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타운하면 짜장면? '밴댕이'도 있습니다

글 이용남·사진 이정미 2022. 6. 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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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희씨가 1985년 밴댕이회전문점 1호 수원집 열면서 시작.. 4곳만 명맥 이어가

[글 이용남·사진 이정미]

밴댕이는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생선이다. 예전 인천바다에서 가장 흔하게 잡히는 생선 중 하나였던 밴댕이는 고소하고 기름진 맛을 자랑한다. 밴댕이는 인천 근해에서 많이 잡혔기에 가격도 쌌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음식이었다.

밴댕이를 상추쌈에 얹고 고추장과 마늘을 척 올려 한 쌈 먹으면 그 투박한 맛과 쫄깃함에 반하게 된다. 밴댕이는 5~6월이 제철인데 이맘때 가장 살이 올라 가장 기름지고 고소하다. 

바다의 흔적 따라 밴댕이회거리 탄생
  
 국철 1호선 인천역에서 차이나타운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중국집말고도 밴댕이회 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인천의 밴댕이회가 시작됐다고 상인들은 말한다. 사진은 차이나타운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세워진 밴댕이회거리 간판과 밴댕이회.
ⓒ 아이-뷰
      
인천에는 밴댕이로 유명한 거리가 여럿 있다. 구월동, 연안부두, 강화도, 인천역 차이나타운까지. 연안부두, 구월동, 강화도 밴댕이 거리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차이나타운 밴댕이거리는 아는 사람만 안다.

밴댕이 가게가 몇 곳 되지 않는 데다 중국요리와 화교들이 만든 이국적 문화가 너무 유명한 탓이다. 인천밴댕이회 전문점의 시작은 차이나타운입구 인천역에서 시작했다는 게 상인들의 이야기다.
  
국철 1호선 인천역에서 차이나타운으로 올라가려면 몇 갈래의 골목이 보인다. 밴댕이 거리는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패루가 설치된 메인거리 바로 옆에 위치한다. 차이나타운을 방문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패루가 설치된 길로 올라가기에 이곳은 살짝 한적하고 한산하다.

이곳에 밴댕이거리가 형성된 것은 인천바다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인천항이 연안부두로 옮기기 전까지 인천역 뒤에는 인천어시장이 있었다. 차이나타운에서 몇 발짝만 뛰어나가면 싱싱하고 펄떡이는 생선들을 아무 때나 살 수 있어 이곳에 작은 선술집들이 많았다.

선술집은 부두노동자, 지게꾼, 실업자, 주머니가 가벼운 시민들, 예술인들이 단골이었다. 이들은 새벽 어시장에서 떼 온 싱싱한 밴댕이, 병어, 간자미를 안주 삼아 소주나 막걸리를 한 잔씩 걸치러 이곳에 모여들었다.
 
 차이나타운 초입에 위치한 수원집은 신태희씨가 1985년 문을 연 밴댕이회전문점 1호다. 가게는 영업을 안 한 지 오래됐다.
ⓒ 아이-뷰
  
밴댕이회 전문점 1호 '수원집'의 탄생
     
차이나타운에서 밴댕이를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은 고(故) 이기택씨다. 그는 '인민군집'이라 불렸던 밴댕이집을 1960년대 후반경 개업했다고 한다. 인민군집은 나중엔 '이기택살롱'으로도 불렸다.

이기택씨가 운영하던 인민군집은 처음부터 밴댕이회를 판 건 아니었다. 이른 새벽 바닷바람을 맞으며 일하던 노무자나 지게꾼들에게 뜨끈한 물텀벙이국과 각종 생선구이를 막걸리와 함께 팔았다.

밴댕이회는 이 가게 종업원이었던 신태희(80)씨의 권유로 시작했다고 한다. 수원이 고향이었던 신태희씨는 젊은 시절 인천에 와 인민군집에서 16년간 종업원으로 일했다. 동네에서는 착실한 총각이 인민군집에 많은 돈을 벌어준다며 말 없고 수더분한 신태희를 칭찬하곤 했다.

신태희씨는 인민군집에서 독립해 1985년 10월 25일 차이나타운 초입에 '수원집'이라는 밴댕이 횟집을 차렸다. 이 집은 밴댕이회 전문점 1호로 허가를 받았다. 수원집은 싱싱하고 맛있는 밴댕이회와 초고추장 맛이 남달라 장사가 잘됐다.

신태희씨는 새벽 2시면 일어나 장사 준비를 하고 새벽 4시가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연안부두로 달려가 물 좋은 밴댕이를 짝으로 떼어왔다. 부인 서점분(75)씨는 남편이 연안부두어시장에 나타나면 상인들이 "하인천 밴댕이왔구나"하고 반겼다고 전했다.
 
 수원집 사장인 신태희씨는 인민군집이라는 선술집에서 16년간 일하면서 밴댕이회와 인연을 맺었고, 1985년 수원집을 차려 1호 밴댕이회전문점을 운영했다. 사진은 신태희씨와 그의 부인 서점분씨다.
ⓒ 김보섭
 
수원집은 의자도 없는 허름한 선술집이었다. 사람들은 이 집에 자리가 없으면 서서 밴댕이회 몇 점에 소주 한 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 후딱 일어서곤 했다. 화가, 문인, 공무원, 노무자들이 항시 들락거렸다. 서점분씨는 남편이 밴댕이를 찍어 먹는 고추장을 참 맛있게 잘 만들었다고 한다.
  
서씨는 장사가 너무 잘 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빠 방광염에 걸린 적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손님들로부터 받은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가 돈통에 가득했고, 장사가 너무 고되 돈 세는 것도 귀찮을 정도였다고 했다. 수원집을 운영했던 신태희씨는 약 50여 년을 밴댕이와 함께 인생을 산 셈이다.

하인천 밴댕이로 이름을 날리던 신태희씨의 수원집은 2017년에 32년간의 장사를 접었다. 사장인 신태희씨가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부인 서씨는 "남편이 아프지만 않았어도 지금도 열심히 장사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밴댕이전문점 1호였던 수원집의 성공으로 인천역 주변에는 밴댕이 가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밴댕이회 명맥 잇는 사람들 
 
ⓒ 아이-뷰
   
 차이나타운 서산밴댕이도 오래된 가게다. 이인숙 사장은 30년 넘게 밴댕이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서산밴댕이 이인숙 사장과 밴댕이 회.
ⓒ 아이-뷰
   
차이나타운 '서산밴댕이'도 오래된 가게다. 서산밴댕이 이인숙(72)사장은 40세에 처음 밴댕이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차이나타운엔 밴댕이집이 7곳 정도 있었는데, 하나둘 없어지더니 현재는 4곳이 남아 밴댕이회 명맥을 잇고 있다.

이인숙 사장은 옛날엔 밴댕이가 쌌었는데 지금은 가격이 올라 장사하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한창 비쌀 때는 밴댕이 20㎏ 한 상자 가격이 40만 원까지 간 적도 있다고 했다. 밴댕이도 인천 인근 해에서는 안 잡혀 목포나 전라도에서 올라온다.

이인숙 사장은 30년 넘는 장사로 몸에 고장이 많이 났다. 싱싱한 밴댕이를 가져오느라 수십 년간 새벽에 일어나 연안부두를 다녔고, 가져온 밴댕이를 손질하느라 비린내가 몸에 배는 것은 물론이고 손도 성할 날이 없었다.

혼자 무리하게 장사하느라 암에 걸려 엄청나게 고생했고, 올 초엔 낙상으로 다리뼈에 금이 가 깁스를 하느라 한동안 가게 문을 닫기도 했다. 다행히 서산밴댕이를 좋아하는 손님들의 응원 덕분에 다시 가게를 다시 열었다.

그는 "20대 초반에 인천에 왔는데 어느새 50여 년이 훌쩍 지났다"며 "시민들이 차이나타운 밴댕이거리도 많이 찾아와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철 1호선 인천역 근처에서 '만남의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순이 사장도 30년 넘게 밴댕이회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만남의 집은 원래 차이나타운 안에서 운영하다 주인이 가게를 중국집으로 바꾸자, 인천역으로 내려와 가게를 냈다. 사진은 만남의 집 김순이 사장.
ⓒ 아이-뷰
   
인천역 근처에서 '만남의집'을 운영 중인 김순이(66) 사장도 30년째 밴댕이집을 운영하고 있다. 1992년 차이나타운안에서 가게를 하다 주인이 중국집으로 용도를 바꾸는 바람에 인천역으로 내려와 다시 가게를 냈다. 김순이 사장은 "먹고살려고 시작한 장사가 벌써 30년이 넘었다"며 "요즘은 서울에도 입소문이 나 유튜버나 방송국에서도 찾아오곤 한다"며 가게를 자랑했다.

현재 차이나타운 밴댕이거리에는 만남의집, 서산밴댕이, 도은식당, 목포밴댕이 등 4곳이 영업 중이다. 이 가게들은 가까이에 인천항이 있었고, 생선이 지천으로 깔렸던 인천어시장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흔적들이다. 지게꾼, 부두노동자, 산업근로자들은 선술집에서 빛깔이 반질반질한 밴댕이 한 점에 막거리로 목을 축이고 고단한 삶을 위로했다.

글 이용남 i-View 편집위원, 사진 이정미 자유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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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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