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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권 잇단 횡령 사고, 경영진은 척결 의지 보여야

허지윤 기자 입력 2022. 06. 2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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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윤 기자

“시스템을 바꾼다고 한들 작정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잡을 수 있을까요?”, “유동성 파티 끝에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사고들이 곳곳에서 터집니다.”

올해 상반기 금융권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단골 주제는 다름 아닌 ‘횡령’이었다. 돈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는 곳에서 돈이 새나가는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1·2금융권, 은행 본점과 영업지점 구분할 것도 없었다.

업계 관계자들과의 대화에서 횡령 사고를 ‘돈에 눈이 먼 자의 일탈’, ‘모범 직원이란 탈을 쓴 소시오패스의 범행’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하면 유사 사고는 또 발생할 수 있다.

금융권에서 일어난 잇단 횡령 사고는 현 시스템의 구멍을 보여줬다. 우리은행 본점 직원은 문서를 위조해 6년에 걸쳐 614억원을 빼돌렸다. EDMS나 ECM이라 불리는 전자 문서 관리 시스템을 통해 이중·삼중 결재를 거치는 게 일반적인 기업과 금융사들의 업무 처리 방식이라면, 사고가 터진 부서는 2010년대에도 다수 문서를 워드 작업 등 수기(手記)로 제작해 인쇄물 형태로 관리해온 것이 취재 과정에서 드러났다. 구시대적이고 투명하지 않은 업무 처리 방식의 허점을 누구보다 잘 안 직원은 이를 악용해 문서를 위조하고 캐비넷에 숨겨 돈을 빼돌렸다. 이 탓에 외부 감사에도 걸리지 않았다.

폐쇄적인 인사 및 지배 구조도 횡령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이달에만 경기 광주 지역 농협과 파주 지역 농협의 직원이 각각 수십억원대를 빼돌려 도박 및 가상화폐 자금 등으로 활용한 혐의가 드러났다. 지역 농협 조합장과 주요 임원은 장기 연임이 가능한 구조다. 한 지역 안에서 장기 집권이 가능한 조합장과 임원, 그들의 측근들로 채워지는 인사 구조 속에서 감시와 견제, 내부 통제 기능이 잘 작동하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지역 농협 곳곳에서 횡령, 배임, 친인척 채용 비리와 일감 몰아주기 등 각종 폐단이 발생해온 근원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역 농협(2금융권)에서 사고가 터지면 NH농협은행과 농협금융지주는 ‘우리와는 별개 조직’이라며 선 긋기 바쁘다. 각 지역 농업인이 출자해 세운 지역 단위 농협은 상호금융기관으로, 전국 각지에 있는 지역 농협은 각각 다른 조직이라는 논리다.

그럼에도 농협이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이들은 뗄 수 없는 관계다. 농협경제지주와 농협금융지주의 지분을 각각 100% 보유한 농협중앙회 회장은 각 지역 농협 조합장의 투표로 선출된다. 전국 지역 조합원들이 지역 조합장을 선출하면, 그 조합장들이 농협중앙회·대의원회·이사회에 참여해 지주회사에 권한을 행사한다. 농협중앙회와 경제지주, 금융지주는 전국으로 뻗어 있는 네트워크를 발판으로 성장해왔다. 지역 농협에서 사고가 거듭될수록 농협금융그룹의 신뢰도와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금융업계 종사자들의 예언처럼, 유동성 파티가 끝나고 경기 침체 그림자가 드리워진 하반기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모럴해저드 사고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이런 때일수록 사고가 터지고 나서 사과하고 항변하는 식의 리스크 대응과 수습보다, 유사 사고 재발을 막겠다는 확고하고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최고 경영진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독립된 감독 기능을 강화하고 잘못된 관행과 부정부패를 조장할 수 있는 구조를 뿌리 뽑고 바꾸는 데 전사적 지원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각종 시스템 구축과 감사, 인증 등 형식적인 절차에 많은 돈과 사람, 시간을 사용하고도 다시 사고가 터지는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금융사의 부실 경영 관리 문제는 고객인 개인과 기업, 더 나아가 국가 경제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 내부에서 스스로 통제 기능을 살리지 못하면 금융권을 향한 외부 감시와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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