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집 게임줌인] 엉켜버린 인과율을 푸는 재미, 사운드 노벨

데일리게임 입력 2022. 6. 2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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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이자 게임작가인 동시에 열혈 게이머인 김진수 필자가 2022년을 맞아 새롭게 준비한 '소금불의 게임줌인' 코너입니다. '개발자 칼럼' 코너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만났던 '소금불' 필자가 개발자 타이틀을 내려놓고 게이머 입장에서 더욱 재미있는 게임 이야기를 전달하려 합니다. < 편집자주 >

[글='소금불' 김진수]문학과 선택의 재미가 잘 어우러진 사운드 노벨 장르는 꽤 오랜 역사를 맞이했습니다. 이 장르를 개척한 일본 개발사 춘소프트는 많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는데요. 이 장르의 발전사와 그 핵심 재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운드노벨 부흥기의 시작 '카마이타치의 밤'

'카마이타치의 밤'은 100만 카피(닌텐도 슈퍼패미콤)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사운드 노벨의 인지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작품입니다. 절제된 비주얼과 생동감 있는 음향을 시도해 대중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죠. 또한 천재 작가, 아비코 타케마루의 숨막히는 전개력이 돋보이는 게 특징입니다. 폭설로 고립된 산장에서 투숙객들이 차례대로 살해당하면서, 주인공이 의문의 소용돌이 빠지게 되는 스토리는 굉장한 몰입감을 자아냅니다.

한때 국내에서 한글 서비스가 이뤄진 적도 있었다('카마이타치의 밤(1994sus)', 춘소프트).

◆초특급 도시괴담 어드밴쳐 '기화기초'

'기화기초'는 주인공 일행이 특수한 약을 먹고, 자연발화로 비명횡사하는 저주를 풀기 위해 약의 정체를 파헤치는 게 목적입니다. 다소 까다로운 선택지 조건, 어두운 스토리로 인해 미지근한 흥행을 거뒀지만, 당시로서 고품질(HD)로 구현된 비주얼과 책갈피 시스템 등 여러 돋보이는 시도가 좋았습니다. 도시괴담 매니아들에게는 큰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약을 복용하면 손톱이 까매지고, 환각 상태에 빠지다가 결국 온 몸이 발화돼 최후를 맞이한다('기화기초(2007년)', 춘소프트).

◆한 번 더 혁신을 위한 도약 '428 봉쇄된 시부야'

1998년작 '거리 운명의 교차점'의 시스템을 계승한 이 작품은 장르의 개척자인 춘소프트답게 진화된 시스템으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플로우 차트를 전환하면서 위기에 봉착한 캐릭터들의 선택지를 교정해 올바른 스토리로 끌고 가는 플레이가 아주 훌륭합니다. 속도감 있는 스토리 전개와 흥미진진한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으며, 사운드 노벨 마니아들에게 최고봉이라 여겨지기는 작품입니다.

타임라인에 따라 캐릭터 에피소드가 하나씩 열리는 재미가 특징('428 봉쇄된 시부야에서(2008년)', 춘소프트).

◆장르 역사 끝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 '백 년의 봄날은 가고'

스퀘어 에닉스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불로 열매를 둘러싼 어드벤처 추리물입니다. 추리공간 속에서 의문과 단서를 조합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고, 1인 다중역할(멀티롤)이 큰 특징입니다. 여러모로 사운드 노벨 시스템의 진화를 꾀한 점이 상당히 의욕적으로 느껴집니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영상 플레이와 호화 배우 캐스팅까지 여러모로 큰 스케일로 제작돼 많은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얻었습니다. 본 작품은 스토리 텔링에서 텍스트보다 드라마 영상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인터랙티브 무비라 칭할 수 있지만, 시스템적으로 사운드 노벨의 형식을 많이 띠고 있어 선정했습니다.

1인 다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력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본 작품의 감독 코이치로 이토씨는 춘소프트의 428의 작가로서 활동한 바도 있다('백 년의 봄날은 가고(2022년)' 스퀘어 에닉스).

◆핵심은 꼬여버린 인과율을 하나씩 푸는 재미

스무 해 가까이, 여러 사운드 노벨 작품들을 접하면서 필자는 이 장르를 찾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여럿 생각해봤습니다. 그중 제일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은 사람의 마음이었죠.

애인과 이별 후 지난 일을 회상하며 가슴 사무치는 후회를 하는 일, 면접관 앞에서 짧은 생각에서 비롯된 말 한마디 때문에 낙방한 일, 하나의 불운의 시작으로 하루 전체가 엉망이 된 일들까지… 그렇게 자신을 책망하면서 차곡히 쌓이는 감정의 불순물들은 금세 가라않지도 않고 끊임없이 부유하면서, 머릿속을 어지럽히죠.

그저 과거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다음 할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자는 게 우리에게는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축을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는 게이머는 사정이 다르죠. 사운드 노벨 플레이어는 꼬여버린 사건들의 퍼즐들을 하나씩 풀면서, 스스로 스토리를 완성해 나가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이용자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후회, 미련이라는 감정이 조금씩 해소되면서 묘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거죠. 필자는 이 점이 바로 사운드 노벨의 핵심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일반적인 문학과 사운드 노벨 장르의 경계선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죠. 마니아 장르란 인식이 많지만 이런 마음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재미 덕분에, 필자는 이 장르의 역사는 조용히 발전하면서 꾸준히 이어질 거라 믿습니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정리=이원희 기자(cleanrap@dailyga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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