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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필의 IP 톡 <11>] 코로나19 백신, 인도주의와 특허 보호의 갈림길

박성필 입력 2022. 06. 2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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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필 KAIST 문술 미래전략대학원 교수 지식재산대학원프로그램(MIP) 책임교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개발과 공급 과정은 지식재산(IP) 전쟁이었다. 지난 2020년 3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백신 개발을 위한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에 100억달러(약 13조1500억원)를 투입해 신속한 백신 개발을 독려했다.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는 11개월 만에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백신 개발이 10년 이상 걸린다는 통념이 깨졌다. 진뱅크(GenBank)에 공유된 코로나19 바이러스 게놈 정보도 큰 도움이 됐다. 바이오엔텍, 모더나 같은 스타트업의 기술력도 한몫했다.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백신이 한 국가 단독으로는 생산하기 어려운 매우 복잡한 제품인데, 글로벌 시장에서 각국이 특화된 투입물을 백신 생산에 제공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고 했다. 크루그먼에게 코로나19 백신 생산 과정은 세계화의 장점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그것은 또 그의 ‘신무역이론’이 타당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관점을 선진국의 백신 공급망을 넘어 ‘세계’로 확장하면 어떻게 될까?


백신 전쟁과 백신 형평성

국제통계 사이트 ‘Our World Data’에 따르면 올해 6월 18일 기준, 한 번이라도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아프리카 인구는 부룬디 0.12%, 나이지리아 12.96%, 수단 13.20%, 에티오피아 21.01%, 케냐 22.87% 등에 불과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우리 모두 안전해질 때까지는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부유국이 저개발국 백신 공급을 지원할 것을 촉구해 왔다. 하지만 저개발국은 백신 생산 인프라나 역량 있는 생산 업체를 보유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바이오협회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백신 수출 상위 10개국이 세계 백신 수출액의 93%를 차지했다. 이들은 우수한 백신 생산 인프라를 갖추고, 전문적이고 차별화된 백신 생산 업체들도 보유하고 있다. 저개발국이 물리적인 인프라와 업체들을 갖추면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것만으로 바로 백신을 생산할 수는 없다. 백신을 보호하는 IP 이슈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백신 기술은 일단 특허로 보호 가능하다. 한편 무역 관련 IP에 관한 협정(TRIPS) 제31조는 특허의 강제실시권(compulsory license)을 규정했다.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은 특허권자의 사용 허락 없이도 특허 물품의 자국 내 판매를 허용하는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특허권자와 합리적인 조건으로 실시계약을 체결하려는 노력이 무산된 경우,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같은 국가비상사태나 극도로 시급한 상황에서만 인정되는 제도다. 회원국 국내법이 강제실시권을 규정하고 있어야 하고, 강제실시를 하더라도 특허권자에게 적정한 대가는 지급해야 한다. 2001년에는 TRIPS 협정과 공중보건에 대한 ‘도하 선언(Doha Declaration)’ 채택으로 TRIPS 제31조의 2가 추가됐다. 강제실시를 통해 국제 공중보건 목적의 수출을 가능하게 한 것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특허의 강제실시권은 최소한 백신 생산과 관련해서는 큰 역할을 못 하는 것도 사실이다. 백신 생산에는 영업비밀과 노하우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회사라도 공개된 다른 회사의 특허기술 정보만을 기초로 안전한 백신을 생산하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백신 형평성(vaccine equity)’ 주장은 주로 무역 관련 TRIPS의 적용 면제(waiver) 신청과 관련해 제기됐다. 2020년 10월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WTO의 TRIPS 이사회에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모든 나라의 코로나19 백신, 치료제, 진단기기 등에 대한 IP 적용 면제를 신청했다. 2021년 5월에는 위 두 나라와 이집트, 케냐, 파키스탄 등 여러 나라가 최소 3년의 면제 기간, 구체적인 면제 대상 물품과 기술을 명시해 IP 적용 면제를 신청했다. TRIPS 적용이 면제되면 특허, 저작권, 영업 비밀을 포함한 모든 IP를 면제 기간 중 사용할 수 있다. 100개 이상의 국가, WHO와 UNITAID 등 국제기구, 300개 이상의 단체, 학자, 정치인들이 백신 형평성 관점에서 이 나라들을 지지했다.


코로나19 백신 특허 개발국들, 상반된 입장 

유럽연합(EU)은 백신 형평성보다 IP 보호를 중시해 왔다. TRIPS의 특허 강제실시 등 기존 제도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아프리카 저개발국들은 백신 IP 문제보다는 전문 의료진 부족, 생산과 냉장 보관, 운송시설의 부족, 백신 접종 기피 경향 등이 현실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반면 미국 정부는 EU처럼 IP 보호를 더 중시하던 입장이었지만, 2021년 5월 무역대표부(USTR)가 전격적인 백신 형평성 지지를 선언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편 EU와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은 코백스(COVAX)를 통한 대규모 백신 기부 프로그램들을 운용해 왔다. 물론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백신을 재고 처리를 위해 기부한다는 비판들도 있다. 

이번 6월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12차 WTO 각료회의(M-12)는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TRIPS 특허 강제실시 요건을 완화하는 각료 선언을 채택했다. 이에 따르면 회원국인 개발도상국이 특허 강제실시 근거법이 없어도 5년간은 행정부나 법원의 명령 등으로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수 있고, 강제실시권 발동 전에 특허권자로부터 실시 허락을 받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되며, 강제실시로 생산된 제품을 다른 개발도상국에 수출도 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오히려 코로나19 백신 수요가 줄고 재고가 쌓이고 있는 시점이어서 때늦은 감이 있다. 또 이번 각료 선언은 특허 강제실시만 언급했고, 영업비밀과 노하우 등 중요한 IP에 대한 조치는 없었다.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는 이윤추구보다 생명과 인류애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백신 형평성 주장은 타당하다. 반면 백신 개발 업체에 IP 보호가 연구개발의 강력한 동기 내지 보상이 되는 점이 IP 제도의 취지인 것도 사실이다.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것은 어렵지만, 아무튼 글로벌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미국 베일러 의대의 마리아-엘레나 보타지, 피터 호테즈 교수 연구팀은 아단위 단백질 백신(Protein Subunit Vaccine)인 코르베백스(CORBEVAX)를 개발했다. 부작용이 적고 안전하면서도 코로나19에 90% 이상, 델타 변이에 80% 이상의 예방 효과를 나타냈다고 한다. 이 백신이 특별한 것은 연구진이 코르베백스 백신에 대한 IP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개발진은 이 백신이 저개발국에서 코로나19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처럼 권리자 스스로 IP를 공유하는 방식이 궁극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최근 화이자, 모더나, 존슨앤드존슨 주주총회에서 코로나19 백신 IP를 공유하자는 주주들의 제안이 있었다. 안건이 부결되기는 했지만, 주주들이 이러한 고민을 담은 의견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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