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엠베는 왜 영화음악 감독과 계약했나..전기차 '배기음' 전쟁 [ESC]

한겨레 입력 2022. 6. 25. 17:15 수정 2022. 6. 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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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전기차, 보행자 안전위해 내연기관 차량처럼 배기음 필요
베엠베, 영화음악 감독 한스 치머와 손잡고 소리개발
전기차 브랜드들, 운전자·보행자 위한 매력적 소리 경쟁
베엠베(BMW)는 영화 음악 감독 한스 치머와 손잡고 전기차 소리를 개발했다. 베엠베 제공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당시 마세라티의 삼지창과 V8 엔진 배지를 단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을 발견하는 즉시 귀를 쫑긋 세웠다. 나 혼자만의 경험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 주위에 자동차를 좋아하는 남자들이라면 모두들 그랬으니까. 그 소리가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마세라티의 대표 모델인 콰트로포르테의 가격은 2억원이 넘었는데 “그중 5천만원은 배기음값”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다. 전설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마세라티 배기음 애호가라는 건 이미 자동차 마니아 사이에서는 유명한 일화다.

내연차·전기차 감각 둘 다 돋보이게

이렇듯 배기음은 자동차의 매력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내연기관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에 좀처럼 마음을 주지 못한다. 내연기관에서 시작돼 배기파이프로 나오는 청각적인 요소를 전기차가 충족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엔진이 없고 전기모터로 힘을 받기 때문에 시동을 걸 때나 움직일 때 배기음이 발생하지 않는다. 주행의 정숙함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겐 꿈과 같은 이야기지만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는 아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대비 주행 소음이 최대 20데시벨(㏈) 작다. 소음이 작기 때문에 보행자가 차량의 움직임을 인지하기 어렵고, 이는 곧 안전 문제로 이어져 인위적인 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전기차는 약 2m를 접근해야 보행자가 알아차릴 수 있다. 디젤차인 경우 10m 내외라고 하니 전기차의 정숙함이 보행자가 차량의 접근을 인지하지 못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은 2019년 7월부터 시속 20㎞ 이하로 주행하는 전기차에 대해 56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내도록 합의했고 미국도로교통안전국(NHTSA) 역시 2019년 9월부터 생산되는 모든 전기차에 시속 30㎞ 미만에서 의무적으로 배기음이 발생하도록 하는 규정을 발표했다. 한국은 2020년 7월부터 저소음 자동차에 배기음 발생 장치 장착 의무화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전기차를 내놓는 자동차 브랜드들은 자체 사운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인공적으로 만든 소리이기 때문에 외관 디자인과 더불어 브랜드와 모델 이미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내연기관이 주는 배기 사운드의 감동을 전기차에서도 이어나가길 바라고 있다.

포르셰 919 하이브리드. 포르셰 제공

발 빠르게 움직인 건 베엠베(BMW)다. 베엠베는 전기차 소리를 위해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다크나이트> <인터스텔라> 등의 음악을 작곡한 영화 음악 감독 한스 치머와 베엠베 사운드 디자이너 렌초 비탈레가 손을 잡았다. 베엠베 플래그십 전기차 iX와 쿠페형 전기차 i4를 시작으로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을 적용한 것. 시동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탑승자에게 전달되는데 속도를 높일수록 경쾌하고 가벼운 전자음이 커진다. 프로펠러가 돌 때 나는 약한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게 색다르다. 영화 <스타트렉> 속 우주선이 ‘워프 드라이브’ 할 때 소리와 비슷하다.

제네시스는 내연기관 엔진 배기음과 유사한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주행 속도나 전기모터의 토크 상태, 운전자의 가속 의지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최적의 사운드를 만들어 운전자의 주행 몰입감을 더하고 주행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일명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e-ASD)이다.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전자음악 분야에서 사용하는 그래뉼러 합성법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뉼러 합성법은 소리를 매우 작은 단위로 분해하고 이를 새로 조합해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음향 합성 기술이다. 에스에프(SF) 영화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다채로운 소리를 구현할 수 있다.

재규어의 전기차 I-페이스의 소리 개발 목적은 다른 회사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인다. 시속 20㎞ 이하로 달릴 때 운전자에겐 들리지 않으면서도 보행자에게는 들리는 사운드가 그 주인공이다. 무려 4년 동안 연구·개발에 몰두했으며 영국의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음향 테스트를 거쳤다. 이전에 제작했던 경고음은 자동차 엔진 소리와 동떨어진 소리로, 경고음을 들은 시각장애인들이 주변을 보는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경우가 많았다. 개발한 소리는 전기차로 인지할 수 있는 소음을 전 방향으로 방출하며, 후진을 하거나 운전 방향을 변경할 경우 다른 소리가 나도록 개발했다. 보행자에겐 전기차의 존재를, 운전자에겐 조용한 주행 환경을 선사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행자 안전을 고려한 재규어의 전기차 I-페이스. 재규어 제공

다른 자동차 브랜드가 소리를 새롭게 만들어낸다면 포르셰는 자신들의 헤리티지를 활용했다. 포르셰 타이칸에 들어간 사운드는 르망 24시간 경주 우승 차인 919 하이브리드가 트랙 주행을 할 때 내는 소리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실내는 물론 밖에서도 소리가 잘 들릴 수 있도록 했다. ‘전기차는 정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타이칸 터보S에는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 기능이 기본으로 적용돼 전기차가 아니라 포르셰를 운전하고 있다는 감각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미래지향적인 소리에 내연기관의 부밍음, 전기 흐름을 연상시키는 소리 등 복합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커져가는 ‘가상 배기음’ 시장 규모

매혹적인 내연기관 배기음을 선사했던 마세라티는 전기차 시대가 도래해도 마세라티의 배기음은 여전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여느 브랜드와 달리 마세라티의 전기차는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리는 확인할 수 없다. 지난 3월 브랜드의 첫 전기차인 그레칼레 폴고레를 공개했는데 내년 중반에나 우리 앞에 등장할 것이다. 마세라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마세라티의 첫 전기차 배기음을 기다리는 상황이니 그 기대가 상당히 높다. 빨리 출시해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줬으면 좋겠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할수록 가상 배기음 시장의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퍼시스턴스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가상 배기음 시장 규모는 2017년 약 340억달러, 현재 기준 우리 돈으로 약 44조600억원이며, 2025년까지 2140억달러(약 277조3천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김선관(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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