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망가지나..성적에 이어 품격까지 잃어버린 LAA[슬로우볼]

안형준 2022. 6.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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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안형준 기자]

매년 계속되는 성적 부진이 결국 괴물을 낳은 것일까. 에인절스가 이제 메이저리그 구단의 품격마저 잃은 모습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6월 28일(이하 한국시간) 무려 12명의 이름이 포함된 무더기 출전정지 징계를 발표했다. 27일 벌어진 LA 에인절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벤치클리어링에 대한 징계다. 최대 10경기부터 최소 1경기까지 양 팀에서 총 12명이 징계를 받았다.

▲발단, 트라웃의 분노 사건의 발단은 26일 양팀의 3연전 시리즈 2차전 9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애틀은 5-3으로 리드한 9회말 불펜 에릭 스완슨을 등판시켰다. 스완슨은 2사 주자 1명을 둔 상황에서 마이크 트라웃이 타석에 들어서자 연이어 몸쪽 높은 패스트볼 두 개를 던졌다. 공은 머리 쪽으로 향하기도 했다. 스완슨이 트라웃을 상대할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한 시애틀 스캇 서비스 감독은 고의사구를 지시했고 스완슨은 후속타자 오타니 쇼헤이를 잡아내 경기를 마쳤다.

머리 쪽으로 오는 공을 경험한 트라웃은 경기 종료 공개적으로 스완슨을 비난하고 나섰다. 발언의 수위도 높았다. "몸쪽 공을 제대로 던질 자신이 없다면 몸쪽으로 공을 던지지 말라"고. 평소 너무도 '모범생'처럼 행동하는 탓에 '실력은 최고지만 스타성은 없는 선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트라웃답지 않은 발언이었다.

트라웃은 자타공인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이자 에인절스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 그런 트라웃이 분노했다. 팀 전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바로 다음경기에서 '보복'이 나왔다.

▲에인절스의 보복, 그리고 난투극 27일 시리즈 3차전, 에인절스는 좌완 선발투수 호세 수아레즈 대신 우완 불펜투수인 앤드류 완츠를 선발투수로 예고했다. '오프너'다. 그리고 완츠는 1회초 1사 후 훌리오 로드리게스가 타석에 들어서자 초구 시속 93마일 포심 패스트볼을 로드리게스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로드리게스는 공을 피했고 서비스 감독은 에인절스 덕아웃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에인절스 덕아웃에서는 필 네빈 감독 대행이 받아쳤다. 심판진은 양팀 덕아웃에 모두 경고를 줬고 경기는 다시 진행됐다. 완츠는 1회를 2탈삼진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2회초 완츠는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이닝 선두타자 제시 윈커의 허리 부근에 시속 91마일 패스트볼을 던졌다. 공에 맞은 윈커는 완츠를 노려보며 마운드 쪽으로 몇 걸음을 옮기는 듯 했지만 이내 방향을 틀었다. 윈커가 향한 곳은 바로 에인절스 덕아웃. 에인절스 선수단은 기다렸다는 듯 모두 쏟아져나왔다. 오른손에 깁스를 한 앤서니 렌던이 왼손으로 윈커의 얼굴을 가격한 것을 시작으로 양팀은 난투극을 벌였다. 시애틀 J.P. 크로포드는 펄쩍 뛰어올라 주먹을 날리는 날렵한 모습도 보였다.

상황이 마무리된 후 총 8명이 퇴장을 당했다. 양팀에서 모두 감독과 선수 3명씩이 퇴장을 당했다. 그리고 경기는 에인절스가 2-1로 승리했다. 하루 뒤 사무국은 퇴장당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인원에게 징계를 부과했다.

▲서로 쳤으니 쌍방과실? 아니다 양팀은 뒤엉켜 난장판을 벌였다. 하지만 사무국의 징계를 살펴보면 책임 소재는 명확하다. 사무국은 이번 난투극의 원인이 철저하게 에인절스에 있다고 판단했다.

12명의 징계 명단 중 시애틀 소속은 퇴장을 당했던 선수 3명 뿐이었다. 벤치클리어링을 일으킨 윈커가 7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고 화려한 '플라잉 펀치'를 날린 크로포드가 5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둘과 함께 퇴장을 당했던 로드리게스가 2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서비스 감독은 퇴장은 당했지만 징계는 받지 않았다.

반면 에인절스는 네빈 대행이 10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선수, 코치, 심지어 통역사까지 징계를 받았다. 가장 먼저 주먹을 날린 렌던은 수술로 현재 시즌아웃된 상황. 렌던은 복귀 후 출전정지 징계(5G)를 소화해야함은 물론 당장 7경기 동안 경기 중 벤치 출입도 금지를 당했다. 오히려 두 번이나 빈볼을 던지고 하나는 맞히는데 성공한 완츠는 3경기 출전정지 징계로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분을 받았다.

항소로 징계 수위가 조정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하지만 사무국은 네빈 대행에게 가장 무거운 징계를 내렸다. 이번 사건을 계획했다는 것. 정황은 명확하다. 지난해 9이닝 완투승도 거둔 수아레즈는 전형적인 '선발투수'다. 오프너를 앞에 두고 나와야하는 롱릴리프 혹은 벌크맨이 아니다. 에인절스는 원래 오프너를 사용하는 팀도 아니다. 심지어 에인절스가 지난해 '오프너+벌크맨' 전략을 쓴 것은 단 한 번 뿐. 완츠는 올시즌 에인절스가 기용한 첫 오프너다.

시애틀도 안다. MLB.com에 따르면 크로포드는 "우리는 멍청이가 아니다. 수아레즈같은 좋은 선발투수 앞에 오프너를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고 말했다. '오프너 완츠'의 임무는 단 하나, 바로 '보복 빈볼' 뿐이었다. 네빈 대행은 완츠가 로드리게스의 머리를 맞히고 퇴장을 당하면 이미 선발등판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수아레즈가 이어 등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에인절스는 대체 왜? 의문이 남는다. 대체 에인절스는 왜 그런 일을 했는가. 물론 스완슨의 공이 위험했던 것은 사실이다. 스완슨의 공에 맞았다면 트라웃은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화가 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부러 맞힐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트라웃 다음 타자는 다름아닌 오타니. 2점차 2사 상황에서 굳이 역전주자까지 출루시킨 뒤 오타니를 상대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스완슨은 우완투수다. 스완슨은 9회 실제로 갑작스러운 패스트볼 제구 난조를 보여 변화구에 의존하는 피칭을 했다.

하지만 트라웃과 에인절스는 크게 분노했다. 이는 에인절스의 팀 상황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리즈 시작 전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3위였던 에인절스는 1,2차전을 내리 내주며 4위였던 시애틀에게 순위 역전을 당했다. 에인절스는 5월 말-6월 초 14연패를 당하며 급격히 추락했고 그 과정에서 조 매든 감독마저 경질됐다. 네빈 대행이 팀을 맡은 뒤에도 그저 연패를 끊는데 성공했을 뿐 팀 분위기의 극적인 반등은 없었다. 네빈 대행 체제의 에인절스는 27일 경기 이전까지 7승 11패를 기록했다.

에인절스는 몇 년째 성적이 좋지 못했다. 마지막 위닝시즌은 2015년으로 벌써 7년 전. 마지막 포스트시즌은 그보다 1년 전인 2014년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최고의 선수인 트라웃을 보유하고도 에인절스는 매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여기에 지난해 특급 스타로 떠오른 오타니는 에인절스의 성적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고 FA로 팀을 떠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은 잘리고 팀 분위기도 계속 가라앉기만 한다. 사기 진작과 분위기 반전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스포츠에서는 종종 '분위기 반전과 결속을 위해' 일부러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정도는 지켜야 정황 증거를 종합하면 에인절스는 결국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킬 계기로 벤치클리어링과 난투극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현역 시절부터 호전적이고 다혈질인 성격으로 유명했던 네빈 대행의 성향까지 더해진 것. 하지만 에인절스는 단지 자신들의 팀 분위기 쇄신을 위해 너무 위험한 일을 벌였다.

머리를 향하는 공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은 '빈볼'이지만 실제로 머리를 노리는 것은 용납되기 힘든 일이다. 단지 벤치클리어링이 필요했다면 타자의 등이나 엉덩이에 연속해서 사구를 던지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완츠의 초구는 정확하게 로드리게스의 얼굴을 향했다.

올시즌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1순위로 손꼽히는 로드리게스는 인기 하락으로 골머리를 앓는 메이저리그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선수 중 하나다. 에인절스가 단지 자신들의 분위기 전환을 위해 희생시킬 수 있는 선수가 아니다. 물론 로드리게스가 아닌 어떤 선수도 그렇게 희생돼서는 안되지만 에인절스는 리그의 미래와 당장의 팀 분위기를 맞바꾸려고 했다. 만약 완츠의 시속 93마일 패스트볼이 그대로 로드리게스의 얼굴을 직격했다면? 로드리게스는 물론 데뷔 2년차 젊은 투수 완츠의 커리어도 위험해질 수 있었다. 사무국이 완츠에게 상대적으로 가벼운 징계를 내린 것은 완츠 역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에인절스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매든 감독이 경질당하기 전, 우타자 렌던은 탬파베이 레이스 야수 브랜든 필립스를 상대로 좌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에서 전력을 아끼기 위해 야수를 투수로 기용하는 것과 달리 타석을 바꿔 서는 것에는 어떤 전략적 의도도 없다. 단지 '백기 투항'한 상대를 욕보여 승자의 기분을 만끽하려는 것일 뿐이다. 당시 탬파베이 구단은 렌던의 무례함에 반발했고 윈커에게 왼손으로 주먹을 날린 렌던을 두고 ESPN의 저명 칼럼니스트인 제프 파산은 "올시즌 렌던이 왼손으로 해낸 두 번째 성과"라는 한 마디를 남기기도 했다.

▲매든은 떠났지만..완전히 '매든化' 된 에인절스 경질된 매든 감독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언행, '내로남불'식 언행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일부러 상대를 자극해 갈등을 만들고 이를 팀 결속의 계기로 이용하는 것에 능했다. 2015년 시카고 컵스를 이끌던 시절 거친 슬라이딩으로 강정호(당시 PIT)의 발목을 골절시킨 뒤 마치 강정호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연신 쏟아내고 다음날 앤서니 리조(당시 컵스)가 공을 맞자 상대팀을 비난한 것이 대표적이다.

제구가 되지 않았던 공 하나를 빌미삼아 벤치클리어링을 일으키고 난투극으로 팀 결속을 다져 분위기를 반전시키겠다는 계획, 그 과정에서 오프너로 확실한 '버림말'까지 준비한 치밀함은 마치 매든 감독이 여전히 에인절스를 이끌고 있는 듯했다. 매든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지만 그와 3시즌을 함께한 에인절스는 팀 자체가 '매든화(化)' 된 것처럼 보인다. 그 단초를 제공한 트라웃마저도 이제는 '모범생'이 아닌 '매든의 수제자'가 된 것 같다.

트라웃이 세 번이나 MVP를 수상하고 역사에 남을 커리어를 쌓는 동안 가을 무대를 단 3경기 밖에 경험하지 못한 에인절스는 이미 성적을 잃은 팀이다. 그리고 '암흑기'를 겪는 동안 어둠에 물들어버린 에인절스는 이제 성적 뿐만 아니라 스포츠맨십과 프로의 품격마저 잃어버린 것 같다.(자료사진=위부터 벤치 클리어링을 벌인 LA 에인절스, 필 네빈)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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