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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미·중관계사] 중국 공산당의 대미 인식의 전환 계기

입력 2022. 06. 2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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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은 1921년 창당 이후 국민당과 동일한 목표를 두고 정쟁과 전쟁을 지속했다.

그 목표는 중국 통일과 식민 통치로부터의 민족 해방이었으며 이의 주체는 당연히 각 당이었다.

이런 정치적 배경 때문에 공산당은 국민당은 물론 중국에 잔존하던 제국주의 세력을 척결하는 데 혁명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가 1931년 일본의 중국 침략이 시작되며 공산당은 반제국주의 운동을 보류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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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은 1921년 창당 이후 국민당과 동일한 목표를 두고 정쟁과 전쟁을 지속했다. 그 목표는 중국 통일과 식민 통치로부터의 민족 해방이었으며 이의 주체는 당연히 각 당이었다. 이런 정치적 배경 때문에 공산당은 국민당은 물론 중국에 잔존하던 제국주의 세력을 척결하는 데 혁명의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가 1931년 일본의 중국 침략이 시작되며 공산당은 반제국주의 운동을 보류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에 파시즘 바람이 불며 공산혁명의 방향도 틀어졌다.
1935년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총서기는 중국 공산당 수장 마오쩌둥에게 제국주의 국가와 협력할 것을 요청하는 지령을 내린다. 이를 받은 마오는 1935년 12월 산시성 와야오바오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항일 민족통일전선 수립 결의를 통과시켰다. 그러면서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모든 나라, 당파 및 개인과 협상하고 수교하고 동맹 조약의 관계를 맺을 것을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오는 1936년 모든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정책을 포기했다. 대신 미국을 포함한 반파시스트 세력과의 국제통일전선 결성을 제안했다. 이런 그의 결정은 1936년 에드거 스노 기자와 마오의 회견을 통해 세계로 알려졌다.
에드거 스노(왼쪽)와 마오쩌둥. 출처:위키피디아
소련이 독일,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을 1939년과 1941년에 각각 맺으며 마오는 다시 국민당 척결로 정책 전환을 시도했다. 일본의 공세가 누그러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일본은 파죽지세로 중국과 주변 지역을 점령해갔다. 또한 독일이 1941년 6월22일 소련을 침공하고 그해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면서 공산당은 태평양전쟁 선언을 발표한다.

이 선언은 미·영과 태평양 각국의 항일전쟁을 정의로운 해방전쟁으로 정의하고 미·영의 승리를 민주와 자유 진영의 승리로 규정했다. 이런 의식에서 공산당은 미·중·영 및 기타 태평양 국가와의 반일 군사동맹을 정당화하게 된다. 미·영과의 통일전선이 일본 제국주의 소멸과 중국 민족 해방의 전제 조건임을 명시한 것이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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