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행안부 경찰국', 자꾸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김종성 입력 2022. 6. 2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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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이승만 독재를 유기적으로 보조했던 내무부와 치안국

[김종성 기자]

 경찰의 강한 반발 속에 행정안전부가 경찰국 신설 뜻을 밝힌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근무자의 경찰청 로고가 거울에 비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찰청과 행정안전부는 서로 멀면 멀수록 좋다. 경찰이 가까이하면 안 되는 것들이 행안부 안에 많기 때문이다.

현행 정부조직법 제34조 제1항은 "행정안전부장관은 서무, 법령 및 조약의 공포, 정부조직과 정원, 상훈, 정부혁신, 행정능률, 정부청사의 관리, 지방자치제도,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지원·재정·세재, 낙후 지역 등 지원, 지방자치단체간 분쟁조정, 선거·국민투표의 지원,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 비상대비, 민방위 및 방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고 규정한다.

다양한 사무들이 열거돼 있지만, 내무부 시절 이래로 행안부의 핵심 업무는 선거·국민투표·지방행정이다. 경찰청이 독립할 당시에 시행되던 1991년 정부조직법 제31조 제1항은 "내무부장관은 지방행정·선거·국민투표 및 민방위에 관한 사무를 장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감독한다"고 규정했다. 이런 규정이 위와 같이 복잡해졌을 뿐, 행안부의 핵심 업무가 선거·투표·지방행정이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행안부의 핵심 업무는 경찰이 건드리면 안 되는 것들이다. 경찰이 선거나 국민투표에 개입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위협하는지는 매년 4월 19일마다 상기되고 있다. 자율성이 생명인 지방행정에 중앙정부의 경찰권력이 개입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경찰이 가까이 하지 말아야 것들이 행안부의 핵심 업무라는 사실은 경찰과 행안부를 가급적 띄워놓는 게 좋다는 이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이치를 무시하고 내무부를 매개로 경찰과 선거 사무를 연결시켰다가 민주주의도 망치고 그 자신도 망친 것이 바로 이승만 정권이다. 이승만 정권은 일제강점기 때 비대해진 경찰 권력을 그대로 이어받아 독재정치에 악용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내무부와 치안국의 끈끈한 밀착을 기초로 독재정권이 유지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세트'였던 내무부장관과 치안국장

내무부와 치안국을 접착시키는 이승만 대통령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 내무부장관과 치안국장을 하나의 세트처럼 임명하고 이를 통해 국정쇄신을 시도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국회 내 지지 기반이 취약해 국회 간선제로는 1952년 8.5 대선을 기약하기 힘들었던 이승만은 그해 7월 4일 불법적인 발췌개헌으로 직선제를 관철시켰다. 직선제 개헌안이 그해 1월 18일 국회에서 부결됐는데도 자파의 개헌안과 반대파의 개헌안 중에서 각각 일부를 발췌한 뒤 경찰력을 동원해 개헌을 성사시켰다.

바로 이 발췌개헌을 목적으로 등장시킨 조합이 이범석 내무부장관과 윤우경 치안국장이다. 이범석은 그해 5월 24일 임명되고, 윤우경은 다음날 임명됐다.

1948년 대선에 이어 1952년 및 1956년 대선에서 연거푸 당선된 이승만은 1960년 3.15 대선 1년 전부터 4선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그가 이를 위해 등장시킨 조합이 최인규-이강학이다. 1959년 3월 20일 최인규 내무부장관을 임명하고, 7일 뒤 이강학 치안국장을 임명했다.

최인규 임명이 1년 뒤의 대선을 위한 포석이었다는 점은 그 자신의 진술에서도 증명됐다. 이승만 정권 몰락 뒤인 1960년 7월 9일 법정에 선 최인규는 "자유당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장관이 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렇습니다"라고 쿨하게 답했다(같은 날짜 <동아일보> 3면).

3.15 대선이 사상 초유의 부정선거로 평가되고 이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심해지자, 이승만은 사태 수습을 목적으로 새로운 조합을 내놨다. 1960년 3월 23일 친일파 홍진기를 내무부장관에 임명하고 5일 뒤 조인구를 치안국장에 임명했다. 이런 사례들은 독재 연장을 위해 내무부와 치안국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이승만의 국정운영 스타일을 반영한다.

1948년 11월 4일 대통령령 제18호로 제정된 내무부직제 제3조는 "내무부에 비서실, 지방국, 치안국 및 건설국을 둔다"고 규정했다. 1991년 7월 5일자 <조선일보> 22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찰청 발족 당시에 노태우 정권이 경찰청을 계속 통제할 목적으로 '내무부 치안국' 또는 '내무부 경찰국'을 설치하려 한 일이 있었다.

이처럼 치안국과 경찰국이 동의어처럼 쓰였으므로, 1948년 내무부직제 속의 치안국도 경찰국으로 바꿔 표기할 수 있다. 행안부에 경찰국을 두고자 하는 윤석열 정부의 희망이 1948년 내무부직제에서 매우 '이상적'으로 구현돼 있었던 것이다.

한 몸 된 내무부와 치안국, 그 결과는 

내무부 내에 경찰국 혹은 치안국이 배치되는 이 같은 구조가 이승만 독재를 유기적으로 보조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다. 3.15 부정선거 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내무부와 치안국이 밀착되는 것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위협하는지 절감할 수 있다.

최인규를 포함해 이승만 정권의 내무부장관들이 선거부정을 대담하게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지원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경찰력을 배경에 뒀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관 휘하의 치안국을 통해 경찰 병력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었기에 부정행위도 손쉽게 저지를 수 있었다.

최인규 장관은 그런 경찰 병력을 '야당 설득'에도 활용했다. 현직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민주당원들의 탈당을 권유할 때 경찰들을 앞세웠던 것이다.

대선을 2개월 앞둔 1960년 1월 16일에 민주당 의원들이 최인규를 국회 본회의로 호출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날 발행된 <조선일보> 기사 '경찰공무원의 선거간섭 논란'은 "(최인규를 상대로) 야당 의원들은 또 경찰관이 가족까지 동원해서 민주당원의 탈당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하였고"라는 말로 국회 본회의 풍경을 보도했다. 최인규가 내무부 치안국을 통해 일선 경찰뿐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야당 협박에 동원했던 것이다.

'4할 사전투표'라는 말이 있었다. 최인규 내무부장관이 이승만을 찍은 용지를 투표함에 미리 넣어 이승만이 40% 득표율을 확보하도록 만든 상태에서 3·15 선거를 실시한 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최인규 장관 및 이강학 치안국장 등을 포함한 3.15 부정선거 사범들에 대한 1960년 7월 9일 공판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경찰 조직은 4할 사전투표를 위한 준비 작업에도 적극 가담했다. 이들은 대전 지역 군부대에서 비밀리에 거행한 전국경찰국장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날 발행된 <동아일보> 3면에서 자세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경찰들이 선거부정을 논의하기 위해 군부대에 모이지는 않는다. 이런 비밀 회의를 위해서라면 군부대를 피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지방경찰국장들이 군부대에 모여 4할 사전투표를 논의했다. 내무부장관과 그 위의 대통령이 그들의 배후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의 공판 진술에 따르면, 최인규 장관과 이강학 치안국장은 서울시청 앞인 반도호텔 809호에서 선거 승리를 위한 작전을 수립했다. 내무부에 필요한 선거자금의 액수를 결정한 쪽은 치안국장이었다. 매표, 선거위원 매수, 완장 제작 등을 담당한 쪽도 치안국장이었다.

이처럼 내무부와 경찰이 한몸이 돼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내무부 치안국을 통해 경찰과 내무부가 밀착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의 그같은 기획으로 인해 경찰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가까이 하게 되고 3·15부정선거에 가담하는 역사적 과오까지 범하게 됐다.

경찰청이 독립된 1991년에 노태우 정권은 경찰 조직을 쿨하게 보내주지 않았다. 국민 여론에 떠밀려 경찰청을 독립시키면서도 내무부 경찰국을 만들어 어떻게든 붙들어두고 싶어했다. 경찰을 이용해 선거부정을 일삼고 정권을 연장하는 데 익숙했던 과거 정권들의 관성이 낳은 결과였다고 평할 수 있다. 행안부와 경찰을 밀착시키는 '행안부 경찰국' 발상은 그 같은 어두운 역사를 자꾸만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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