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에 마약 성분이.. 일본약의 배신[위험한 약쇼핑①]

정진용 입력 2022. 6. 27. 06:03 수정 2022. 6. 2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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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아이 먹는 순한 약" 온라인 광고
한외마약 성분 포함..부작용 간과할 수 없어
식약처 "단속하는데..한계"
①감기약에 마약 성분이… 일본약의 배신
②낙태·탈모…온라인서 판치는 처방 없는 처방약
③국민이 알아서 조심해라? 손 놓은 식약처·관세청
온라인에서 홍보 중인 일본 감기약.   그래픽=이해영 디자이너

# A씨 집에는 언제나 감기약이 준비되어 있다. 장모님으로부터 일본에서 제조된 약을 소개받은 이후부터다. ‘효과가 탁월하다’는 그 약을 먹었더니 증상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A씨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210정을 추가 주문했다.

해외에서 의약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었다. 해외 직접구매(직구)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직구액은 처음으로 5조원을 넘어섰다. 인천본부세관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상반기 인천공항으로 반입된 해외직구 물품은 1837만8000건으로 전년도 대비 7.7% 증가했다. 이 가운데 의약품은 47만1000건이다.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커피·차에 이어 4위다.

특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은 의약품 해외 구입을 부추겼다. 오미크론 변이가 퍼졌던 지난 3월 의료체계가 마비되자 재택 치료가 늘었고, 약국에서는 종합 감기약이 동났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해외 감기약은 대체제로 떠올랐다. 

일본 집집마다 있는 상비약?...한외마약 성분 포함

일본 타이쇼 제약의 종합감기약 ‘파브론골드A’도 그 중 하나다. 

포털사이트에서 일본 감기약을 치면 파브론골드A가 바로 나온다. 직구,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판매한다. 판매자들은 블로거에게 돈을 주고 글을 올리는 식으로 홍보 중이다. 한 달 사이에만 홍보글 37건이 올라왔다. ‘온 가족이 함께 먹는다’, ‘임산부와 아이도 먹는 순한 약이다’ 등 제품 안전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파브론골드A에는 한외마약 ‘디히드로코데인’ 성분이 들어있다. 디히드로코데인은 아편에서 추출한 마약 성분인 코데인의 구조를 변형한 것이다. 디히드로코데인 단일제는 마약이다. 다만 다른 성분 3가지 이상과 혼합한 복합제는 한외마약, 즉 마약 성분이 함유돼 있지만 마약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약품으로 분류된다. 디히드로코데인 함량이 단일제에 비해 낮아 신체적, 정신적 의존성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 다른 성분들이 섞여 있어 다시 제조해 마약을 만들지 못한다.

한국, 12세 미만 처방 금지...해외서 사망 보고도

한국에서 디히드로코데인이 들어간 약을 사려면 의사 처방이 있어야 한다.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는 의사라도 만 12세 미만 소아에게 디히드로코데인이 든 기침, 가래약을 처방할 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일본 후생노동성,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의약품청(EMA) 등 해외 규제기관 조치사항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대표 부작용은 중증 호흡곤란이다. 특히 18세 미만의 비만,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후군 또는 중증 폐질환 환자의 경우 깊은 진정·호흡 억제·혼수 및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심각한 호흡 억제로 소아 환자가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일본에서도 2019년부터 디히드로코데인이 포함된 약제의 12세 미만 복용을 금지했다. 파브론골드A는 처방전 없이 구매 가능하지만, 일반의약품 중에서도 위험도가 비교적 높은 의약품인 제2류 의약품에 해당한다. 일본 PMDA(의약품 및 의료기기 종합기구) 홈페이지에서는 연도별로 부작용 사례가 올라오는데 2013~2014년 머리 손상, 부동성 현기증 등이 보고됐다. 

문병민 전 대한아동병원협의회 광주전남 지회장은 “디히드로코데인은 중추신경에 작용해 기침을 멎게 한다”며 “12세 이하 아이들은 스스로 가래를 뱉어내지 못한다. 가래가 폐로 넘어가면 폐렴 등 폐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 조치에도…디히드로코데인 성분 감기약 판매 중

파브론골드A를 복용 주의 의약품으로 보는 일본과 달리 국내 소비는 무분별하게 일어난다.

주의사항이나 부작용을 알리는 판매 사이트는 소수다. 제품 겉면에 복용법이 나와 있지만 일본어로 쓰였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는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한외마약 성분이 들었다는 사실과 그 위험성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복용하고 있는 셈이다. 

온라인을 통해 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약사법에 따르면 약국이나 점포 외는 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 약사가 아닌 자가 약을 파는 것도 문제다. 무자격자가 의약품을 조제·판매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의사의 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을 판매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식약처도 이미 파브론골드A 온라인 거래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해 11월 신고를 받고 파브론골드A 구매대행 및 직구 사이트를 차단해달라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요청했다. 하지만 단속의 한계를 틈타 정보 제공의 의무를 저버린 판매자와 효과를 맹신한 소비자간의 거래가 계속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자체 모니터링, 신고 등 정보를 바탕으로 온라인을 통한 의약품 판매·광고가 확인되면 방통위에 사이트 차단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지속 조치하고 있다”면서도 “사이트가 차단되어도 주소를 바꿔 다시 사이트를 신설하는 등 특성에 의해 온라인상에서 완전하게 차단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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