다: 102살 현역 화가 김병기의 문화예술 비사』 중에서

올해 3월 별세한 고(故) 김병기 화백은 20년 먼저 세상을 떠난 동갑내기 작가 유영국(1916~2002)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1878~1935)는 형상을 완전히 제거하고 순수한 기하학적 추상 미술을 만들어내 러시아 구성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절대주의(Suprematism·쉬프레마티즘) 화가다.

미술사학계에서는 유영국의 초·중기 추상화에서 구성주의적 특징이 많이 나타난다고 본다. 그의 작품 세계가 처음부터 엄격한 구성주의에 뿌리를 두고 출발했으며, 형태의 극단적인 단순화를 중요시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유영국은 김환기(1913~1974)와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하고 순수 추상을 지향했다. 해방 후 김환기가 백자 달항아리 같은 전통 조형물을 모티프로 한국적 아름다움을 탐구한 것과 달리, 유영국은 산과 바다를 기하학적 추상의 언어로 그려나갔다. 화면을 점과 선으로 과감하게 분할하고 강렬한 색을 채워 넣은 유영국의 회화에는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과 20세기 초 전세계 화단을 휩쓴 국제적이고 선진적인 구성주의 사조가 모두 녹아 있다.

유영국 'Work(1971)'. 캔버스에 유채, 137 x 137cm. /국제갤러리 제공

한국 추상 미술의 ‘아버지’인 유영국의 별세 20주기를 맞아, 국제갤러리가 대규모 회고전을 마련했다. 고인의 유족이 이끌고 있는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의 소장품 등 92점이 미술 애호가들을 만난다. 지난 2018년에 이어 4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국제갤러리 서울 K1~K3 전관을 할애했다.

유영국은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문화학원에 입학해 추상 미술의 대가 무라이 마사나리, 하세가와 사부로 등과 교류했다. 이후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귀국해 울진에서 어부로 일하며 양조장을 경영하는 등 생업에 종사했고, 20년이 지난 1964년에야 전업 화가가 돼 작업에 본격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했다.

국제갤러리 K1, K3관에 전시된 작품들이 바로 이 시기에 제작된 추상화들이다. 유영국은 생업과 작품 활동을 병행했던 20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 일컬었고, 이를 만회라도 하려는 듯 에너지를 쏟아부어 대형작을 잇달아 완성해냈다.

국제갤러리 K1관에 전시된 유영국의 1960년대 작품들. 강렬한 색채 대비가 돋보이는 비정형 추상화다. /노자운 기자

K1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1960년대 대형작들은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와 과감한 색채를 특징으로 한다. 상하에 배치된 타오르는 듯 붉은 오렌지색과 짙은 청록색 사이에는 작가의 내면 세계 만큼 깊은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짙은 보라색과 초록색, 푸른색을 불규칙하게 덧칠한 작품에서는 말레비치의 기하학적 추상보다는 앵포르멜(비정형·프랑스에서 일어난 현대 추상 미술 운동으로, 서정적이고 격정적인 표현이 특징이다)의 영향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960년대 후반~1970년대부터는 기하학적 성격이 한층 뚜렷하게 나타난다. 극도로 절제된 조형 언어와 미묘한 색채 변주가 돋보인다. 대각선과 삼각형, 곡선으로 면을 과감하게 분할하고 형태를 해체했다. 대비되는 보색보다는 비슷한 계열의 여러 색을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색과 도형에 대한 끝없는 탐구의 결과물이다.

제작 시기가 가장 늦은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작품들은 K2관 2층에 전시됐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1977년 심장박동기를 달고 25년간 긴 투병 생활을 했던 유영국은 죽음의 문턱에 서서 평화롭고 서정적인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유영국은 1970년대 후반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평화롭고 서정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왼쪽은 구상화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1992년작 'Work', 오른쪽은 부인과 함께 본 두 그루의 사과나무를 그린 1977년작 'Work'. /국제갤러리 제공

이 시기의 회화는 오히려 기하학적 추상보다 구상회화의 성격이 짙다. 산봉우리와 나무의 형태가 살아있어 목가적인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자신을 극진히 간호해준 부인 김기순씨와 함께 영주 부석사에서 본 두 그루의 사과나무를 화폭에 옮겨 따뜻한 사랑을 담아내기도 했다. 올해로 104세를 맞은 김씨는 이번 전시를 직접 찾았는데, 남편의 그림들을 보며 매우 기뻐했다고 갤러리 측은 전했다.

고인의 아들인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아버지 작품의 색채는 주 활동 시기인 1950~1970년대보다는 요즘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인당 소득이 100달러 밖에 안 됐던 시절, 삶에 대한 밝은 희망과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를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오랜 투병 생활 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운 유영국의 색과 조형 세계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국제갤러리 서울관에서 오는 8월 21일까지.

고(故) 유영국 작가의 1970년대 모습. /국제갤러리 제공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