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필화당한 담시 '비어' [[김삼웅의 인물열전] 시인 김지하 평전]

김삼웅 입력 2022. 6. 26. 16:3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16] 또 한 차례 필화를 불러온 작품

[김삼웅 기자]

▲ 젊은 시절의 김지하 시인. 젊은 시절의 김지하 시인.
ⓒ 아트앤스터디
 
김지하는 1972년 가톨릭에서 발간한 월간종합지 <창조(創造)> 4월호에 장편 담시 <비어(蜚語)>를 발표했다. 또 한 차례 필화를 불러온 작품이다. 

비어(蜚語)는 유언비어(流言蜚語)의 뒷말이니 '메뚜기처럼 뛰는 말', 즉 '소문'이란 뜻이다. 예컨대 내가 정보부에 대고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소문에 의하면 이렇고 저렇고 그렇다'라고 하는 말이다.  

<비어>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고관(尻觀)'으로 '엉덩이를 보라'의 뜻과 '높은 관리'를 말하는 '고관(高官)'이다. 그 무렵의 대연각 대화재가 소재다. 두 번째는 '소리 내력'인데 시골에서 서울 올라와 돈 벌려고 애 쓰지만 잘 안 되는 사람 '안도(安道)'의 억울한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저항을 그린 것이다. 세 번째는 '육혈포(六穴砲) 숭배'인데 파시즘과 그리스도교의 치명적 대결을 예상하는 이야기이다. (주석 6)

시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시골서 올라와 세들어 사는 안도(安道)란 놈이 있었겄다.
 소같이 일 잘하고  
 쥐같이 겁이 많고
 양같이 온순하여
 가위 법이 없어도 능히 살 놈이어든
 그 무슨 전생의 악연인지 그 무슨 몹쓸 살이 팔짜에 끼었는지
 만사가 되는 일없이 모두 잘 안돼
 될 법한대도 안돼
 다 되다가도 안돼
 될듯 될듯이 감질만 내다가는 결국은 안돼
 장가는 커녕 연애도 안돼 집장만은 커녕 방세 장만도 제때에 안돼
 밥벌이도 제대로 안돼 취직도 된다 된다 차일피일하다가는 
 흐지부지 그만 안돼 
 빽 없다고 안돼 학벌 없다고 안돼 보증금 없다고 안 돼 국물 없다고 안돼
 밑천 없어서 혼자는 봐주는 놈 없어서 장사도 안돼 뜯기는 것 많아서도 안 돼
 울어 봐도 안돼 몸부림쳐봐도 안돼 지랄발광을 해봐도 별 수 없이 안돼 
 눈 부릅뜨고 대들어도 눈 딱 감고 운명에 맡겨도 마찬가지로 안돼 
 목매달아 죽자하니 서까래 없어 하는 수 없이 
 연탄까스로 뻗자하니 창구멍이 많아 어쩔 수 없이 청산가리 술타마시고 깨끗이 가자하니 술값없어 별 도리 없이 안돼 안돼 안돼. (주석 7)

박정희 정권은 유언의 '비어'를 예의 "북괴의 선전활동에 동조하는 이적행위"로 몰아 발행인 유봉준 신부와 주간 구중서를 연행하고, 잡지를 판매금지했다. 김지하는 피신 중 4월 12일 서울 은신처에서 체포되었다. 그가 체포되기 전 지인ㆍ문인ㆍ교수ㆍ학생 등 170여 명이 정보부에 연행되어 은신처를 대라고 고문을 받았다. 

정부는 국제 PEN대회가 서울에서 열리고, 은밀히 서울과 평양에서 '7.4남북공동성명' 등을 준비 중이어서 대외적 여론을 살핀 까닭인지 기소는 하지 않고 마산국립 결핵요양원에 강제연금시켰다. 구소련 등 공산국가에서 양심수들에게 행한 수법이었다.

마산 가포의 국립결핵요양원, 그 입구에 정보부원이 앉아 있고 사방을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쳤으니 그야말로 '위리안치'였다. 바다는 푸르고 잔잔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파란 물 눈에 보이네."

이은상의 그 남쪽 바다가 바로 가포만이다. 그 바다 바로 곁이 병원이었다. 아름다웠다. (주석 8)

담시 <비어>에 대해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분석한다.

<비어>는 <오적>의 내용을 확대ㆍ심화하면서 부패특권층의 추악상과 야수성을 고발하고 그에 대비되는 민중들의 초라한 실존과 그 비참상을 극단적으로 대조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육혈포 숭배'를 통해서 당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상을 풍자ㆍ고발하고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예언한 것은 용기 있는 실천적 지성의 발현이면서 동시에 탁월한 예언자적 지성의 발현이라 할 것이다. (주석 9)

주석
6> <회고록(2)>, 217쪽.
7> <김지하 담시 모음집 오적>, 51~52쪽.
8> <회고록(2)>, 226쪽.
9> 김재홍, 앞의 책, 114쪽, 재인용.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