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만에 멈춘 화물연대 파업, 불씨는 남았다

전혜원 기자 입력 2022. 6. 29.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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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안전운임제 지속 의사를 밝히며 화물연대 파업은 8일 만에 끝났지만 불씨는 남아 있다. 화주와 운수사들이 사적 이익을 위해 떠넘긴 부담은 도로 위 시민들의 위험으로 돌아온다.
6월7일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 앞에서 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 총파업 출정식이 열렸다. ⓒ김흥구

화물차 기사들이 파업을 했다. ‘안전운임제’를 계속 시행하라는 이유에서다. 2020년부터 시행된 안전운임제는 올해 말까지만 효력이 있고 사라질 예정이다(‘일몰’). 안전운임제를 올해 이후에도 계속 시행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기로 하면서 기사들은 일단 8일 만에 파업을 끝냈다. 하지만 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아니므로 불씨는 남아 있다. 국민의힘은 안전운임제 탄생 과정에서 반대한 바 있다. 이쯤에서 질문이 생긴다. 안전운임제가 도대체 뭐고 왜 중요한가.

운임(運賃)이란 운송의 대가로 받는 돈이다. 화물운송 시장은 화주(화물의 주인), 화물차주(화물차의 주인), 그 사이에 있는 운수사업자(운수사)로 굴러간다. 화주가 운수사에 화물을 옮겨달라며 돈을 주면, 운수사가 개인 차주에게 그때그때 화물운송을 맡기며 돈을 준다.

안전운임제가 있기 전 운임 결정 방식은 이랬다. 예컨대 대기업 같은 화주가 서울-부산 편도 50만원에 컨테이너 화물을 운송해주겠다는 운수사와 계약을 한다. 같은 구간을 48만원에 해준다는 운수사가 나타나면 그 업체와 계약한다. 46만원에 가능하다는 또 다른 업체가 나타나면 거기로 옮긴다. 저가 입찰 경쟁이다.

그런데 화물운송에는 일정한 비용이 든다. 그럼 기존 50만원에서 줄어든 2만원, 4만원은 누가 부담하는가? 지금까지는 소형 운수사와 화물차주에게 떠넘겼다. 대형 운수사는 화주로부터 물량을 따낸 뒤, 자신보다 작은 업체에 하청을 줬다. 이 운수사는 또 다른 운수사에 하청을 줬다. 운수사를 여러 개 거칠수록 수수료가 빠져 운임은 줄어든다. 이러면 다단계 하청의 말단에 있는, 실제로 물건을 옮기는 화물차주가 가장 적은 돈을 받는다.

그런데 화물차주는 원래 운수사에 고용된 정규직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자기 소유의 화물차를 운수사에 등록하고 회사 이름으로 차를 운행하면서(이를 ‘지입제’라 한다) 월급이 아닌 건당 운임을 받는 개인사업자로 속속 전환됐다.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다. 이들은 최저임금도, 노동시간 제한도 적용받지 않고 노동조합도 만들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건당 운임이 오르지 않거나 떨어지니 차주들은 수입을 위해 더 오래 일하고(과로), 더 빨리 달리며(과속), 규정보다 더 많이 물건을 실었다(과적). 결국 차주들은 2002년 ‘화물연대’라는 이름의 노동조합을 만들고 2003년 대대적인 파업을 벌였다. 그때 요구한 게 ‘표준요율제’, 바로 지금의 안전운임제다.

6월14일 정부와 협상이 타결된 후 화물연대 관계자들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안전운임제가 법제화된 것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18년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이 개정되면서다.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운임(안전운임)’을 정하고 이보다 낮은 운임을 주면 과태료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국토교통부가 화물운송에 드는 원가(차량 감가상각비·유류비·인건비 등)를 1년마다 조사하면, 이 결과를 토대로 화주(3명)·운수사(3명)·화물차주(3명)·공익위원(4명)으로 구성된 ‘안전운임위원회’가 안전운임을 심의해 의결한다. 국토교통부는 정해진 안전운임을 매년 10월31일까지 공표하고 다음해 1년간 적용한다.

안전운임제 이후 가장 달라진 것은 화주가 운수사에 주는 운임, 운수사가 화물차주에게 주는 운임의 최저선이 구간별로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40피트(길이 12m) 컨테이너를 싣고 부산신항에서 서울까지 400㎞ 거리를 왕복한 화물차주는 운수사로부터 최소 87만6200원을 받아야 한다. 화주는 운수사에 최소 98만8900원을 줘야 한다.

이는 한 차례 개정되어 올해 4월부터 적용되고 있는 운임이다. 올해 초부터 유가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안전운임제에는 3개월 평균 유가가 50원 이상 오르거나 내리면 이를 반영해 분기별로 운임을 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 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심야시간에 운행하면 20% 할증이 붙는다. 공휴일에 일하거나, 험로 또는 오지를 오갈 때도 20% 할증이 더해진다.

한국교통연구원이 국토교통부의 용역을 받아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안전운임제가 화물차주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안전운임제를 적용받는 화물차주의 월평균 순수입(유가보조금 포함)은 컨테이너의 경우 2019년 300만원에서 2021년 373만원, 시멘트의 경우 2019년 201만원에서 2021년 424만원으로 각각 73만원(24.3%), 223만원(110.9%) 늘었다. 같은 기간 월평균 노동시간은 컨테이너가 월 15.6시간, 시멘트가 월 42.6시간 줄었다.

안전운임제의 궁극적 목표인 ‘안전’은 달성되었을까? 앞서의 연구에 따르면 사업용 특수견인차의 교통사고 건수는 2019년 690건에서 2020년 674건으로 2.3% 감소했다. 물론 분석 기간이 짧고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어서 제도 시행의 효과만을 따로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안전운임제에 부정적인 화주들이 파고드는 ‘약한 고리’가 된다. 즉 안전과 운임은 상관이 없는데도 ‘안전을 위해 특정 금액 이상의 운임을 강제하는’ 것은 전제부터 잘못되었다는 주장이다.

운임 10% 증가하면 사고 확률 34% 감소

그러나 안전과 운임의 연관성을 입증한 국내외 연구는 다수 존재한다. 경제학자 마이클 벨저 등이 2002년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화물운송 업체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거리당 운임이 10% 증가할 때마다 월별 사고 확률이 34% 감소했다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국내 화물운송 시장 실태조사 자료를 분석해보니, 회당 운임이 하락할 때 사고 위험도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도 있다(이광훈·김태승 ‘한국 화물운송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교통사고에 미치는 영향 분석’ 2017).

설령 안전과 운임이 상관이 있더라도, 특정 금액 이상을 주도록 ‘강제’하는 것은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일률적인 운임 산정 및 강제보다는 시장 기능의 활성화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 마련이 필요합니다. … 비강제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고요(이준봉 화주협의회 사무국장 〈김종배의 시선집중〉).” 정부가 운송 원가를 참고로만 공표하되 실제 계약은 ‘시장 자율’에 맡기자는 얘기다. 이는 2018년 입법 논의 과정에서 당시 자유한국당이 안전운임제에 반대하며 한시적 운영을 주장한 이유이기도 했다. “정부가 이거 얼마 줘라, 그거 안 지키면 처벌받는다는 게 이건 뭐 사회주의 국가입니까(함진규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

그러나 안전운임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특정 운임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화주·운수사·화물차주 등이 참여하는 안전운임위원회에서 심의해 결정한다. 이런 방식은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가 2019년 합의한 ‘운수부문 내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안전 증진을 위한 ILO 지침’에도 부합한다. 이 지침은 “정부와 사회적 파트너, 도로운송 사슬 참여자는 법률과 관행으로 상용차 운전자에 대한 충분하고 지속가능한 보수 지급을 증진해야 한다”라고 쓴다. 특히 “비임금 상용차 운전자(화물차주 등 특수고용 노동자)를 위해 예측 가능한 비용의 회수를 촉진하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여기에는 고정비와 변동비를 회수하고, 화물 상하차나 차량 유지보수 등 비운전 노동에 보상하는 것이 포함된다. 한국의 안전운임제와 유사한 내용이다. 실제로 지침 작성 과정에서 한국의 사례가 주요하게 거론되었다고 알려진다.

컨테이너 화물차주 평균 주 70시간 일해

화주와 대형 운수사들이 사적 이익을 위해 떠넘긴 부담은, 결국 도로 위 시민들의 위험이라는 비용으로 돌아온다. 시장 실패다. 안전운임제는 바로 이런 시장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관련 주체들이 합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든 것으로 봐야 한다. “도로운송 산업은 다른 산업들과 달리 고정된 작업장에서 노동 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반 도로 사용자들과 ‘작업장’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화물차 안전문제는 공공의 안전과 직결된다. 사회적 조절과 규제의 필요성이 높다(백두주 ‘한국 안전운임제 시행효과 분석 및 지속가능한 제도시행을 위한 정책과제’ 2022).”

6월13일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에 멈춰서 있는 화물차들.ⓒ시사IN 신선영

1994년부터 화물차 일을 해온 고정기씨(51)는 부산을 기점으로 수도권을 오가며 수출입 컨테이너를 실어 나른다. 일요일 오후 6시에 일주일치 옷가지와 속옷을 챙겨 집 앞 주차장으로 출근한다. 돌아오는 금요일 밤 10~11시나 그다음 날인 토요일 새벽 1~2시에 퇴근한다. 중간중간 고속도로 휴게소에 주차해놓고 차량 뒤 공간에서 잠을 잔다. 월 2000만원 매출을 찍으면 보통 기름값 600만원, 고속도로비 120만원, 지입료 35만원, 보험료 35만원, 타이어 등 소모비 50만원이 나가고 월 350만원 차량 할부가 빠진다. 이 상태에서 지난해 5월 L당 1330원이던 기름값이 2100원으로 뛰었다. 월 600만~650만원 지출하던 기름값을 지금은 1000만원 쓴다. 이러면 순수입이 410만원인데, 이조차 차량 고장 시 수리비 등으로 온전히 벌지 못한다. 컨테이너 화물차주의 평균 노동시간은 줄어든 게 주 70시간 수준이다.

고씨의 경우 총수입이나 출퇴근 시간은 안전운임제 시행 전후로 큰 변화가 없다. 다만 노동 강도가 낮아지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거리당 운임이 20% 정도 높아졌을 뿐 아니라, ‘대기료’가 생겼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공장에 도착해도 화주 사정에 따라 상하차가 서너 시간에서 대여섯 시간 지연됐다. 언제 끝날지 몰라서 쉬지도 못하고 기다려야 했지만 대가는 받지 못했다. 정해진 시간까지 다음 장소로 촉박하게 이동하다 보니 무리하게 운행해야 했다. 졸음운전을 하다 보면 아스팔트가 벌떡벌떡 설 때도 있었다. 이제는 정해진 시간 내에 작업이 안 이뤄지면 시간당 대기료를 주도록 법에 명시됐다. 화주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니까 알아서 상하차 시스템을 개선하더라. 조합원들의 돌연사 등 부고 문자도 체감상 줄었다.”

안전운임제는 고씨와 같은 수출입 컨테이너, 그리고 벌크 시멘트를 나르는 상업용 특수화물차 등 약 2만6000대에 적용된다. 전체 상업용 화물차 42만 대의 극히 일부다. 화물연대는 전체 품목에 안전운임제를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이면서 특수고용 노동자인 배달 라이더들도 안전운임제를 본뜬 안전배달료 도입을 요구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직영 기사였다는 고씨는 “일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적용받듯이, 어떤 형태의 노동을 하든지 최소한의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안전운임제가 화물차 기사들만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 또 다른 이 사회의 소외계층 누군가가 이걸 자신들의 권리보장 제도로 만들어갈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조금씩 안전사회가 되어가는 것 아니겠나.”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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