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악어밥 된 주머니쥐의 피눈물.."뒤돌아보지 말걸."

정지섭 기자 2022. 6. 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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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뒤쫓아온 악어에게 머뭇거리다 날벼락
캥거루와 같은 유대류이지만 아메리카 대륙에 고루 분포
열 마리 훌쩍 넘는 새끼 낳은 뒤 직접 업어서 키워

그리스신화의 오르페우스, 구약성경 롯의 아내, 그리고 장자못 설화에 나오는 마음씨 착한 며느리까지…. 시대도 장소도 제각각인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미 짐작하고 계신 분도 있을텐데요. 그렇습니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사항을 깨고 뒤를 돌아보았다 끔찍한 파멸을 맞았습니다. 지옥 구덩이에서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의 손을 이끌고 빠져나가던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는 순간 에우리디케는 지옥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롯의 아내는 저주받은 성을 빠져나오다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소금기둥으로 변했습니다. 시아버지의 패악질에 대해 용서를 구한 마음씨 착한 며느리는 두고온 살림살이가 생각나 뒤를 돌아봤다가 그만 돌이 돼버리고 말았지요.

물에서 잔디밭으로 뛰어나온 악어가 주머니쥐를 향해 달려들고 있다. /Troy Wilburn Youtube
물에서 뛰어나온 악어가 주머니쥐의 머리를 물기 직전의 모습. /Troy Wilburn Youtube

동서고금 전해오는 이 격언 ‘절대 뒤돌아보지 말라’를 가련한 주머니쥐도 마음속에 되새겼으면 어땠을까요. 그러나 대자연의 서사는 그리스신화보다 가혹하고, 구약성경보다 냉정하며, 전래동화보다 비극적입니다. 뒤돌아보지 않았어야 할 순간에 뒤를 돌아봤다 되돌릴 수 없는 참혹한 최후를 맞은 주머니쥐의 영상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습니다. 트로이 윌번(Troy Wilburn)이라는 사람이 지난달 올린 동영상인데요.

물가 옆 잔디밭을 힘차게 걷던 주머니쥐를 향해 물속에서 악어가 진격합니다. 마치 수륙양용 불도저처럼요. 수중 생활에 익숙한 것으로 알려진 악어가 실제로 뭍에서 얼마나 빠른지, 전광석화 같은 습격 속도가 보여줍니다. 혼비백산한 주머니쥐는 바로 줄행랑 모드로 전환합니다. 언덕위 뭍을 향해 진격하죠.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이 주머니쥐의 미련을 자극한 걸까요?

주머니쥐가 사나운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다. 잡식성이라곤 하지만, 개구리나 도마뱀, 새와 설치류 등을 즐겨 먹는 작은 맹수라고 봐도 무방하다. /Smithsonian Zoo

그 속도만 유지했으면 여유롭게 멀찌감치 악어를 따돌렸을텐데, 도중에 뒤돌아보는 치명적 실수를 범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아니 생각이라는 것을 했을까요? 뒤를 돌아본 순간, 주머니쥐는 쩍벌린 주둥이를 앞세우고 벨로시랩터처럼 자신을 향해 내지르는 괴수와 정면으로 마주했을 것입니다. 밤고양이처럼 퀭한 파충류의 눈빛에 이미 기를 빨린 것일까요? 뒤돌아선채 얼어붙은 찰나의 순간, 그 포인트를 악어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특유의 치악력으로 주머니쥐의 머리를 움켜물은뒤 물을 향해 여유롭게 종종걸음합니다. 최후의 저항을 하지만, 악어에 머리를 물린채 처절하게 물속으로 끌려들어갑니다.

주머니쥐를 근접 촬영한 모습. 유대류중 유일하게 오세아니아가 아닌 미주대륙에 분포하고 있다. /San Diego Zoo

주머니쥐의 최후의 발버둥이 물결이 됐고, 마지막 가쁜 숨이 물거품이 됩니다. 후회의 몸부림이 잦아들고 그렇게 또 하나의 약육강식이 완성됩니다. 한눈에 봐도 어린 티가 확 나는 이 악어는 오늘의 승전을 에너지로 비축하며 괴물로 한걸음씩 자라났을 것입니다. 자연의 약육강식은 픽션이 아닌 팩트이기에 가혹합니다. 시청자로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저 어리석고 가엾은 주머니쥐가 어린 새끼들을 육아낭에 품은 어미가 아니기를, 그래서 족속의 희생은 최소화됐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괜히 주머니쥐라고 부르는게 아닙니다. 육아낭에서 새끼를 키워낸 뒤 직접 등에 업고 다니는 헌신적 모성애로 이름난 동물입니다. 영어로는 어포섬(opossum)이라고 하죠.

주머니쥐는 많게는 20마리까지 새끼를 낳지만, 어미의 젖꼭지수가 부족해 일부는 일찌감치 죽는다. 그래도 살아남는 새끼들은 어미가 정성껏 돌보면서 직접 업어서 옮긴다. /미주리주 홈페이지

캥거루·코알라로 대표되는 유대류입니다. 유대류에는 뿐만 아니라 코알라와 비슷한 웜뱃, 육식동물인 태즈메이니아데빌과 주머니고양이, 지금은 전설속으로 사라진 대형 육식동물 태즈메이니아호랑이 등이 있죠. 이 유대류들은 호주대륙을 위시한 오세아니아에만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그중 유일한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주머니쥐예요. 태평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분포해있어요.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남미 전역에서 카리브해, 멕시코를 지나 미국 동남부와 캐나다 서쪽 지역까지 터를 잡았어요. 그러다보니 플로리다 등 서식지가 악어와 겹치는 지역에서는 이런 횡액을 당하곤 한답니다. 잔혹한 동영상이지만, 하천과 숲 생태계를 떠받쳐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육아낭에 넣을 수 없을만큼 자란 새끼들도 한 동안 어미의 보살핌을 받는다. /San Diego Zoo

‘쥐’라는 타이틀이 붙었지만, 실은 작은 새나 알, 도마뱀과 개구리, 심지어 진짜 ‘쥐’까지 잡아먹는 육식성 잡식동물이죠. 유대류의 상징 육아낭은 다른 유대류에 비해서 그렇게 커보이지는 않아요. 주머니라기보다는 멀쩡한 몸에 지퍼가 나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이 육아낭에서 십여마리의 새끼를 키워내요 물론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을만큼 자라면, 어미는 직접 등에 업고 다녀요. 새끼가 하도 많아서 어미의 시야를 가리기도 하죠. 천덕꾸러기 새끼들을 이고지고 어미가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은 헌신적인 모성애의 상징입니다.

제발 새끼들이 독립할때가지만이라도 맹수들이 노리지 않기를 바라게 될 정도죠. 가슴저미는 육아 스토리지만, 정겹지만은 않습니다. 암컷의 젖꼭지는 최대 열세개입니다. 그보다 많은 숫자의 새끼가 태어나면 초과하는 숫자만큼 살아날 가능성은 제로가 됩니다. 태어나자마자 죽는 것이죠. 그래서 새끼들은 어미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젖꼭지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을 벌여야 합니다. 어미 젖꼭지가 곧 생명보험인 셈이죠.

새끼들을 업고 나뭇가지에 있는 주머니쥐를 그린 그림. 달의 모습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느낌이다. /워싱턴주 홈페이지

주머니쥐는 유대류 중에서도 1억5000만년전 안팎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입니다. 대부분의 유대류들이 남반구의 외딴 대륙 오세아니아에 고립되면서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진화해온 것과는 다른 경로를 거쳤죠. 주머니쥐과에는 무려 70여종이 있습니다. 원시적인 모습은 유지하되 북미에서 남미까지 다양한 지형에 맞게 적응능력을 키웠어요. 가령 북미의 주머니쥐는 나무타기의 명수여서 육아 중인 새끼들을 업고도 거뜬히 나뭇가지위를 원숭이처럼 옮겨다니기도 합니다. 중남미의 정글에 사는 종류는 암컷의 육아낭의 방수 기능이 뛰어나 새끼를 육아낭에 키우는 상태에서 수중이동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위험을 감지한 주머니쥐가 땅바닥에 누워서 침을 질질 흘리며 죽은 체 하고 있다. /워싱턴주 홈페이지

주머니쥐는 기본적으로 포식자보다는 피식자 신세일 때가 많은데, 천적에게 쫓기는데 별다른 도리가 없을 때는 정말 최후의 복불복 방법을 씁니다. 발라당 누워서 몸을 쪼그리고 침을 질질 흘립니다. 죽은 체 하는 거죠. 그것도 ‘신선한 사체’가 아닌 먹으면 탈이 날 것 같은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말예요. 몇시간까지도 이런 죽은 체하는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위험한 시도이지만, 의외로 효과적이라고 하네요. 적응력이 뛰어난 이 짐승은 그래서 번성하는 만큼 상위 포식자의 먹잇감으로 기능합니다. 오늘도 이들은 어디에선가 개구리와 도마뱀을 잡아 야금야금 씹어먹고, 혹은 독수리나 코요테, 악어의 위장 속에서 생을 마감하며 생태계의 바퀴를 힘차게 굴려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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