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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안꾸' 궁정인 처세술..15세기 후반 '에티켓의 유럽'이 싹텄다

한겨레 입력 2022. 06. 25. 17:15 수정 2022. 06. 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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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임병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한겨레S] 임병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인들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
궁정 위계적 속성에 주목..권력관계 속의 행동윤리에 주목
고전적 덕·이상의 외피 벗고 이상적 궁정인을 연기자로 그려
1515년께 라파엘로가 그린 카스틸리오네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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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이 남자는 조용하고 영적인 눈길로 바라본다. 라파엘로가 그린 이 사람은 고귀하게 태어난 궁정인이다. 카스틸리오네 자신이 작은 책자 <궁정인>에서 요구했던 그대로의 완벽한 기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라파엘로가 친구 카스틸리오네를 위해 그린 유명한 초상화에 대한 미술사가 뵐플린의 평가다. “어떤 특별한 포즈를 취하지 않고서도” 고결한 인간의 기품과 절제된 본질을 보여주는 그림 속 주인공이야말로, “카스틸리오네가 이상화했던 궁정인 그 자체”와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다.

카스틸리오네는 1478년 만토바 근교의 작은 마을 카사티코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만토바와 밀라노 등지에서 휴머니즘 교육을 받고 그곳의 궁정 문화를 몸소 체험했던 그는 이탈리아와 유럽 곳곳의 여러 궁정에서 이후의 거의 전 생애를 보냈다. 검증된 군사 기술을 갖춘 능력 있는 용병, 수완과 술수에 능통했던 일급의 외교관이라는 명성은 살아생전 그가 여러 궁정에서 환영받은 주된 이유였다. 또한 당대의 여러 지식인들이 칭송하듯이, 카스틸리오네는 휴머니즘 이상을 간직하고 구현한 뛰어난 문인이었다. 1528년 그가 처음 세상에 선보인 <궁정인>은 정치인이자 궁정인으로서의 냉철한 현실감각에 고전 수사학 전통에 뿌리박은 휴머니스트 특유의 문학적 기예가 더해진 그의 대표작이다.

행동의 우아함 강조됐던 궁정인

외형적인 차원에서만 보자면 <궁정인>은 이상적인 궁정인의 덕성과 자질에 관해 논한 교양지침서, 혹은 개인의 행위규범을 가르치기 위한 도덕 논고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시대가 요구하던 궁정의 위계질서를 재생산하고 그것에 기초한 행위양식을 일종의 문화적 규범으로 이상화한다는 점에서 <궁정인>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렇다면 카스틸리오네가 직접 보고 경험했던 편재된 권력의 힘, 그리고 그것과 개인의 피할 수 없는 위계적 관계가 거기에 적나라하게 표현된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16세기 초 유럽 세계를 호령하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성경>,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함께 이 책을 언제나 머리맡에 두고 즐겨 읽었던 것도 물론 그 때문이었을 테다.

1559년 출판된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 표지. 위키미디어 커먼스

아무튼 이 책의 목적이 궁정인에게 합당한 자질이 무엇인지 해명하는 것이라면, 카스틸리오네가 천착한 가장 중요한 주제는 궁정인이 갖추고 피해야 할 덕목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어렵고 위험천만하지만 “그것은 ‘아페타치오네’(affettazione)를 피하고, 새로운 말로 표현하자면 모든 문제에서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를 행하는 것”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로 답한다. 아페타치오네는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외부에 드러내려는 지나친 바람에서 비롯된 인간 행위의 그릇된 양태를 뜻한다. 카스틸리오네는 바로 이런 아페타치오네를 염두에 두고 스프레차투라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냈다.

그에 따르면 과도한 보여주기에서 비롯된 과장이나 허세의 오류를 가리키는 아페타치오네와 달리 스프레차투라는 자신이 행하고 말한 바가 특별한 노력과 깊은 생각 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외부 시선에 비치도록 만드는 인간 행위의 최고 기예다. “기교를 기교로 보이지 않게 만드는 진정한 기교”라는 것이다. 스프레차투라가 궁정인의 처세술, 즉 군주 앞에 스스로를 낮추는 위선적인 행동윤리로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스프레차투라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의 덕성이나 이상적인 행위규범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그는 궁정인의 모든 행동이 ‘그라치아’(grazia)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라치아는 인간 행동의 우아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카스틸리오네는 “오직 그라치아를 소유한 사람만이 그라치아를 얻는다”는 모순어법을 사용해, 궁정인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우아함이 얻어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실제 그것은 군주에 의해 주어지는 시혜나 보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라치아는 한편으로는 군주의 호의라는 궁정인의 궁극적인 존재의 목적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얻게 해주는 궁정인 스스로의 행위규범이나 능력을 뜻하는 이중적이면서도 역설적인 개념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궁정인이 추구해야 할 “최고 보편법칙”, 달리 말해 그의 삶의 목적이면서 동시에 수단이었다.

<궁정인>의 배경이 된 우르비노의 팔라초 두칼레. 위키피디아

몇몇 르네상스사가들이 15세기 후반부터 궁정이 이탈리아의 정치사회적 삶을 지배하면서, 르네상스 문화가 인간의 “자유로운 개성”을 벼리기보다 그저 그런 “외적 형식”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비판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궁정 문화의 성장과 함께 이전 세대의 정치적 자유와 인간 존엄의 이상이 쇠퇴했다는 일갈인 셈이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대표 저작으로 <궁정인>이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바로 그렇기에 카스틸리오네의 이 작품은 더욱 의미 있는 그 시대의 초상이 될 만하다. 여기에 제시된 궁정인의 이상과 규범이, 군주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면서 새로운 정치질서가 만들어지던 바로 그때, 궁정인 스스로 자신을 위해 만들어낸 행동윤리였기 때문이다.

‘연기자로서의 인간’으로 산다는 것

의미심장하게도 <궁정인>에서 카스틸리오네는 능숙한 궁정인이라면 상황과 필요에 따라 “또 다른 사람”이 될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겉으로 드러난 연기와 그것을 통해 감추어진 진실 사이의 허구 게임이 궁정의 모든 질서를 지배한다는 현실감각의 소산이 아닐까. 그렇다면 바로 그 점이야말로 16세기 이후 유럽의 교양인들에게 <궁정인>이 폭넓은 각광을 받은 이유였을 것이다. 즉, 거기에는 <군주론>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냉철한 현실주의 세계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가변성에 주목하던 새로운 인간관이 숨어 있다.

게다가 그것들은 ‘이상주의’라는 외피 안에 몸을 숨긴 채, 이후 이른바 “문명화 과정”의 길을 가던 “북유럽 세계가 가장 쉽게 받아들이게 될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고전적 덕의 이상이 정치 세계의 엄정한 현실 속에서 새롭게 변모하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연기자로서의 인간’이라는 관념을 빚어낸 것이다. 예절과 에티켓을 강조하는 유럽의 문명화 과정은 그렇듯 권력에 대한 냉철한 인식에서 시작했고, 르네상스는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르네상스는 말과 글을 통해 고대 세계를 부활시키려던 지적 운동이었다. 14세기 이후 백가쟁명의 지성사를 검토하는 ‘르네상스와의 대화’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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