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한겨레

윤 대통령님, '야근 짜장면' 시대로 돌아가자고요?

전정윤 입력 2022. 06. 27. 18:10 수정 2022. 06. 29. 12:45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편집국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편집국에서] 전정윤 | 사회정책부장

2000년대 초반 신문사에 입사했다. ‘나 때는 말이야…’ 모든 종합일간지와 방송사 수습기자들이 새벽 5시 무렵 네댓개 경찰서의 사건·사고 취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1진의 ‘발’이 되어 취재 현장을 뺑뺑이 돌다가, 저녁이면 회사에 들어와 회의와 회식을 하고 다시 외근을 나갔다. 경찰서를 돌며 사건·사고를 취재해 마지막 보고를 마치면 새벽 2시 반. 경찰서 화장실에서 세수와 양치질을 한 뒤, 2진 기자실에서 잠시 눈을 붙이면 삽시간에 새벽 5시였다. 수습 5~6달 동안 하루 21.5시간, 주 6일 129시간 경찰서에서 쪽잠을 자며 일하는 ‘하리꼬미’(‘잠복한다’는 뜻의 일본어)였다.

기자들의 통과의례였던 ‘하리꼬미’는 변화된 사회 분위기와 언론 환경 속에서 진작부터 반인권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언론사들은 ‘전통’으로 자리잡은 ‘관행’을 바꾸려 하지 않았으나, 2018년 주 52시간 노동상한제(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 ‘하리꼬미’도 단번에 무너졌다. “수습이 가장 늦게 출근해 가장 일찍 퇴근한다”는 ‘나 때는 하리꼬미’ 기자들의 탄식도 잠시였다. 어디 가서 남의 장시간 노동을 걱정할 처지가 아닌 기자들도 52시간 언저리에서 일을 끊을 명분과 체계가 마련됐다. 이제 겨우 초과근무 절대량을 줄이는 첫걸음을 뗐다. 물론 퇴근 이후 일과 ‘연결되지 않을 권리’ 같은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까지는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과로 노동을 문화로 용인해온 언론사조차 이제 주 52시간제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해졌다.

지난주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제 무력화 방안을 내놨다. 주 12시간까지 가능한 연장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관리해, 한달에 한주는 최장 92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52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방안을 ‘노동시장 개혁추진 방안’이라고 내놨다. 스페인·벨기에 등 유럽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국민 삶을 향상하기 위해 주 4일제를 실험하고 있다. 아이슬란드 기업 85%, 미국 기업 27%가 주 4일제를 도입했다고 한다. 남의 나라까지 갈 필요 없이, 국내 기업조차 ‘주 4일제’(밀리의 서재), ‘주 4.5일제’(CJ ENM), ‘주 32시간제’(우아한형제들)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한 엠제트(MZ)세대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극소수 잘나가는 고학력 첨단기술 인재들만 ‘워라밸’을 따지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연일 반도체 인재 양성을 주문하는데, 정의당이 발표한 ‘2021 산업기술인력 수급 실태조사 분석 결과’를 보면, 반도체 산업 부족 인원 1621명 중 894명(55%)이 고졸이었다. 주로 특성화고를 졸업한 전기·전자기술 인력인데, 일자리를 준대도 안 간다. 얼마 전 <조선일보>는 이와 관련해 “업무 강도가 세고 교대 근무가 잦아 근무 환경이 힘들어 (특성화고) 정원을 채우기도 힘들다”고 분석했다.

산업 현장 현실이 이런데, 주 92시간이라니. 나라 밖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은 둘째 치고, ‘지금 여기’의 분위기도 파악 못 하는 정무 감각에 적잖이 놀랐다. 아니나 다를까,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놓았던 “주 120시간 바짝 일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과 오버랩되며, 기사 댓글 열 중 일고여덟이 “대통령부터 주 92시간 일하라”며 걸고넘어졌다. 윤 대통령은 ‘야근 검사실에서 나는 짜장면 냄새’가 그리워 변호사를 접고 검찰로 돌아왔다지만, ‘야근 짜장면’은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다. 여론의 융단폭격에 고용노동부도 부랴부랴 11시간 연속휴식이 보장되면, 주 최대 근무시간은 92시간이 아니라(‘고맙게도’ 80.5시간으로 줄어든다)는 셈법을 들고나왔다. 정부는 92시간이든 80.5시간이든 ‘극단적인 사례’일 뿐이라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289명이 과로사로 인정받은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 국가다.

주 52시간제 도입 전인 2017년 우리나라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8시간이었다. 지난해엔 1928시간으로 줄었으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00시간대를 한참 웃돈다. 주 52시간제 퇴로를 고민할 때가 아니라, 주 4일 일하며 많이 버는 노동자와 근로기준법 밖에서 과로 노동을 하며 적게 버는 노동자의 ‘소득과 노동시간 양극화’ 해법을 ‘바짝’ 내놓을 때다.

ggum@hani.co.kr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