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실패인가, 코인 몰락인가[최훈길의뒷담화]

최훈길 2022. 6. 2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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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사태가 던진 '가상자산 신뢰' 문제
법조계는 "코인 전반 리스크, 규제해야"
업계는 "권도형만의 실패일뿐" 선긋기
美 출장 떠난 정부, 하반기 고강도 규제
범죄는 엄단하되 시장과 인재는 키워야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테라·루나의 실패일뿐일까요. 아니면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했던 것일까요.”

이 같은 질문이 나오자 흥미진진한 토론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고란 알고란TV 대표는 지난 22일 디지털자산 컴플라이언스 포럼(주최 블록체인법학회, 주관 포스텍 크립토블록체인 연구센터)에서 이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이후 패널뿐 아니라 100여명의 청중들은 술렁였습니다.

한쪽에선 이번 사태가 테라·루나의 문제일뿐 가상자산 전반의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다른 한쪽에선 실물자산 없이 ‘1테라=1달러’를 고정시키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애초부터 비현실적인 코인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더 나아가 코인 시장 전반의 몰락 신호탄이 터졌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만든 루나 코인은 지난달 초 10만원대에 거래됐다가 1원도 안 되는 ‘휴지 조각’이 됐다. 지난달 52조원을 기록한 루나의 시가 총액은 바닥을 찍었다. (사진=야후파이낸스 유튜브)

패널들 입장은 정확하게 둘로 나뉘었습니다. 법조계 인사들은 테라·루나 실패를 넘어 코인 시장의 위험성에 대한 걱정을 쏟아냈습니다. 정수호 법무법인 르네상스 대표 변호사는 루나·테라 코인의 백서에 대해 “조악한 수준”이라며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에 포문을 열었습니다.

정 변호사는 “테라 창립자들이 투자자들에게 했던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그 경우) 권도형 대표의 사기 귀속 가능성이 상당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금융투자 내지 전자결제 기능을 스스로 표방하는 가상자산 서비스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 전자금융거래법을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고강도 규제를 하자는 주장입니다.

박종백 법무법인 태평양 파트너 변호사는 “(디파이 같은) 탈중앙화는 이상적이지만 현실 모델이 쉽지 않다”며 “위장된 불안한 탈중앙화는 법적 책임을 지는 게 합당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정재욱 법무법인 주원 파트너 변호사는 “코인을 상장하는 가상자산거래소조차도 코인 정보를 100%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코인 정보를 업데이트 하도록 하고 위반 시 제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5대 가상자산거래소 대표들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코인원 본사에서 열린 ‘5대 디지털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 출범식’에서 업무협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협의체 구성은 루나·테라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투자자 보호를 위한 거래소 차원의 후속 대책 첫발을 뗀 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빗썸(빗썸코리아) 이재원 대표, 코인원 차명훈 대표, 고팍스(스트리미) 이준행 대표, 코빗 김재홍 최고전략책임자, 업비트(두나무) 이석우 대표 모습. (사진=디지털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

반면 블록체인 업계나 가상자산거래소 측 입장은 달랐습니다. 탄탄하게 설계를 하면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권도형 대표의 실패일뿐, 가상자산 시장 전체의 실패나 몰락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상자산거래소 고팍스의 이준행 대표는 “설계하기 나름”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담보 역할을 하는 자산의 신뢰가 크고 담보 비중이 실제 발행량 보다 크면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이 대표는 “(루나·테라를 비롯해)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빨리 확장을 하고 싶어하는 유혹 때문”이라며 루나·테라의 실패가 가상자산·블록체인 시장 전체의 실패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블록체인 기업 아이콘루프의 김종협 대표도 “루나는 투명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운영돼 실패한 것”이라며 “다른 가상자산은 제도화를 거쳐 계속 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기관 투자자 대상 가상자산 운용사인 하이퍼리즘의 오상록 대표는 “가상자산 시장은 이기적인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나 최대 이익을 만들어내는 시장”이라며 “루나·테라 사태 등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앞으로 가장 확실한 스테이블 코인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처럼 상반된 전망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정부의 입장이 궁금했습니다. 정부가 테라·루나 사태 이후 어떤 수준·방식으로 규제를 할지가 향후 시장의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에 정부는 본격적으로 가상자산 규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가상자산 담당자들은 금주에 미국 출장을 떠났습니다. 박민우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국장급)을 책임자로 한 이들 관계자들은 미 증권거래소(SEC),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통화감독청(OCC), 금융범죄단속 네크워크(FinCEN), 법무부 현장 방문에 나섰습니다.

루나와 테라USD(UST) 코인 가격이 불과 몇일 만에 폭락했다. (자료=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 코인마켓캡)

현재까지 분위기만 보면 출장 이후 코인시장 전반에 고강도 규제가 몰아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 만난 정부 관계자는 “수익만을 쫓는 코인업계가 제대로 된 담보를 두지 않고 있어,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코인 시장에서 옥석 가릴 게 있을지, 옥이 있는 게 아니라 전부 돌은 아닐지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루나·테라 사태로 28만명의 투자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시총 52조원이 한순간에 증발했습니다. 코인 투자자 보호를 위한 규제는 불가피합니다. 디지털자산 기본법 등 가상자산 법제화가 이뤄지면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 윤석열정부, 국회가 가상자산법을 만드는 것은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다만 가상자산 시장 자체를 죽이는 무리한 규제는 후유증만 남길 수 있습니다. 가상자산 기반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IT 인재들 모두를 싸잡아 ‘사기꾼’으로 폄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상자산 전문가인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1990년대 닷컴 붕괴로 수많은 프로젝트가 실패했지만, 이 같은 실패가 없었다면 한국이 IT 강국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사람이 중요합니다. 루나 사태를 보면서 사기라고 몰아세우더라도 블록체인 기술·사업에 고군분투하는 IT 인재들에 대한 존중은 필요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과제에서 가상자산 범죄는 엄단하되 ‘시장 성장환경 조성’을 약속했습니다. 윤석열정부에서는 IT 인재와 미래 시장을 키우는 정책도 균형 있게 추진되길 기대해봅니다.

※이슈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추적해 전합니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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