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금 인상 자제" 요청에 뿔난 직장인들.. 경제학자 생각은 다르다?

김자아 기자 2022. 6. 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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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경제부총리 초청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가 급등에 맞서 대기업에 ‘과도한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하자, 대기업 직장인들이 들끓고 있다. “정부가 물가 상승의 책임을 민간기업에 떠넘긴다”는 불만부터 “사다리를 걷어 차려는 것 아니냐”는 원성까지 터져 나왔다. 이런 불만에 대해 전문가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근로소득자 최상위에 해당하는 대기업 직장인 임금 급등이 이어지는 한, 물가 상승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는 어렵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었다. 다만 물가 안정 이후 보상책 마련 등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IT업계發 구인난에 1분기 대기업 임금 13% 올라

추 부총리는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과의 간담회에서 “과도한 임금 인상은 고물가 상황을 심화할 수 있다”며 “최근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해 경영계에서는 과도한 임금을 자제해주고 생산성 향상 범위 내 적정 수준으로 임금이 인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기업과 IT 기업의 고임금 지급 현상을 언급하며 “IT 기업이나 대기업의 고임금 현상이 확산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물가 안정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전부 물거품이 된다”고 했다.

지난 26일에도 한 방송에 출연해 “대기업 중심으로 높은 임금 인상이 연쇄적으로 발표되고 있는데, 이러면 결국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계층에 어려움이 가중된다”며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했다. 그는 “비용 상승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기업이 투자로 생산성을 높이는 등 인상 요인을 조금 흡수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경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지난 1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스1

추 부총리 발언은 ‘물가상승→임금상승→고용 감소·제품 가격 인상→물가 상승’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대기업이 동참해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14년 만에 최고인 전년 대비 5.4%를 기록한데 이어 이달 6%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물가가 치솟다 보니 임금 인상 요구가 커졌고 기업은 실제로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을 감행했다. 올해 1분기 대기업 임금 상승률은 13.2%로 2018년 1분기(16.2%) 이후 최고 수준이다. IT 업계의 구인난으로 시작된 가파른 임금 인상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대된 것도 대기업 임금 인상에 한 몫을 차지했다.

◇대기업 직장인들 분노… “흙수저 사다리 걷어차기”

하지만 추 부총리의 발언 이후 대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LG생활건강의 한 직원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를 통해 “매번 다른 거 오를 때마다 임금만 못 오르게 막는 건 결국 급여 직장인들이 희생하라는 거 아니냐”며 “이게 보수 시장주의자들이 할 얘기가 맞나”라고 비판했다. 호텔롯데의 한 직원은 “흙수저들이 그나마 중산층 언저리에 갈 수 있게 사다리 역할 해주는 게 대기업 연봉인데 이거 없애면 사다리 걷어 차는 거 아니냐”라고 하소연했다.

이 밖에도 대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선 “당신들부터 무보수로 일하라” “대통령, 국회의원 연봉부터 줄여라”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27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스1

◇물가 급등, 취약층엔 더 큰 고통… “희생 필요, 보상책은 있어야”

추 부총리의 발언은 대기업 직장인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지만 경제학 전문가들은 고물가를 잡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4인 가족 월 식비가 100만원을 넘어서는 등 물가 급등이 사회 전반에, 특히 취약계층에게는 더욱 큰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어서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고임금 직장인들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물가가 어느정도 안정되면 추후 임금을 인상하는 방식의 보상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대기업 직장인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바라는 식이라 다소 아쉬울 뿐”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추 부총리의 임금 상승 자제 요청은 물가상승과 임금상승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타당성 있는 해결책”이라면서도 “임금은 기업의 자율성에 맡겨야 하는 문제일 뿐더러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물가를 잡는 방법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자 입장에선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오히려 임금이 깎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불만이 클 수 있다. 당장 밥값이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라면서도 “다만 계속 임금이 오르면 물가는 더 오르고, 경제성장 없이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파른 임금 상승을 자제시키는 건 올바른 방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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