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 돌려달라' 현수막 붙었다.."헌재, 법적근거 대라" 분노

이수민 입력 2022. 6. 26. 19:02 수정 2022. 6. 27.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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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앞 등산로 입구에 걸린 현수막. 이수민 기자

‘헌법재판소 소장님! 길 좀 열어주세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정문 맞은편 게시대에 걸린 현수막 내용이다. 지난달 10일 청와대 개방 이후 시민들이 애용했던 북악산 등산로가 이달 2일 닫힌 데 따른 항의 성격이 강하다. 해당 등산로 초입부엔 헌법재판소장 공관이 위치해 있다. 헌재 측은 탐방객이 늘자 헌재소장 공관의 소음피해와 보안상 문제 등을 이유로 문화재청에 폐쇄를 요청했고, 결국 문화재청은 지난 2일 해당 등산로를 닫기에 이른다.

항의 현수막은 이뿐만이 아니다. 삼청동 통장협의회·새마을지도자협의회 등 5개 단체 명의로 건 ‘삼청동 북악산 등반로를 주민에게 돌려달라’부터 ‘북안산 등산로 폐쇄 결사반대’(삼청동 주민자치위원회 일동), ‘문화재청은 어떤 근거로 도로를 폐쇄했는지 소명하라’ 등 다양하다.

이날 삼청동을 찾은 시민 중엔 현수막 사진을 찍은 뒤 ‘#등산로 #재개방’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리는 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22일 '출입금지' 표지된 입간판(왼쪽)과 25일 오후 입간판이 사라지고 주민들의 현수막(오른쪽)이 붙은 금융연수원 앞 등산로. 이수민 기자

삼청동 자영업자 ‘집단행동’ 예고


등산로 폐쇄 이후 주변 자영업자들은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영업손실이 누적되자 급기야 ‘집단행동’까지 나설 수 있단 분위기다. 금융연수원 맞은편에 항의 현수막을 직접 달았다는 삼청동 한 중식당 사장 김노수씨는 “한 팀에 20~30명씩 되는 등산모임 단체 예약이 (폐쇄 이후) 일주일에 2건씩 취소됐다”며 “헌재 측의 (폐쇄) 요청에 이렇게 된 것 같아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들도 마찬가지다. 등산로 폐쇄 사실이 알려지며 탐방객·등산객 발걸음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등산로 인근 국밥집 사장 최현배(58)씨는 “지난달엔 등산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국밥 한 그릇씩하고 가니 식당 내 30석이 꽉 찼었다”며 “요즘엔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냉면집 주인도 “처음 개방했을 때에 비해 주말 매출이 40%가량 줄었다”며 “(우린) 여름 한 철 장사인데 애가 탄다”고 말했다.


‘국민제안’에 민원 넣기도


이날 삼청동에서 만난 여러 탐방객은 “참 다니기 좋은 길이었는데…”라며 등산로 폐쇄에 따른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모(63)씨는 지난달 폐쇄 전 해당 등산로로 청와대 전망대까지 올라가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청와대 국민 개방의 취지와는 다르게 헌재 쪽 한마디에 시민의 길을 막다니 화가 난다”며 “등산 모임 지인 중 2명은 윤석열 대통령이 연 ‘국민제안’에 ‘등산로를 재개방해달라’는 민원을 넣었다”고 말했다.
헌재소장 공관에 막힌 청와대 등산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헌재소장 공관 하나 때문에…"


삼청동 주민 민심도 심상치 않다. 삼청동에서 50년 이상 살았다는 주민 권모(68)씨는 “아침에 삼청 공원에 운동하러 나가면 다들 ‘등산로 폐쇄’ 이야기 뿐”이라며 “(중앙일보)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뭔가 사정이 있으리라고만 생각했지 헌재소장 공관 하나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건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주일째 (연다는) 소식이 없자 몇몇 주민 사이에선 ‘헌재소장 공관 앞으로 찾아가 시위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씨는 “최소한 주민에게 등산로 폐쇄에 대한 의견을 묻는 등 소통 절차가 있어야 했다”며 “(폐쇄 전) 개방 시간이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는데 그 정도도 주민들과 상생할 수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삼청동 주민들은 등산로 폐쇄 반대에 따른 의견을 모아 헌재 측에 민원을 제기한 상태라고 한다. 서울시청과 종로구청에도 민원을 제기할 예정이다.

시민단체·정치권도 나섰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최근 헌재를 상대로 ‘헌재소장 공관 운영비’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등산로 폐쇄 논란에 이어 헌재소장 공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지난 10년간 공관 유지를 위해 썼던 예산 내용을 들여다볼 예정이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실은 “공관 사용현황 자료 등을 헌재 측에 요청해 면밀히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북악산 등산로 폐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뉴스1


與원내대표 작심 발언에도


여당은 헌재소장 공관 주변의 등산로 폐쇄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국회 현안점검회의에서 “이번 주말부터라도 폐쇄했던 도로를 개방하라”고 작심 비판했다. 권 원내대표가 직접 주변을 가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권 원내대표는 “(공관이) 도로에서 좀 떨어져서 안쪽으로 굉장히 부지가 크다”며 “낮에 사람들이 통행한다고 해서 무슨 소음 피해가 클 것 같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 논리라면 북촌의 관광객이 골목골목 얼마나 다니느냐. 그 골목을 다 폐쇄해야 한다”라고도 덧붙였다. 헌재소장 공관은 대지 2810㎡(850평), 임야 8522㎡(2578평) 규모다.

권 원내대표의 이런 발언에도 등산로는 주말에 다시 열리지 않았다. 헌재 측은 24일 “(등산로와 관련해) 관계기관과 다시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냈으나 주말 사이 헌재와 문화재청 간 진전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헌재 측과 원만히 협의해 해당 길을 (다시) 등산로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할 것”이라며 “아직은 헌재 측 요청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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