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우중런'..막차 탈때만 뛰던 나, 땅을 박차다 [ESC]

허윤희 입력 2022. 6. 25. 10:05 수정 2022. 6. 2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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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커버스토리]커버스토리ㅣ다시 부는 달리기 열풍
엔데믹과 함께 밖으로 나와..'달리기 클래스' 인기
러닝의 기초, 스트레칭과 기본자세만 배워도 땀 뻘뻘
'러너스 하이' 오지 않았지만 "달릴수록 행복한 기분"
서울 남산둘레길에서 함께 뛰는 ‘런콥’ 유길오 대표(맨앞 왼쪽)와 러너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다시 ‘밖’의 시간이다. 엔데믹을 맞아 야외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할 때부터 엔데믹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여행이 어려웠던 이들에게 스포츠는 강력한 트렌드였다. 골프·테니스·러닝 등의 인기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커져가는 스포츠 의류 시장 규모로 확인된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스포츠 의류 시장 규모는 7조1305억원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6조4537억원보다 10.4%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패션 시장의 전체 평균 성장률 7.5%보다 높은 것.

운동이 트렌드가 된 요즘, 이참에 엔데믹 시대 시작할 운동을 찾아 나섰다. 치솟는 물가를 고려해 너무 비싼 장비를 사는 것도 안 되고 자유롭게 시간을 내서 할 수 있는 것이 선택의 기준. 그 조건에 딱 맞는 운동이 눈에 들어왔다. 운동화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달리기! 걷는 사람에서 뛰는 사람이 되자, 결심하고 밖으로 나갔다.

초보 러너, ‘10% 법칙’을 기억하자

‘후두두 후두두’ 비가 내렸다. 지난 5월25일 저녁 7시, 서울 영등포구의 여의도 한강공원. 달리기 수업인 ‘런콥’의 러닝 클래스가 열리는 날이었다. 달리기의 기초를 배우려고 참석했다. 전날까지 화창한 날씨였지만 하필 이날 보슬비가 왔다. 이런 날 클래스를 할까. 비의 양이 애매하니, 한 참가자가 단톡방에 “비가 오는데 클래스를 하냐”는 질문을 올렸다. 답은 예정대로 “클래스를 연다”는 것. 순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우중런’(비 오는 날 달리기) 인증샷이 스쳐 갔다. 내 생애 첫 ‘우중런’인가.

비를 피해 서강대교 아래 참가자 6명이 모였다. 궂은 날씨에도 달리기를 배우러 나온 열혈 초보 러너들. 이날 교육을 맡은 최재빈 러닝 코치가 초보 러너들을 맞았다. 가장 먼저 몸풀기 준비운동을 했다. 최 코치가 움직이면서 몸을 푸는 ‘동적 스트레칭’ 시범을 보였다. 어깨를 전후좌우로 돌리거나,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는 동작들이 혈액순환이나 근육의 긴장을 푸는 데 효과적이라고 했다. 무릎을 올리는 동작을 할 수 있도록 장요근(허리와 골반을 이어주는 근육)도 풀었다.

몸을 푼 뒤 좌우 균형을 확인하는 동작을 했다. 앞쪽 바닥에 둥글고 빨간 원을 두고 눈을 감고 제자리에서 걸었다. 눈을 뜨니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나가 있었다. 분명 제자리에서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위를 보니 다들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좌우 힘 균형이 맞지 않아서다. 오래 운동한 최 코치 역시 좌우가 3 대 7 정도로 균형이 안 맞는다고. 대부분 완벽하게 균형이 맞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어떤 쪽이 약한지를 알고 그쪽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뛰는 자세도 중요하다. 서 있을 때 정수리를 위에서 잡아당기는 듯 서 있으라는 그의 말에 따라 서니 배에 약간 힘이 들어갔다. 코어 힘을 이용해 상하 중심, 좌우 중심을 잡는 연습을 했다. 발뒤꿈치를 들고 발등을 세우며 제자리뛰기를 했다. 발목을 쓰는 훈련이다. 발목을 사용해야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을 잘 쓸 수 있어서다. 비가 와서 한강변을 뛰진 않고 다리 아래 20~30m 트랙을 뛰면서 왔다 갔다 했다. 안 쓰던 발목을 사용하고 무릎을 들어 올렸다. 짧은 거리를 뛰었는데도 몸에 열기가 돌고 숨이 거칠어졌다.

쉬는 시간에 최 코치에게 물었다. 누가 달리기를 배우러 오냐고. “코로나 방역이 완화되면서 달리기 클래스를 찾아오는 분들이 늘고 있어요. 대부분 20~30대 직장인이에요. 마라톤 대회가 다시 열리면서 그걸 목표로 준비하는 분들도 오시고요.”

그가 만난 달리기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오버 트레이닝’이다. 자신의 기량보다 너무 많이 달리는 것. 그러다 보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초보자들이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오버 트레이닝을 예방하기 위해선 ‘10% 법칙’을 지키면 돼요. 10% 법칙은 말 그대로 마일리지를 일주일 단위로 ‘10%씩만’ 늘려주는 겁니다. 이를테면 1주차에 5㎞를 달렸다면, 2주차엔 5.5㎞를 3주차엔 약 6㎞를 채우는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마일리지를 쌓아 올리는 거죠. 이렇게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다 보면 어느새 한번에 10㎞를 거뜬히 뛸 수 있을 거예요.” 그의 말마따나 마일리지처럼 쌓여 10㎞를 뛸 날이 오려나. 초보 러너에겐 아득히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2022 하이원 댕댕트레킹(10㎞)’에서 우승한 사월이. ‘런콥’ 박명현 감독의 반려견이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달리기 앱 도장 찍는 재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마음껏 달리지 못해 다음을 기약했다. 이번엔 ‘아침런’을 예약했다. 지난 4일 토요일 아침 7시, 남산둘레길 북측순환로. 참가자 7명이 모였다. 다들 이날 처음 주말 모임에 나온 이들이었다. ‘런콥’의 박명현 감독(전 마라톤 국가대표)의 구호에 따라 달리기 전 준비운동을 했다.

이날 달리기 코스는 북측순환로 어귀에서 국립극장까지 왕복 6㎞ 구간. “전력 질주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전속력의 70% 정도만 뛰세요. 힘들면 걸어도 됩니다.” 박 감독의 말에 따라 참가자들이 함께 뛰었다. 남산에서 처음 뛰는 이날 예상치 못한 고통이 찾아왔다. 눈으로 보기에 경사가 심하지 않더라도 오르막길을 뛴다는 건 허벅지가 터질 정도로 힘겹다. 그뿐인가. 다리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고 심장은 당장에라도 터질 것처럼 마구 요동쳤다. 문제는 50m도 채 뛰지 않았다는 것. 뛰어야 할 길이 만릿길 같았다.

“오르막길에서는 뛰고 내리막길에서는 걸어야 합니다. 반대로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면 무릎에 안 좋아요.” 박 감독의 말은 머릿속에만 간직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힘든 오르막길에서 걷고 쉬운 내리막길에서 뛰었다. 걷다 뛰다 했다. 점점 뛰는 그룹에서 멀어졌다. 내가 가장 느린 러너가 됐다. 달리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저분들 오늘 남산에서 처음 뛰는 분들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뛸 때마다 경쾌한 리듬이 있었다. 하지만 내 몸은 엇박자였다. 기름칠하지 않는 듯 뻑뻑하고 삐걱댔다. 그래도 땅을 박차고 오르고 발을 내딛는 순간 속이 시원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성인이 된 뒤 이렇게 뛴 적이 있나 생각하니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막차를 타려고 뛴 적 빼곤, 굳이 뛰지 않고 살았다. 그러니 달리는 근육이 없는 게 당연했다.

느리게 뛰고, 걷기도 하니 주위 사람들이 잘 보였다. 주말 아침의 남산둘레길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반려견을 데리고 걷는 이들, 그룹을 지어 뛰는 사람들이 보였다. 날씨도 한몫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날이 맑았다. 콧바람 쐬며 뛰기 좋은 날이었다.

이날 함께 뛴 직장인 표은주(28)씨는 남산에서 처음 뛴다고 했다. “주로 퇴근하고 집 근처 하천 주위를 혼자 4㎞ 정도 뛰었어요. 오늘 처음 다른 사람들과 같이 뛰었는데 그룹 페이스에 맞춰 따라가는 게 재미있네요.”

그의 러닝메이트는 달리기 기록을 인증하고 다양한 챌린지를 제공하는 러닝 앱이다. “런데이 앱이 있어요. 주 3회 몇 시간 정도 뛰면 도장을 받아요. 나이키 런 클럽 앱도 이용하는데 거기선 배지를 줘요. 그런 게 별건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죠. 하나하나 생길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그에게 러닝 앱이 ‘헬시 플레저’(건강을 즐겁게 관리하기)의 도구라는 얘기다.

달리기를 한 뒤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스마트워치에 표시된 달리기 기록.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몸과 마음에 집중, 명상과 비슷해”

경기도 성남에서 2시간 넘게 걸려 남산 달리기에 참여한 김수현(27)씨는 ‘하뛰하쉬’(하루 뛰고 하루 쉰다라는 달리기 용어) 한다. 두달 전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뛰고 출근한다. “퇴근하고 저녁에 운동할 자신이 없어 차라리 새벽 시간을 이용하자고 일찍 일어나 운동을 했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체력이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져요. 꾸준히 하니 달리기 루틴이 주는 즐거움이 생겼어요.”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건 친구의 영향이다. “작년에 알게 된 친구가 시각장애인과 같이 뛰는 가이드 러너예요. 그때 마침 운동을 뭘 할까 생각하던 시기였는데 그 친구가 즐겁게 뛰는 걸 보고 저거다 싶었어요. 막상 하니 내 페이스대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좋더군요.”

달리기에 빠진 이유는 또 있다. 빠른 시간 안에 나 자신한테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명상을 좋아해 자주 했어요. 달리기하면서부터 명상을 안 해요. 달리기를 하면 내 호흡에 집중하고 몸 어디가 아픈지 알고 집중하게 돼요. 오로지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갖게 해요.”

그의 말을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달리는 그 순간 나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게 된다. 책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에서 달리면서 느끼는 집중의 순간을 이렇게 썼다. “몰입하면 긍정적인 감정은 더 강렬해지고 좌절처럼 부정적인 감정은 희미해진다”고. 그래서 “자주 몰입하는 사람일수록 더 행복하게, 더 큰 성취감을 느끼면서 살아간다”라고 했다.

박 감독은 몰입의 순간에 얻어지는 것으로 ‘러너스 하이’(러닝 하이)를 꼽았다. 30분 이상 뛰었을 때 밀려오는 행복감을 말한다. “다리와 팔이 가벼워지고 리듬감이 생기며 피로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힘이 생겨요.”

온라인 러닝 강의를 하는 안정은 러닝전도사. ‘클래스 101’ 제공
산과 숲길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여행과 달리기가 결합한 ‘런트립’ 등 달리기 스타일을 즐기는 이들이 생기고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러너스 하이는 느끼지 못했지만

몰입의 즐거움도, 러너스 하이도 얻지 못했지만 달리기의 매력은 충분히 느꼈다. 혼자 뛰는 초보자들에게 유용한 온라인 달리기 클래스도 있다는 정보를 듣고 온라인에 접속했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 ‘클래스101’에서 러닝 클래스를 진행하는 안정은 러닝전도사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달리기는 모든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초 체력을 만들어주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달리기 자체로도 취미가 될 수 있지만 등산이나 그림 그리기, 베이킹, 여행 등 다양한 취미를 할 때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데 달리기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달리기 스타일도 있다는 것도 안 러닝전도사는 이야기했다. 자신의 관심사와 취향, 운동 목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도시를 달리는 시티런이 있는가 하면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산과 숲길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여행과 달리기가 결합한 ‘런트립’ 등도 있다.

운동화만 신고 달릴 수 있다면 도시든 자연이든 어디든 달리기 코스다. 그러고 보니 아직 달려보지 않은 길이 많았다. 그 새로운 곳을 달리며 여행하는 기분은 어떤 걸까. 달리기가 새로운 기쁨을 알게 해줄 듯하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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