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공범 죽인 권재찬 사형, 女 2명 죽인 강윤성 무기징역..왜

박건 2022. 6. 2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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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 선 살인범 2명의 운명이 갈렸다. 지인을 살해한 뒤 시신 유기를 도운 공범까지 살해한 권재찬(53)에게 인천지법은 지난 23일 사형을 선고했다. 반면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26)은 2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흉악범들을 심판하는 각 법원의 판결이 다르게 나오면서 형량의 기준과 형평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 인천 미추홀구 미추홀경찰서에서 살인 및 강도살인,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된 권재찬이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죄질·반성에 재판부 자의적 판단 불가피


법조계에선 재판부의 판결은 존중돼야 하지만, 판사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어 논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형사법 전문 변호사는 “똑같은 혐의로 기소돼도 재판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는 건 흔한 일이다. 연초 법관 인사이동을 노리고 피고인 측이 고의로 형사재판을 지연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피고인의 죄질과 반성 여부 등에 대한 평가 역시 재판부마다 달라진다. 권재찬에게 사형을 선고한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 이규훈)는 “(피고인이) 범행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범행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해 현행법상 최고형을 선고함이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반면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훼손하고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57)에 대해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이종채)는 지난달 26일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윤성의 혐의를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점, 두 번째 살인 피해자에 대한 범행은 우발적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강윤성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더니 피해자가 꿈에 나타나 잔잔한 미소를 보여줬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해 논란을 빚었다. 재판 당시 검찰은 최종 진술에서 “정말 반성하는 사람이 꿈에서 피해자가 자신을 향해 웃어줬다고 말할 수 있느냐”며 강윤성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강윤성이 지난해 8월 3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마이크를 발로 차고 있다. 연합뉴스


‘실질적 사형폐지국’ 사형 선고 어려워


1997년을 마지막으로 사형 집행이 중단된 한국의 사법 체계상 재판관이 사형 선고에 부담을 느낀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적·도덕적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형보다는 무기징역을 사실상 최고형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석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이종채)는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인다”면서도 “사형은 생명을 영원히 박탈하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 사정이 분명히 있는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20년 지난 무기징역수 가석방 가능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순교성지새남터기념성당에서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들이 세계 사형 반대의 날 기념 조명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뉴스1
흉악범을 무기징역으로 처벌하는 게 논란이 되는 이유는 현행법상 복역 20년이 지난 무기징역수는 가석방으로 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형수는 가석방 대상자가 아니다. 권재찬에게 사형을 선고한 재판부 역시 “현행법상 가석방이나 사면 등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이른바 ‘절대적 종신형’이 도입돼 있지 않아 무기징역형이 사형을 온전히 대체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형법에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상황인 만큼 혐의에 따라 형량을 가중하는 ‘누진형’이나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필요하다”며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야 할 국회가 이런 입법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건 기자 park.k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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