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지속가능한 연구실

김우재 보통과학자 2022. 6.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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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공장식 연구실도 문제로 지적됐다. 인공지능 분야처럼 학생 수요는 높은 데 비해 교수가 부족한 연구 분야는 한 교수가 많은 학생을 지도하기 때문에, 연구 지도나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윤 교수의 인공지능 연구실은 박사과정생만 37명이다. 석사과정과 박사후 연구원 등을 포함하면 총 51명의 학생이 윤 교수의 지도를 받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신문 6월 26일자 “‘결국 터질게 터졌다”…서울대 AI 연구팀의 민낯’ 중에서

윤성로 서울대 교수가 지도하는 석사 과정 학생이 세계적인 컴퓨터 관련 학회인 컴퓨터 비전 과 패턴인식 학회CVPR)에서 발표한 논문이 기존에 발표된 10여개 논문을 짜깁기한 표절로 밝혀지며 충격을 주고 있다. 윤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 4차 산업혁명위원장에 임명될 정도로 국내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논문을 작성한 연구진이 참가한 CVPR은 컴퓨터 비전과 인공지능 연구에서 세계 최고의 학회로 불린다. 그런 최고 학회에서 최고의 학자가 발표한 논문이, 어설픈 짜깁기 논문이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게다가 이 논문은 오직 4%만 선정되는 구두발표 논문이다. 즉, 심사위원 누구도 이 논문이 짜깁기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만 돌려도 알 수 있는 문장표절을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걸러내지 못했다는 사실도 재미있지만, 이런 논문이 무려 4%의 특별한 논문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경악스럽다. 연구의 진실성만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학술논문이, 단지 유명한 지도교수의 이름 석자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특별 발표논문으로 선정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제 해당학회는 논문표절에 대한 조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학회가 논문을 선별해온 과정 자체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논문 심사위원에게 무료봉사를 요구해온 수백년의 관행은 이제 사라질 때가 됐다. 돈은 커녕 아무런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심사위원이 논문을 꼼꼼하게 읽기를 기대하는건 나이브할 뿐 아니라 불공정을 조장하는 못된 학계의 관습일 뿐이다.

공장형 연구실의 문제

이번 사건엔 놀라운 점이 많지만, 가장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윤 교수의 연구실에 무려 51명의 학생이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부부 과학자의 두 연구실이 거의 하나로 합쳐진 소위 빅랩에서 경험했지만, 실험실 구성원은 대부분 지도교수의 세밀한 지도가 필요없이 독립적으로 연구가 가능한 박사후연구원이었고, 박사과정 학생은 4명도 채 되지 않았다. 박사후연구원의 숫자도 두 실험실을 합쳐 20명이 되지 않았고, 5명 정도의 정규직 스태프 과학자들이 실험실에 상주하며 학생과 박사후연구원의 연구를 지원하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실제로 두 교수가 지도하는 박사 과정 대학원생은 교수당 2명 정도였던 셈이다. 아마 필자가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하던 실험실이 미국 내에서도 가장 큰 생명과학 연구실에 속할 것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연구실의 적절한 규모가 무엇인지에 대한 과학적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참고기사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작은 과학이 아름답다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33328). 2015년 영국의 의생명과학분야 실험실에서 수행된 분석은, 실험실 구성원이 일정규모를 넘어가면 영향력 있는 논문의 출판에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난다는 점이 입증됐다. 출판 논문의 숫자는 실험실 규모가 10명을 넘어가면 더이상 증가하지 않았고, 영향력 있는 연구는 약 10~15명 사이의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해당 연구보고서는 가장 이상적인 연구실 규모는 박사후연구원을 주축으로 구성된 10여명 안팎의 구조라고 제안한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분자생물학과 학과장인 설리 틸먼 교수는 하워드 휴즈의학연구소(HHMI)가 운영하는 의생명과학 온라인강의 플랫폼 아이바이올로지(iBiology)에서 ‘의생명과학분야의 맬서스적 딜레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맬서스의 비극'은 식량의 증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수를 따라잡지 못하는 암울한 미래다. 하지만 틸먼 교수가 말하는 의생명과학계의 맬서스적 딜레마는 박사 학위자의 숫자는 엄청나게 증가하지만 이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자원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을 가르킨다. 공장형 실험실은 바로 이런 맬서스적 딜레마의 끝에서 등장하는 비극으로 볼 수 있다.

맬서스가 내놓은 암울한 예측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틀렸지만, 인류를 구한 과학계 스스로는 맬서스의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과학자사회는 자신의 전공을 한 걸음만 벗어나면, 세상에서 당연한 상식조차 깨닫지 못하는 집단이다.  출처 미국국립과학재단(NSF) 

그나마 자원이 풍족한 미국의 사례를 보자. 미국의 공학자인 바네바 부시의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가 미국이 미국립보건원(NIH)을 중심으로 의생명과학 분야의 최강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1945년 이후 미국에서 의생명과학을 전공한 사람은 가장 풍요로운 세기를 맞았다. 과학기술예산은 모든 정부에서 최우선적으로 배정됐고 과학기술 예산을 두고 국회와 행정부 사이에서 로비를 할 수 있는 미국과학재단(NSF)의 존재 또한, 이런 과학의 세기를 가능하게 했다.

문제는 이 풍요의 세기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의생명과학분야의 박사학위자의 숫자에 있다. 1980년대 이후 의생명과학분야 박사학위자는 매년 약 6000명 수준에서 2015년에는 1만2000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한국, 일본, 중국, 유럽을 모두 포함하면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의생명과학분야 박사학위자의 증가추이. 출처 미국국립과학재단(NSF) 

이들 박사학위자 모두가 연구직을 선택한다고 가정하면, 연구실 운영을 위한 연구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미국립보건원(NIH)의 연구비는 15년이 넘도록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즉, 21세기부터 미국의 연구개발비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멈추고 국가재정의 한계치에 도달한 셈이다. 이는 전세계에서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겪고 있는 동일한 현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독일이나 캐나다 같은 국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박사학위자의 숫자를 일정 수준 이하로 조정하는 정책을 시행중이기도 하다. 문제는 미국식 제도를 그대로 따라하는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에 있다.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 숫자 또한 가파르게 증가중이며, 한국의 연구개발비 규모는 국민총소득대비 세계1위 수준으로, 더이상의 증가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연구개발비는 대부분 국가재정에서 충당한다. 그리고 그 규모는 이미 20세기말 최대치에 도달했다. 정부가 연구개발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출처 미국의과학대학협회(AAMC)

틸먼 교수는 연구개발비 및 박사학위자를 위한 일자리는 정체되어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박사학위자의 숫자가 일종의 병목현상을 만들어냈고, 현재 의생명과학계를 비롯해서 많은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학력자의 비참한 고용실태를 대변한다고 말한다. 파이프라인의 중간에 쌓인 적체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이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게 이 문제를 분석한 대부분의 학자들이 합의한 결론이다. 

한국의 박사학위자 숫자는 가파르게 증가중이며, 이공계열 박사학위자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지속가능한 실험실로의 변화

공장형 실험실은 이런 맬서스적 딜레마의 최종 도착지다. 연구비가 더이상 증가하지 못하니, 대학의 교수채용 숫자 역시 증가하지 않는다. 게다가 현재 한국 대학들은 인구절벽으로 인한 재정난과 예산부족으로 신음하고 있으니, 교수 일자리는 절대로 증가할 가능성이 없다. 교수의 숫자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말은, 연구실 숫자도 증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학은 등록금 및 국가지원금 수취를 위해 대학원생 숫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실험실의 구조는 단 한 명의 교수가 극소수의 연구원으로 실험실을 유지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숫자의 대학원생으로 나타난다. 

윤 교수의 연구실은 이런 맬서스적 비극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윤  교수는 무한경쟁의 과학기술생태계에서 매우 성공한 생존자이고, 따라서 엄청난 연구비를 수주할 수 있었다. 대학은 연구비를 교수 임용에 쓰기보다, 좀 더 쉽게 이익을 낼 수 있는 대학원생에 투자한다. 게다가 두뇌한국21(BK21) 같은 과제에 쉽게 선정될 수 있는 서울대에게 대학원생은 무료로 공급받을 수 있는 인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잘 나가는 실험실에 엄청난 숫자의 대학원생이 몰리는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학생들의 복지와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학교가 연구실 규모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대학원생이 제대로된 교육을 받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만, 상업적 이익에 눈이 먼 대학들은, 그런 한가한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최고의 대학, 최고의 학회, 최고의 교수에게서 등장한 최악의 표절사태에서 한국 교수사회와 대학이 깨달아야할 교훈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안은 대학원 연구실의 규모와 구조가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변혁되어야 한다. 이런 변혁은 대학과 정부가 의지를 가진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실현된다면 반드시 연구개발경쟁력의 상승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묘안이기도 하다. 지속가능한 연구실을 위한 개혁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실과 실험실 인원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야 한다. 세계최고의 생명과학기초연구소인 하워드휴즈연구소 자넬리아연구소는 교수 한명당 테크니션을 포함 오직 5명의 소그룹 연구를 지향한다. 연구를 확장하고 싶다면, 공동연구가 가능한 또다른 소그룹을 만드는게 자넬리아의 전략이다.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자넬리아와 정확히 반대의 길, 즉 한 명의 단장 밑에 100명에 가까운 연구원을 몰아주는 구조를 선택했다. 어떤 실험이 과학경쟁력에 더 좋은 구조인지는 시간이 밝혀줄 것이다.

둘째, 박사후연구원의 급여가 혁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교수 일자리수가 제한된 상황에서, 비정규직 포닥의 처우 문제는 심각하다 못해 비참할 정도다. 이들에 대한 처우가 향상되지 않는한, 뛰어난 이공계 인재의 대학원 유입은 기대할 수 없다. 또한 노벨상을 수상하는 연구의 대부분이 바로 이 포닥 시기의 젊은 연구자들에게서 등장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포닥의 급여 현실화, 이미 스탠퍼드대와 미국의 주립대들은 포닥 급여의 하한선을 명시하고, 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셋째, 학생은 줄이고 정규직 스태프 연구원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한국의 석박사급 스태프 연구원의 처우는 정말 처참할 정도다. 하지만 이들이 바로 실험실의 문화를 만들고, 실험실을 돌아가게 만드는 엔진이다. 한국 과학자사회는, 모든 박사학위자가 교수가 되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훌륭한 스태프 연구원의 고용을 늘리고, 이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넷째, 대학과 연구소는 경험 있는 박사급 연구원을 통해 코어 퍼실리티를 통한 연구를 지향해야 한다. 미국식 연구실 운영은 코어 퍼실리티가 아니라, 모든 연구실이 각자 필요한 기계를 구매하고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맬서스식 비극은 가속화할 뿐이다. 

공장형 실험실은 과학계가 겪는 맬서스적 비극의 귀결이다. 게닥 이런 구조에선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대학과 교수의 자격

한국의 교수사회와 대학이 경청해야 할 부분은 바로 ‘투명성의 보장’이라는 항목이다. 교수와 대학은 맬서스적 비극에 매몰되고 있는 과학계의 현실 및 해당 대학원과 연구실의 현실을 신입생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윤 교수 연구실에서 논문표절을 시도한 학생이 소속된 연구실이 50명이 넘는 공장형 실험실은 아닌지, 교수와의 개인면담이 얼마나 가능한지, 각자 알아서 논문을 쓰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정보를 제공받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윤 교수는 해당 사건에 대한 레딧 게시판에서 사건에 대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다. 그 레딧 게시판 아래에 한 네티즌이 답한 글이 인상적이라 번역해본다. 한국 교수사회의 자성을 촉구한다.

“나는 사람들이 절망적이고 고립되어 있을때 주로 표절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표절이라는 행동에 덜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는 좋은 조언이 표절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사건은 당신이 조언자로서 실패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윤성로 교수의 레딧 글 캡쳐 (https://www.reddit.com/r/MachineLearning/comments/vjkssf/comment/idnq1ww). 김우재 제공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김우재 보통과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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