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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의 무비]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끝까지 사랑하는 법

김세윤 입력 2022. 06. 30.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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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아빠가 당신을 데리러 온다면서 옷을 입혀달라고 했다.

"오빠는 오빠를 끔찍이 아껴주던 엄마를 잃는 거잖아. 난 나를 이해 못해주던 엄마를 잃는 거야." 슈웅, 하늘 높이 솟아오른 그 말이 펑, 폭죽처럼 터져 두 사람 위로 쏟아져 내린다.

"왜 엄마가 연락 끊었어요?" "우리 자주 연락해." "아니잖아요." 적당히 둘러대려는 시도는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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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의 비장의 무비] 〈컴온 컴온〉
감독:마이크 밀스
주연:호아킨 피닉스, 우디 노먼, 가비 호프만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 아빠가 당신을 데리러 온다면서 옷을 입혀달라고 했다. 조니(호아킨 피닉스)가 옷을 챙겨주고 있을 때, 동생 비브(가비 호프만)가 들어와 짜증을 냈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어떡해?” “왜 안 되는데? 그냥 좀 맞춰드려.” “오빤 다 맞춰주기만 하고 싫은 소리 하는 건 평생 내 몫이고.” “네가? 평생 그랬다고?” “그래. 오빤 늘 속 편했지.”

서로 날 선 말을 주고받다가, 결국 동생이 쏘아 올린 한마디. “오빠는 오빠를 끔찍이 아껴주던 엄마를 잃는 거잖아. 난 나를 이해 못해주던 엄마를 잃는 거야.” 슈웅, 하늘 높이 솟아오른 그 말이 펑, 폭죽처럼 터져 두 사람 위로 쏟아져 내린다. 감정의 파편이 마음 곳곳에 박힌다. 그로부터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조니는 비브의 아홉 살 아들 노먼(우디 노먼)과 함께 있다.

“왜 엄마가 연락 끊었어요?” “우리 자주 연락해.” “아니잖아요.” 적당히 둘러대려는 시도는 실패다. 말문이 막힌다. 동생이 쏘아 올린 한마디가 폭죽처럼 터져 쏟아져 내리던 그때를 다시 돌아볼밖에. 동생에게 미안했지만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그때의 자신을 새삼 탓할밖에. 1년 만에 처음 전화를 걸었다가 덜컥 동생의 아이를 며칠 봐주기로 한 결정을 첫날부터 벌써 후회할밖에.

처음엔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감당하는 일이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어른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무척 많으면서 어른이 하는 질문에는 대답하기 싫어하는 아이. 툭하면 눈앞에서 사라져 놀래켜놓고 혼자 재밌어 죽는 아이. 낮엔 말을 안 듣고 밤엔 잠을 안 자고 어제는 심하게 흥분되어 있다가 오늘은 한없이 가라앉길 반복하는 아이. 오은영 박사님의 솔루션이 시급해 보이는 금쪽이 조카 때문에 점점 지쳐가는 하루하루.

그런데 뜻밖에도 조니는 그 ‘하루하루’마다 인생을 배운다. 다시 어른이 된다. 이미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진짜 어른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끝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조니가 배워가는 그 모든 것을 영화를 보는 우리가 함께 익혀간다.

75세에 커밍아웃한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로 영화 〈비기너스〉를 만들고, 어머니와 누나들 이야기로 영화 〈우리의 20세기〉를 만든 마이크 밀스 감독이, 이번엔 아이를 키우며 품은 질문과 생각을 영화 〈컴온 컴온〉에 담았다. 우리,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미래가 불안하고 암울해 보일 때마다 떠올리는 이 질문에,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하고 작게 속삭여주는 영화였다. 섬세하고 사려 깊고 아름답고 부드러운 마이크 밀스의 시네마가 다시 한번 내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는 하루였다. 이 찬란한 흑백영화가 나의 눅눅한 초여름을 다시 따뜻한 봄날로 바꿔놓았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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