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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훈장 6·25 전사자 아버지, 국립묘지엔 모실 수 없다니.."

민소영 입력 2022. 06. 25. 16:48 수정 2022. 06. 2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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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코로나19 여파로 그간 축소되었던 기념식도 올해는 대부분 정상적으로 거행되는데요.

전쟁 당시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워 무공훈장이 서훈되고도, 당시 훈장을 전달받지 못한 생존 참전용사와 그 유족들에게 수십 년 만에 훈장을 수여하는 행사도 매년 함께 마련되고 있습니다.

제주에 사는 김민성 씨 가족도 최근,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아버지 고(故) 김경우 중위의 화랑무공훈장을 68년 만에 유족에게 전달하겠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그러나 김 씨 가족은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무공훈장까지 받은 아버지가 정작, 고향에 마련된 국립묘지에는 안장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고향에 안장한 전사자 유골, 호국원 이장 신청…"부적격"

사연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주시 한경면 고산 출신인 고(故) 김경우 중위는 전쟁이 발발한 해인 1950년 10월, 만 21세의 나이로 육군에 입대했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해 지역 법원에서 근무했던, 촉망받는 청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입대하던 때, 가족의 막내딸인 민성 씨(1951년생)는 어머니의 태중에 있었습니다.


육군본부 기록에 따르면 입대 당시 육군 3사단 소속이던 김 중위는 전쟁 중 5사단으로 소속을 한 차례 옮겼고, 각종 전투에 참여해 공적을 올립니다. 그는 1951년 3월, 강원도 홍천 가리산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전상(戰傷) 입원 중이던 1951년 5월 13일,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만 22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막내딸을 출산한 직후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한 김 중위의 아내는 군 관계자로부터 "전사자 유골을 수령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길로 고인의 여동생, 어린 딸과 함께 제주시 한림읍 모처에서 남편의 유골함을 받아, 장례를 치르고 제주시 한경면 선산에 안장했습니다. 남편의 유해는 이미 화장된 상태였다고 유족들은 증언합니다.

김민성 씨는 "어머니와 고모님이 군 연락을 받고 간 곳은 한 사찰이었다고 기억하셨다"면서 "유골함을 같이 인수해 와서, 장례를 치르기 위해 칠성판과 옷 등을 놓고 장사지낸 뒤, 상여를 메고 갔다고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군으로부터 유골함을 수령한 고인의 아내는 현재 아흔이 넘었고, 여동생도 살아있다고 유족은 밝혔습니다.


선산 묘소 주변을 벌초하며 가꾸고, 제례를 봉행하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세월이 60여 년. 유족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드디어 제주에도 국립묘지가 조성된다는 뉴스였습니다. 가족들은 2012년 첫 보도가 나온 당시 기사들을 인쇄해, 스크랩해둘 정도로 기쁨에 가득 찼습니다.

유족은 60년 넘게 선산에 모셨던 유골을 몇 년 전, 도내 한 납골당으로 옮겨왔습니다. 제주호국원 개원에 맞춰 이장 신청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국립제주호국원이 조성되면 이장 신청할 수 있다는 제주보훈청 안내에 따라 유족은 2014년 선산에 있던 묘를 개장해, 제주 양지공원에 임시로 유골을 봉안했습니다.

제주 첫 국립묘지인 제주호국원이 지난해 12월 문을 연 날, 김 중위 가족들은 가장 먼저 이장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이장신청이 승인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유족은 한 달 뒤, "아버지의 유골을 호국원으로 이장할 수 없다"는 통보와 함께,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고인의 위패가 '국립서울현충원 위패 봉안관'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주호국원은 유족에게 보낸 공문에서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립묘지에서 국립묘지로의 이장'은 불가하다"며 이중 안장 심사 결과 부적격 판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국립묘지에서 위패를 봉안하는 경우는 매장, 또는 안치할 유공자의 유골이나 시신이 없을 때입니다. 이 때문에 60년 넘게 고향에서 고인의 묘를 관리해 온 유족은 깜짝 놀라다 못해, 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경우 중위의 딸 김민성 씨는 "아버지의 위패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져 있다는 소식은 지금껏 듣지도 못했다. 유족에게 연락이 왔던 적이 없고, 당연히 (위패 봉안을) 동의한 사실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이장 승인을 받고 너무나 기뻤어요. 이제야 아버지께서 전우들도 만날 수 있으려나 생각했는데…." 일흔이 넘은 딸은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연신 눈물을 훔쳤습니다.

■ 국립서울현충원 "1967년 일괄 봉안된 것으로 추정"

고 김경우 중위의 위패는 언제 봉안된 것일까. 국방부 산하 국립서울현충원에 따르면, 김 중위 위패의 정확한 봉안 날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현충원 내 위패 봉안관이 1967년에 건립됐고, 이때 김 중위를 포함한 6·25 전사자들의 위패가 일괄 봉안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김 중위 유족은 이 같은 이장 부적격 처분이 부당하다며, 지난 3월 국가보훈처 산하 국립제주호국원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국가가 유족의 확인과 동의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고인의 위패를 서울현충원에 봉안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며, 국가의 귀책 사유에 해당한다"며, "국립제주호국원에 전사자를 안장할 수 없게 유족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위법하고 부당한 처분"이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국가보훈처는 KBS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육군본부에 확인해 보니 고인이 전사 당시 화장을 했다거나, 유족이 유골을 인수했다는 기록이 없어, 이장 부적격을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즉, 김 중위 유족이 이장 신청한 유골이 '김 중위의 유해'인지 입증할 기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 중위 유족은 고인의 '병적증명서'에 고인의 전상(戰傷) 장소와 '전상 입원 중 전사' 기록이 명확히 기재돼 있다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김 중위의 사위 김승택 씨는 "전투 중 폭격으로 돌아가셨다면, 시신을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병적증명서상에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기록이 명백하다"면서 "전상 입원 중 사망한 전사자의 시신을 못 찾으면, 국가에서 고인의 유골을 어떻게 했다는 것인가. 전쟁 당시 군으로부터 유골을 인수한 유족도 지금껏 살아계신다"며 울먹였습니다.

이어 김 씨는 "(이중 안장 문제는) 서울현충원과 제주호국원이 서로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이지, 이것을 유족에게 전가해서 행정심판을 하라, 행정소송을 하라는 건 아주 잘못된 것 같은 행정행위라고 생각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김 중위와 같이 이미 서울·대전현충원 등에 위패가 봉안돼 있다는 이유로 제주호국원에 이장·안장 승인을 받지 못한 사례는 전국에서 23건이며, 행정심판도 3건이 진행 중입니다.

유족은 이번 행정심판을 준비하며 서울 국가기록원 등 관련 기관을 직접 찾아다니며 자료를 요청하고, 수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1954년 10월, 아버지에게 서훈된 은성화랑 무공훈장이 있었다며, 이를 올해 6·25 기념식에서 유족에게 전달하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 문자인 줄 알았어요. 6·25 전쟁 당시 전사한 아버지의 무공훈장을 68년 만에 받게 됐는데, 국립묘지에는 묻힐 수 없다니요." 일흔이 넘은 막내딸은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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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영 기자 (missional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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