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친원전' 행보에 넘쳐난 환영 보도, '검증'은 뒷전

노지민 기자 2022. 6. 2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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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원전 간담회, 최대 연관어 '문재인 대통령'…보도 키워드는 "바보짓"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친원전'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전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이 중점적으로 전해진 반면, 시민 판단에 도움이 될 검증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경남 창원에 있는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원전산업계와 간담회를 가졌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힌 원전산업 협력업체 지원 방안은 △올해 925억원 규모 긴급 일감을 발주 △2025년까지 총 1조 원 이상 원전 일감 신규 발주 △수출에 역량 결집해 일감 연속성 강화 △총 3800억 원 규모 금융애로 해소 지원 및 6700억 원 규모 기술 투자 등이다. 윤 대통령은 '신한울 3·4호기 발주계약 신속 추진'과 '조기 일감에 더해 선발주가 가능한 과감한 조치' 약속을 강조했다.

그러나 관련 보도에서 가장 많이 부각된 키워드는 “바보(같은)짓”이었다.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 시절의 '탈원전' 정책을 문제 삼으면서 “지난 5년 동안 바보같은 짓을 안 하고 이 원전 생태계를 더욱 탄탄히 구축했더라면 지금 아마 경쟁자가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원전산업계 간담회(6월22일) 소식을 다룬 23일자 중앙일보, 서울신문 기사와 조선일보 사설(왼쪽부터 시계 방향)

23일 9개 일간지(신문) 기준으로 관련 보도는 한 매체당 평균 세 건 꼴인 26건이다. 관련 기사를 1면에 배치한 6개 신문 중 5곳이 “탈원전 5년 바보짓”이라는 윤 대통령의 주요 발언을 제목에 썼다. 조선일보(尹 “5년 바보짓 안 했으면 지금 원전 경쟁자 없었을 것”) 중앙일보(“탈원전 5년, 바보 같은 짓”…원전 최강국 회복해야)는 이날 사설 제목에도 이 발언을 올렸다. 새 정부의 주요 에너지 정책을 전하는 보도의 초점이 전 정부와의 대립각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는 54개 매체의 뉴스데이터에 기반한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분석으로도 확인된다. 22~23일 '원전'(윤석열, 원전) 관련 기사 266건의 연관어를 추출한 결과 '문재인 정부'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바보짓'은 4번째, 문재인 정부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15번째 연관어로 나타났다. 정쟁 관점에서의 보도가 주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간담회와 관련된 기사 절대다수는 윤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 발표 자료를 전달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27건 중 19건(사설, 칼럼 등 제외)이 간담회 요지를 전하는 설명 기사다. 시민사회 등의 비판 목소리를 비중 있게 다룬 기사는 사실상 한겨레 1건('백지화' 신한울 3·4호기에 선투자…“정부가 원전 알박기” 비판)에 그쳤다.

관련 사안을 당장 분석해 기사로 내놓기에는 물리적 여건이 빠듯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날인 24일자 역시 윤 대통령이나 정부 발표에 대한 검증이나 분석 기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나마 경향신문이 최근 탈원전 정책의 비판 근거로 활용되는 한국전력 적자와 관련해 '한전 사상 최대 적자, 원인이 '탈원전'?' 제목의 기사를 썼다. 올해 1분기 7조 원이 넘는 적자는 근본적으로는 “폭등한 연료비와 이를 반영하지 못한 전기요금 체계”(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가 문제라는 내용이다.

▲6월22일~6월23일 '원전' '윤석열'을 키워드로 추출한 기사 266건 연관어

지상파 방송사 3사의 보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윤 대통령 간담회 당일인 22일 저녁 메인뉴스별 리포트 제목은 △KBS '뉴스9': 尹 “5년간 탈원전 바보짓”…또 문 정부 '각 세우기'? △MBC '뉴스데스크': 윤 대통령, 文정부 '탈원전' 겨냥 “5년간 바보 같은 짓” △SBS '8뉴스': “탈원전 5년은 바보짓”…'1조 일감' 약속한 윤 대통령 등이다. 역시 전 정권과 현 정권의 정쟁에 중점을 둔 내용이다.

시민단체, 환경운동계에선 '탈원전' 구호를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실질적인 변화는 없었고, 원전 발전량은 되레 늘었다고 지적해왔다. 원전 안전성이나 핵폐기물 관련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원전 확대를 앞세워선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 관점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 있지만 대통령과 정부 주장 일변도에 안전, 환경 측면에서의 우려가 누락되는 것은 알 권리를 충족하는 보도라 보기 어렵다.

구준모 사회공공연구원(공공운수노조 정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지난달 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발행한 보고서에서 “기본 문제를 풀지 못한 상황에서 원전을 확대하는 것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안전과 폐기물 처리 과제를 미래로 떠넘기는 처사”라며 “경북 울진 지역에 신한울 3·4호기를 지어도 에너지 생산지와 소비지의 불일치로 인한 장거리 송전 때문에 가동이 어려울 거라는 예상도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22일 원전산업계와 간담회를 가진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윤석열표 원전 산업 부활의 핵심으로 꼽히는 소형모듈원전(SMR)도 논쟁적이다. 구 연구원은 “2022년 2월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2029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누스케일파워의 SMR에 대한 보고서에서 '너무 뒤늦고, 너무 비싸고, 너무 위험하고, 너무 불확실하다'는 결론을 발표했다”며 “당장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한 상황에서 2030년대 이후에나 기술 개발이 가능한 SMR에 기대를 거는 것은 지금 필요한 전환을 늦추고 불확실한 기술에 의존하겠다는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원전 안전을 경시한다는 지적도 있다. 22일 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이 현재를 “'탈원전'이란 폭탄이 터져 폐허가 된 전쟁터”라고 묘사한 뒤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말한 대목이다. 이에 대통령 대변인실은 23일 “문맥을 보면 알 수 있듯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늘 해 오던 '안전한 방식'으로 일하지 말고 비상한 각오로 대처해 달라는 주문”이라면서 “보도에 착오 없으시기 바란다”고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에게 알렸다.

환경운동연합은 23일 “원전 안전을 당연한 책무가 아닌 걸림돌로 인식하는 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36년 전 체르노빌 핵사고는 물론 이웃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핵사고만 생각해도 결코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망언”이라며 “대통령의 발언은 원전 주변에 살면서 불안과 두려움에 매일 전전긍긍하는 시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 윤석열 대통령은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하라. 아울러 원전 업계의 이익이 아니라 시민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고 원전 안전에 대한 정부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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