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시행령 통치'.. 박정희가 떠오른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김종성 입력 2022. 6. 2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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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이어 행안부 경찰국 설치 논란

[김종성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령 같은 행정 입법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통해 상위 법률의 입법 취지나 개혁 조치의 근본 정신을 무색케 만들고 있다. '시행령 통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민적 우려와 일선 경찰들의 반발을 초래하면서까지 경찰청을 행정안전부 통제 하에 두려 하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담당하던 인사검증 권한을 한동훈 법무부장관 직속 인사정보관리단에 맡기고, 고소·고발 없이 가능한 검찰의 직접수사(인지수사) 기능을 특정 부서로 제한한 검찰개혁 취지를 무력화시키고자 검찰 조직 개편을 추진하는 것 등은 시행령·시행규칙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윤석열 스타일의 국정 운영을 보여준다.

보도에 따르면, 대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어줄 목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행정 부처들을 상대로 시행규칙 개정을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국무회의를 제2의 국회로 만들고 행정 입법으로 국회 입법에 맞서고자 하는 의도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윤 정부가 '시행령 통치'에 과도하게 경도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여소야대에 기인한다. 용산에서는 여당이지만 여의도에서는 야당인 현실을 그런 방법으로 타개하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묘하게 금기를 무시하는 윤 정부

여소야대에 처했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민정당) 정권은 구여권인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뿐 아니라 야당 주류인 김영삼의 통일민주당까지 끌어들여 3당 합당을 감행했다. 김대중의 평화민주당보다 세력이 컸던 야권 주류 진영까지 끌어들이는 대규모 정계개편을 통해 여대야소 상황을 만들었다.

비슷한 처지에 놓였던 김대중-김종필 공동정부는 '의원 빼가기' 카드를 구사했다. 3당 합당만큼은 아니지만, 이 역시 호평 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공동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의원 영입 작전에 화가 난 서청원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정균환 국민회의 사무총장과의 특별대담에서 "여권이 더 이상 의원들을 빼가지 않겠지요"라는 말을 첫인사로 던졌다. 그런 뒤 "의원 빼가기는 정계개편이라는 용어로 대체될 수 없는 후안무치한 공작 정치"라고 비판했다(1998년 5월 4일자 <동아일보> 6면).

윤 정부 입장에서도 정계개편이나 의원 영입 등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권개편이나 의원 영입 같은 것은 정당 간의 벽이 낮을 때 가능하다. 최근까지 국민의힘이 보여준 과도한 편가르기 정치로 인해 정당 간의 벽은 더 높아졌고, 야당 의원들은 정치 생명을 걸지 않고는 국민의힘으로 쉽게 건너갈 수 없게 됐다.

이는 윤 정부가 정계개편보다는 '시행령 통치' 쪽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일 수 있다. 행정 입법을 국회 입법처럼 활용해 국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도가 작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윤 정권이 하고자 하는 일들의 상당 부분은 민주당 정권이 해놓은 일을 뒤집는 것이다. 이 역시 국회를 통한 민주당과의 협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래저래 국회 입법보다 행정 입법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법령이 매우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아무래도 국회 입법보다는 행정 입법이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전문성이 다소 낮은 국회의원들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데다가 방만하기까지 한 오늘날의 입법을 일일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국회 입법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데 그치고, 구체적인 입법은 전문적인 행정 관료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그럴지라도 시행령·시행규칙은 상위 법령인 국회 법률이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명문의 법률 조문을 벗어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모법의 입법 취지 역시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윤 정권이 추진하는 '시행령 통치'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런 금기들을 무시하고 있다. 일례로, 행안부 경찰국 설치 방안도 그렇다.

행안부에 경찰국을 설치하는 것 자체를 금하는 상위 법령은 없으므로, 이를 두고 명확히 위헌·위법이라 판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1991년 이전처럼 행안부 경찰국을 두게 되면, 경찰을 정권에 예속시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나 부천서 성고문 사건 같은 일들을 재현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게 된다. 1991년 경찰청을 독립시킨 국민들의 개혁 취지에 반하는 쪽으로 행안부 경찰국 설치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반대편을 설득할 자신이 없는가
 
 서울경찰 직장협의회 대표단이 지난 2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열린’ 경찰의 중립성, 독립성 훼손하는 행안부 경찰국 설치 반대’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윤 정권이 지금처럼 시행령·시행규칙을 남용하게 되면, 문재인 정권 5년 동안의 성과는 물론이고 1987년 민주화 이후로 축적된 성과들까지 위험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행안부 경찰국으로 경찰청을 통제한다는 발상까지 나왔다는 것은, 이 정권이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마인드를 갖고 있음을 함축한다. 한국 사회가 1987년 이전은 물론이고 1979년 이전으로도 퇴행할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윤 정권이 국회와 야당을 설득하는 협력의 정치를 모색하기보다는, '속 편한' 시행령 정치에 스스로 매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갖게 만든다. 대통령령에 의존해 이른바 '명령통치'를 남발하는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처럼 막장 정치로 함몰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된다.

법률가 출신인 사이에드 대통령이 대통령령을 비롯한 각종 명령을 통해 의회 같은 헌법 기관들을 임의로 해산시키는 상황은 조롱에 가까운 국제적 반응을 초래하고 있다. 의도가 좋든 나쁘든, 대통령의 명으로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발상이 세계인들의 비웃음을 살 만하다.

윤 정권의 '시행령 통치'는 긴급조치 만능주의에 빠졌던 박정희 정권 후반기의 위험성도 떠올리게 할 만하다. 박 정권도 긴급조치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오류에 빠졌다가 몰락을 자초했다.

1972년에 개정된 이른바 유신헌법 제53조 제1항은 "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중대한 경우에만 긴급조치를 내놓도록 했지만, 박 정권은 1974년 1월 8일부터 이듬해 5월 13일까지 1년 4개월 동안 무려 아홉 차례나 이 조치를 남발했다. 그것도, 국민들의 개헌 논의를 차단할 목적에서였다. 스스로 긴급조치의 늪에 빠진 박 정권은 대한민국을 정말로 긴급 상황으로 몰아넣어 1979년 10·16 부마항쟁(부산·마산 민주항쟁)을 부르고 열흘 뒤 10·26 사태로 붕괴했다. 국민과 야당을 설득할 자신감을 상실한 정권이 긴급조치에 의존하다가 스스로 몰락한 것이다.

물론 윤 정권이 도구로 사용하는 시행령은 박 정권이 도구로 사용한 긴급조치와는 격을 달리한다. 하지만 시행령을 악용해 한국 사회를 후퇴시키는 지금의 행보가 반복되다 보면, 스스로 그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또 시행령이든 긴급조치든 이런 것에 의존하는 것은 국민과 야당을 설득할 자신감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전략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시행령 통치'는 윤 정권에 불리하다. 검사 출신을 비롯한 법률가 출신들이 다수 포진한 정권이라, 시행령을 통해 국회 입법을 무력화시키는 일이 자신만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윤 정권이 형성해놓은 싸움의 기본 구도가 그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점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윤 정권은 입법권을 장악한 야당을 공략하고자 시행령 제·개정이라는 무기를 꺼내들었지만, 이런 식의 정치투쟁이 심화되다 보면 결국에는 상위 입법권을 가진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보다 상위의 규범을 만들 수 있는 곳은 국무회의장이 아니라 국회 본회의다. 이 투쟁이 장기화되면 야당은 시행령을 들고 나오는 상대방을 법률로 가둬놓는 방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자신들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한 전쟁을 윤석열·한동훈이 벌여놓았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옛날로 치면 왕이다. 하지만 대통령령은 왕명과 다르다. 왕조국가의 왕명은 최상위 법령이지만, 민주제 국가의 대통령령은 국회 법률의 하위에 있다. 대통령령은 왕명에 비해 형편 없이 취약하다. 대통령령 등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해 개혁 조치들을 후퇴시키려는 전략은 장기적으로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세계 경제는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블랙홀 같은 데로 빠져들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물가상승의 끝이 어디일지, 경제위기의 끝이 어디일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권은 거시적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현미경을 들고 시행령의 빈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윤 정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전체를 위험하게 만드는 악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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