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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처음 만든 술은 무엇이었을까? [전통주 주(酒)저리 주(酒)저리]

이대형 입력 2022. 06. 28.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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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우리 술을 만들어 보자

[이대형 기자]

<파친코>라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드라마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증가했다. 그 중에서 한국 사람은 공감한 장면이지만 외국인은 쉽게 공감 하지 못한 장면이 있다. 선자(여자주인공)가 일본으로 가기 전 엄마 양진이 어렵게 쌀을 구해서 하얀 쌀밥을 해주는 장면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쌀 수탈로 쌀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어렵게 구한 쌀을 정성스럽게 씻어 밥을 해주는 모습 그리고 이 모든 어려움을 알기에 선자도 아무 말 없이 눈시울을 붉힌 채 밥을 먹는 장면은 그 시대를 살지 않았어도 정서적인 공감을 가지게 하는 장면이다. 쌀밥은 한국인에게 '밥심', '정'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무엇이었다.
  
▲ 흰쌀밥을 먹는 선자 파친코에서 쌀밥을 먹는 장면
ⓒ 애플티비
 
지금은 없어진 말 중에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음력 4~5월), 농가 생활에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운 고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통일벼가 나오고 비료나 농약을 통해 식량이 넉넉해지기 전까지 이 보릿보개를 넘어서 쌀밥을 충분히 공급하는 게 정책의 큰 목표인 적도 있었다. 국민들에게 쌀밥을 푸짐히 먹게 한다는 목표에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이장의 위대한 영도력의 비밀처럼 "뭘 좀 마이 멕여야지"만 정부에 불만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처럼 쌀밥을 배불리 먹는다는 것이 어렵던 시절을 우리는 얼마 전까지 겪었다. 그렇다면 '식(食)'의 기본인 쌀밥을 우리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주식으로 곡물을 먹은 것은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부터로 보고 있다.

한반도 최초 재배된 벼로 이야기 되는 '가와지 볍씨'는 1991년 경기도 고양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쌀 12톨을 발굴한다. 방사성탄소연대 분석 결과 5020년 전의 쌀로 밝혀졌으며 경작한 벼라는 증거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의 쌀과 관련된 역사는 매우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가와지볍씨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에 전시된 가와지 볍씨
ⓒ 고양가와지볍씨박물관
 
하지만 한반도에서 신석기 시대에 가장 많이 재배를 한 농작물은 벼가 아닌 좁쌀, 피, 수수 등의 밭작물이다. 신석기시대 유적인 황해도 봉산 지탑리 유적에서는 좁쌀과 피가 발견되었고, 평양 남경 유적에서도 좁쌀이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 가운데 무산 호곡, 회령 오동 유적에서도 기장, 수수, 콩, 팥 등이 발견되었다.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신석기 시대를 포함해서 삼국시대의 주식은 쌀이라기보다는 좁쌀, 보리 등 밭작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도 귀족들이 쌀밥을 먹었다면 평민들은 조나 보리를 먹었다. 기장과 조, 피, 수수 등의 작물을 먼저 먹다가 보리에 이어 벼가 들어오면서 우리 민족의 식생활은 변화를 맞이한다.

하지만 쌀은 역사적으로 일반 백성의 주식이 아니었다. 쌀은 국왕, 왕족, 관료 양반 등 지배층의 주식이었고 피지배층에게는 조세 납부의 대상일 뿐이었다. 대부분의 백성까지 쌀밥을 먹을 수 있었던 시기는 많은 문헌에서 조선 중기로 보고 있다.

이처럼 쌀이 귀하던 시대에 사람들은 무슨 재료로 술을 만들었을까? 우리나라 문헌에서 술 이야기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이규보(李奎報)가 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동명왕(東明王)편이다. 이 당시 곡물술이라는 존재가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삼국시대 이전인 마한(馬韓)시대부터 수확 후 맑은 곡주를 빚어 조상께 먼저 바치고 춤과 노래와 술 마시기를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곡물로 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그 곡물이 쌀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당시 곡물의 재배 형태로 유추해보면 잡곡이 술 원료였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우리가 쌀 술을 전혀 만들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쌀의 귀한 정도로 봐서는 쌀을 이용한 술은 왕과 귀족이 마시던 술로 한정되었을 것이다.

쌀을 이용해서 술을 만든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1123년)에 송나라 사신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파견되어 온 서긍(徐兢)이 작성한 <고려도경>에 "고려에서는 찹쌀(나미, 稬米)이 없어서 멥쌀(갱,秔)에 누룩을 섞어서 술을 마드는데, 빛깔이 짙고 맛이 진해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고 하였다.

고려에서는 멥쌀만 재배했고 그것을 이용해 술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여러 기록들을 살펴보면 고려에도 찹쌀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기에 아마도 멥쌀과 찹쌀을 사용한 술들이 만들어 졌을 것이다. 또한, 일명 떠먹는 술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화주> 역시 쌀을 이용한 누룩으로 술을 만들었기에 당시에도 일부 술 제조법에 쌀의 사용은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고려시대에 쌀 술이 존재했기에 그 이전인 삼국시대에도 쌀 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쌀 술이 어떤 술 만들기에 사용되었는지는 얼마나 사용되었는지 현재의 자료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도 당시 잡곡 술과 함께 쌀 술이 공존했을 것이며 쌀 술은 왕과 귀족 위주의 상류층에서 잡곡 술은 백성들이 마셨을 것이라 유추만 할 뿐이다.
  
▲ 이화곡 이화주를 만들때 쓰는 쌀로 만든 누룩 이화곡
ⓒ 국립민속박물관
 
최근 우리 술을 만드는 재료에 있어 쌀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다. 쌀로 만든 막걸리를 비롯해서 약주, 청주, 소주 등 거의 대부분의 술 재료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다. 쌀로 만든 술을 우리가 오랫동안 마셔왔기에 익숙한 것도 맞지만 언제부터인가 술의 원료가 단순화 되고 있다.
재료가 단순화 되다보니 술의 맛들도 비슷해지고 독창성이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 조상이 풍족하지 못했기에 오랜 역사 속에서 마셔왔던 조, 수수, 보리 등의 잡곡이 들어간 다양한 전통주 역시 우리의 오랜 역사성을 가진 술일지 모르겠다. 쌀이외의 다양한 잡곡 원료의 사용은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힐 것이며 우리에게 더 다채로운 술을 즐길 수 있게 할 것이다.
 
▲ 다양한 잡곡들 술의 원료로 가능한 다양한 잡곡들
ⓒ 픽사베이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 동시 게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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