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중앙일보

가위눌리지 않는 순한 잠 몇 날이라도 잘 수 있게 해주소서

신준봉 입력 2022. 06. 26. 15:29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김사인 시인 김지하 추모시
생전의 시인 김지하. 무기징역형까지 선고받았던 저항 시인에서 생명운동을 강조한 사상가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사진 박옥수]

지하 형님 還元(환원) 49일에

해월신사께 한 줄 祝(축)을 올립니다

2022년 임인년 양력 5월 8일
사람 하나 건너갔습니다
흰 그늘의 길 따라
검은 산 흰 방 모퉁이 돌아
아수라 80년
기가 다하여
더는 못 견뎌 몸을 놓았습니다

이쁘기만 했겠습니까
심술궂고 미운데도 적지 않은 사람입니다
제 잘난 것 감당 못 해
삼동네 떠나가도록 주리 틀다 간 사람입니다
그릇이 크니 소리도 컸겠지요

나라 잃고 나라 갈리고 겨레끼리 죽이고 죽는
한반도 백오십년의 기우는 운수를
제 몸 갈아 넣어 받치고자 했습니다
예수이고자 했습니다
예레미아이고자 했습니다
황야의 隱修者(은수자)이고자 했습니다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이고자 했습니다
마오이고자 했습니다 게바라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 깊은 곳에서
착한 아낙과 어린 두 아이 함께
어둑한 저녁 밥상에 이마를 맞대는
작은 家長(가장)의 겸손한 평화를
간절히 열망했던 사람입니다.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미주알이 내려앉도록
천령개 백회혈자리가 터지도록
용을 써 버틴 사람입니다
버그러지는 세상 온몸으로 받치려고
등짝은 벗겨지고
종아리 허벅지 힘줄들 다 터졌습니다
그 노릇이도록 운명에 떠밀린 사람입니다.
스스로의 선택이자
한반도의 기구한 팔자가
점찍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소신공양으로
우리는 한 시대를 건넜습니다.
무섭기도 했겠지요.
이 잔을 제발 거두어달라고
몸서리쳐 울부짖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컴컴한 '탑골'에서 '운당여관'에서,
해남에서 쪼그리고 앉아
깡소주에 자신을 절이지 않고는
못 견디던 이입니다.
동맥을 긋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모실 侍(시)자 侍天主(시천주)를 마음에 품고,
事人如天(사인여천)
사람을 하늘로 섬기라고 늘 외던 이인데,
그만큼 낮아지지 못하는 자신이
야속하던 사람입니다.
我相(아상)을 끝내 벗지 못한 사람,
그러나 그런 자기를
몹시도 괴로워했던 사람입니다.
오기는 다락같이 높고,
말은 때로 짓궂고 드셌지만,
속은 섬세하고 여려,
많은 벗과 아우들 사랑하고 따랐습니다.

사람 대함에 마치 어린이가 하듯 하라고,
마치 꽃이 피듯 모습을 가지라고 하신
가르침(待人之時 如少兒樣 常如花開之形)이 미더워,
저희들의 형님 이 사람을
선생께 부탁드립니다.
온갖 독에 시달려
심신 모두 제 모습을 잃은 채 갔습니다.
돌보아 주소서.
그곳대로 또 할 일 끝없겠지만,
먼저 간 그의 아내와 함께
잠시나마 쉴 수 있게 해주소서.
가위눌리지 않는 순한 잠을
단 몇 날이라도
그 곁에서 잘 수 있게 해주소서.
더도 말고 목포 변두리 초등학교
반장 노릇에도 덜덜 떨던,
그 숫기 없고 맑고
돛단배 잘 그리던 소년을
부디 찾아주소서.
외람된 부탁 송구합니다.
상향.

김사인 시인,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Copyrightⓒ중앙일보 All Rights Reserved.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