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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형의 여담] 좋은 책에 대한 회고

한겨레 입력 2022. 06. 29. 19:05 수정 2022. 06. 2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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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형의 여담]

한국에서는 훌륭한 책을 교재 삼아 공부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최소한의 강의록만 제공될 뿐 문제풀이에 집중하는 수업 방식이 일반적이다. 배움이란 사람마다 다른 복잡한 경로를 따라가는 비선형적인 과정임을 고려할 때, 어떤 게 더 나은 공부 방식이겠는가. 게티이미지뱅크

김민형 |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교육과정에 관한 사회적 토론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이 접하는 적절한 교육내용이 무엇이냐다. 필수와 선택 과목의 선정 같은 큰 틀을 거론할 수도 있고, 특정한 과목의 구성요소에 관한 담론일 수도 있다. 가령 기계학습(머신런닝)을 공부하려면 미적분학과 행렬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어떤 학생들이 언제 배워야 하는가 같은 문제가 자주 언급된다. 아주 구체적으로는 적당한 교재나 권장도서의 선택도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 된다.

같은 주제로 써진 책들도 내용이 꽤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고, 장단점들을 각자 가지고 있다. 나도 학생 때 교재를 불만스럽게 생각한 적 있었고 권장도서 말고 다른 책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수학과에서도 책 이야기가 자주 오갔지만 대체로는 물리학과 친구들이 훌륭한 책에 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1학년 때부터 유명한 물리학자 파인먼이 쓴 <물리학 강의록>이라는 세권짜리 저서를 읽는 공부 모임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또, 고학년이 되면서는 소련물리학 교육시스템의 전설적인 교재, 란다우와 립시츠의 <이론물리 과정> 총서 낱권들을 들고 다니며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압박하는 선배들이 많았다.

일반적인 답을 모르면서도, 이런 문제에 관한 나 자신의 직관이 지난 몇십년 사이 상당히 변한 것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은 훌륭한 도서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다. 책(교재)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는 한국과 미국에서 교육받았기에, 처음 영국 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상당한 문화충격을 받았다. 교재를 사용하지 않는 강의가 대부분이고 학생들도 좀처럼 책을 안 읽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모든 영국 대학 수학과에서는 최소한의 내용을 강의록 형태로 제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제풀이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따라서 몇백쪽 분량의 교재를 읽을 만한 참을성을 가진 학생도 극히 드물다. 이런 성향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때도 교재가 있다 해도 핵심 요약본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진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국식 시스템이 상당히 의아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특별한 교재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무언가 배움의 길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다고 의심할 정도다. 웬만큼 깊이 있는 토픽은 한번에 배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 배울 때 대략 파악하고, 나중에 다시 보면서 이해를 조금 더하고, 가르치면서 또 배우고 하는 과정을 모든 학자가 경험한다. 즉, 배움이라는 것은 다분히 사람마다 다른 복잡한 경로를 따라가는 비선형적인 과정이다. 이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훌륭한 책 몇권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신봉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런 비선형성은 교재에 대한 잘못된 평판에서도 확인된다. 가령 ‘이 토픽은 교재 B가 A보다 훨씬 낫다. 처음부터 B로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같은 불평에 나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A를 먼저 읽었을 때 나오는 의견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B를 읽을 때는 같은 주제로 두번째 보는 것이니까 당연히 더 이해가 잘된다. 어렵게 한번 공부하고 다른 책을 통해 다른 시각에서 다시 생각하는 과정이 극히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다.

내가 학생 때는 막연히 어려운 교재를 선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수학이나 물리학은 어느 정도 단계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어려운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요새는 학부 과목에 나올 만한 내용은 되도록이면 쉬운 책을 권장하는 편이다. 기본 아이디어를 접하며 흥미를 느끼고 필요에 따라 고등한 내용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학부 시절에 끙끙대며 읽었던 파인먼의 책은,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위 교수들에게 교묘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과시하기 위해 써졌다는 비판이 많다. 란다우와 립시츠의 책들도 지금 보면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많고,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들에 비해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때 왜 그렇게 경외의 대상이 됐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극단적으로 잘못 써진 책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저자 자신이 내용을 잘못 이해한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그마저 판단이 쉬운 것은 아니다. 뛰어난 학자들 가운데 많은 지식이나 명확한 이해 없이도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이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은 많고 다양하다. 지금처럼 지식과 정보가 풍성한 시대에 교육에 임하는 사람들은 배움과 가르침의 자유로운 문화를 같이 만들어가며 특정한 책이나 방법론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내려놓으라고 권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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