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에 꽂힌 유일한 파란 깃발, 그는 어떻게 승리했나

김은지 기자 2022. 6. 2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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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오 성동구청장은 6·1 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했다. 대통령·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한 성동구민들은 왜 구청장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그를 신임했을까.
6월15일 서울 성동구청에서 만난 정원오 성동구청장.ⓒ김흥구

‘효능감’은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54)의 승리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그는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서울 지역의 유일한 3선 구청장으로 당선되었다. 그것보다 더 눈길을 끄는 사실은 정 구청장의 소속 정당과 지역구이다. 아래 그림과 같이, 성동구는 더 이상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 유리한 지역이 아니다. ‘마·용·성(마포·용산·성동)’으로 불리고, 대표적으로 지가가 상승한 동네다.

실제로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민주당 박영선 37.17%, 국민의힘 오세훈 59.76%), 2022년 3·9 대선(민주당 이재명 43.23%, 국민의힘 윤석열 53.20%) 및 6·1 서울시장 선거(민주당 송영길 37.55%, 국민의힘 오세훈 60.90%) 결과에서 드러나듯 민주당이 3연패한 곳이다. 서울시 전체 평균과 비교하면, 성동구는 세 선거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가 더 졌고 국민의힘 후보가 더 이겼다.

그런데 구청장 선거는 달랐다. 민주당 후보인 정원오 구청장이 57.60%를 득표해 42.39%를 얻은 강맹훈 국민의힘 후보를 넉넉하게 따돌렸다.

ⓒ시사IN 최예린

물론 쉬운 선거는 아니었다. 정 구청장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후보(정원오)는 마음에 드는데 당(민주당)이 마음에 안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못했다”라고 말하는 유권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가 읍소한 전략은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달라”였다. 지난 8년의 구정을 살펴보고 평가해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는 뜻이었다. 일을 잘했다는 자신감을 표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유권자들이 응답했다.

그의 승리는 여러모로 여의도 정치권의 눈길을 끈다. 교차 투표를 하거나 스윙보터인 유권자 층이 선거 당락을 결정할 만큼 존재한다는 점, 이들이 반응하는 이슈는 ‘정치적 효능감’과 맞닿아 있다는 점, 결국 ‘일을 잘하는 것이 승리연합을 만들어내는 연결고리’라는 점 등이다.

정 구청장은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공개해 구민 의견을 문자메시지로 수신하고 48시간 내 답장하는 소통 방식 △전국 최초로 선보인 바닥 신호등과 음성안내가 설치된 ‘스마트 횡단보도’, 더위·추위를 피할 수 있는 ‘스마트쉼터’ 설치 등 생활밀착형 행정 △전국 최초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필수노동자 지원, 경력보유여성 지원(경력‘단절’ 대신 경력‘보유’라는 표현 사용) 조례 신설 등으로 이미 꽤 알려져 있다.

그래서 질문의 방식을 바꿨다. ‘일잘러’의 일하는 방식과 태도는 무엇이 달랐기에 유권자들에게 효능감을 줬을까, 정치인의 유능함이란 무엇일까로 초점을 옮겼다.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6월15일 성동구청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성동구가 쓴 ‘전국 최초’의 기록들

성동구는 전국 최초 기록을 여럿 가지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했던 정 구청장의 2기(2018~2022년) 관련 기록도 그중 하나다. 전국 최초로 모바일 전자출입명부와 선별진료소 대기 인원 실시간 온라인 안내 시스템 등을 도입했다. 마켓컬리와 협업해 코로나19 재택 치료자를 위해 지원 물품을 보냈다. 주민 만족도가 높았다. 정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 걸까. 모두가 똑같이 겪었던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성동구의 대응이 달랐던 이유를 물었다.

정 구청장이 내놓은 답은 ‘민원’이었다. “성동의 수많은 혁신 사례는 민원에서 온다. 그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절로 아이디어가 나온다.” 대답을 들으니 더 궁금해졌다. 정치인·행정가라면 모두가 받는 게 민원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이미 답이 있고, 현장에서 (정치인·행정가에게) 질문을 하는 거다. 문제를 얼마나 깊숙이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답을 찾을 수 있는지 여부가 갈리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인 사례로 말해달라고 하자, 그는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얘기를 꺼냈다.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두세 시간씩 줄 서 있으면, 주민들이 ‘기다리다 코로나 걸리겠다. 너무한 거 아니냐’라고 항의한다. 이에 대해 (관할 구청이) ‘죄송하다. 갑작스러운 전국적 현상이니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정중히 말할 수 있다. ‘우리 구만 그런 게 아니고, 지금 일시적으로 환자가 늘어서 선별진료소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것도 민원 해결 방법이다. ‘방법이 없으니 좀 참아달라’고 불친절하게 말할 수도 있다. 더 심하면 아예 답변을 안 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기다림의 시간이 지속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생각한다. 의료진 부족은 우리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럼 은행처럼 번호표라도 뽑게 하면 어떨까 궁리했다. 구청 홈페이지에서 순서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니 줄이 사라졌다. 같은 민원을 겪고도 혁신까지 갈 수 있는 배경이다.”

민원을 다 듣다 보면 어디서 갈등이 생기고, 무엇이 문제인지 보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대처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의 본령인 갈등 조정이다. 이를 설명할 때 정 구청장은 ‘공부’ ‘연구’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처음부터 민원 해결 차원에서 집중했으면 오래가지 못했을 거다. 하다 보니까 이게 엄청난 공부가 되더라. 여기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정책이 나왔다. ‘구민들이 이런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구나’ 그럼 나중에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같이 연구해보는 거다. 민원 현장에서 나온 고민과 문제의식에 대해 ‘넥스트(다음)는 뭐냐’ ‘궁극적 해결은 뭐냐’ 이렇게 들어가면 해결이 된다. 민원을 민원으로 해소하는 차원이라면 그렇게 못 나간다.”

실제 정 구청장은 지역 현안을 ‘연구’하고 ‘공부’해 책을 펴내기도 했다.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후마니타스, 2016)이 그것이다. 구청장 임기 1기(2014~2018년) 때의 가장 큰 지역 현안 중 하나가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예술가·소상공인들이 서울숲을 중심으로 성동구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을 위협하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가시화되자, 정 구청장은 대책을 고민했다. 외국 사례를 공부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크게 배운 게 있다.

도시공학을 전공한 교수가 그에게 ‘성수동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다고 판단한 근거가 뭔지’ 물었다. 최근 유명 연예인이 성수동에 투자했고 그것이 보도되어 부동산 거래가 늘어나는 조짐이 있다고 현장 조사에서 들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부동산 가격, 업종 구성, 유동인구 현황 등을 파악해야 그에 맞는 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살다 보면 크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가 그랬다.’ 정 구청장이 책에 쓴 말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사실과 현장과 데이터에 기반해야 한다. 물론 데이터를 잘못 해석하면 문제가 되지만,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봐야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단하고 평가했다. 2015년 전국 최초로 ‘서울특별시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해, 지정 구역 내에 들어오려는 신규 업체는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입점 여부를 심사한다. 지역 상권에 중대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는 업체는 주민협의체의 사업 개시 동의를 받은 뒤에 입주할 수 있게 했다.

서울 성동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가 적용된 성수동 아틀리에길 주변.ⓒ김흥구

‘생활적 요구’에서 출발해 큰 문제에 접근

건물주의 욕망을 공격하기보다는, 그 욕망이 제어되지 못하면 건물주 자신에게까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설명했다. 상생이라는 가치를 수치화해서 설득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제도화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조례보다 상위인 관련법이 없었다. 임대인의 재산권이나 입점 희망 업체의 영업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그는 책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헌법 제2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되며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같은 조 제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역의 상승된 가치를 부동산 투기자본이 독점하는 것이 공공복지에 적합한 재산권 행사인가?” 그에겐, 민생이 곧 개혁 이슈였다.

해당 조례로 촉발된 법률 제정은 지난해 7월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 일명 지역상권법으로 공포되었다. 지난해 하반기 성동구 조사에 따르면, 건물주와 상생협약을 체결한 업체의 평균 영업기간은 미체결 업체에 비해 27개월 더 길었다. 성동구의 실험이 순항하고 있다는 의미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도 공실률이 무척 낮았다. 지역 주민들의 호응도 좋다.

그렇게 성동구에서 만든 조례가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법률로 입법화된 사례는 또 있다. 2020년 제정된 ‘서울특별시 성동구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이다. 코로나19가 계기가 되었다. 각종 재난 상황에서 필수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실태조사와 지원을 제도화했다. 국회를 통과한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기 1년 전의 일이다.

정 구청장은 이와 같이 자신의 경험을 들어 거대 담론과 생활 담론의 병존을 언급했다. “거대 담론만 주장하는 쪽에다 나는 생활 담론을 얘기한다. 하지만 생활 담론을 실천하면서 늘 여기서 더 나아가 뭔가 큰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큰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생활적 요구’로부터 출발한다. 필수노동자 지원 조례가 대표적이다. 필수노동자인 배달 노동자, 청소 노동자 등에 대한 보호 및 존중은 누구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조례를 제정하니 타이밍이 맞아서 바로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거대 담론에서 말하는 가치를 일상생활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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