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논의, 연령만 낮추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나경희 기자 2022. 6. 30.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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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촉법소년 연령 문제를 꺼내들었다. 2020년 소년범 중 전과가 없었던 '0범'의 비중이 약 67%, 1범이 10.3%, 9범 이상이 5.9%였다. 현재 교정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촉법소년의 나이 제한을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국회사진취재단

촉법소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6월8일 법무부 주례 간담회에 참석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촉법소년 연령 기준 논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달라”고 언급한 이후부터다. 이튿날 한 장관은 기자들을 만나 “촉법소년 연령 조정은 국민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흉포화되는 소년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촉법소년 연령 완화는 대선 공약 사항이다. 20대 대선 당시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제외한 양당 후보는 촉법소년 나이 제한을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했다. 현재 ‘만 10~14세 미만’인 촉법소년의 범위를 ‘만 10~12세 미만’으로 좁히겠다는 공약이었다.

흔히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망을 빠져나가는 무법자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설명이다. 대한민국 형법 제9조는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만 14세 미만인 사람은 형법에 따른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을 받는다. 벌금·집행유예·징역형 등의 형벌을 수강명령·보호관찰·소년원 입소 등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가장 무거운 보호처분은 소년원에서 최장 2년까지 생활하는 ‘장기 소년원 송치’다.

소년법에서 보호처분이 적용되는 대상은 만 10세 이상부터 만 19세 미만까지다. 다시 말해 만 10세 미만일 경우(범법소년) 형사처벌도 보호처분도 적용받지 않는다. 만 10세 이상부터 만 14세 미만일 경우(촉법소년)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만 14세 이상부터 만 19세 미만일 경우(범죄소년) 형사처벌도 보호처분도 받을 수 있다. 만약 형사처벌을 받게 되면 일반 교도소가 아닌 소년교도소에서 형을 살게 된다는 점만 다를 뿐, 평생 전과기록이 남는 건 마찬가지다.

이 중 특히 만 10~14세에 해당하는 촉법소년은 자주 사회적 논란이 됐다. 범죄를 저질러도 보호처분에 그친다는 점을 악용하는 일부 청소년들 때문이었다. 2020년 3월에는 중학생 8명이 렌터카를 훔쳐 달아나다 오토바이를 탄 배달원을 치어 사망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해당 사건 가해자들을 엄중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원에 동의했지만 결국 이들은 모두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보호처분을 받았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사람들은 전체 비행 건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비행을 저지르는 연령대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법원의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전체 소년사건 중 14세 미만이 저지른 사건의 비율은 2011년 11.2%에서 2020년 13.6%로 늘었다. 2022년에 발표된 ‘형사미성년자 기준 연령 하한에 대한 고찰(박지혜·이수정)’ 논문에 따르면 특히 만 10세(2011년 51명→2020년 66명)와 11세(2011년 197명→2020년 239명)에 해당하는 촉법소년이 꾸준히 증가했다.

그렇다면 촉법소년 연령대를 낮추면 어떨까? 실제로 소년범죄 문제가 해결될까? 과거 부산가정법원에서 8년 동안 소년재판을 담당했던 천종호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는 6월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형사성년 연령을 12세로 낮춘다고 해도 11세 이하의 촉법소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라고 썼다. 단순한 연령 하향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소년범에 대한 처벌 강화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소년들에 대한 수용시설의 확충과 처우 개선 등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소년범 중 전과가 없었던 ‘0범’의 비중이 약 67.0%였고, 다음이 1범(10.3%), 그다음이 9범 이상(5.9%)이었다. 연령 조정을 논하기 이전에 현재 교정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14세 미만 소년사건 늘어나는 추세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연령 하향만으로는 눈에 띄는 교정 효과를 얻을 수는 없으리라 예상했다. ‘촉법소년인데 어쩔 거야’ 식의 도덕적 해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엄벌이 실제 교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의미다. 지금도 만 14세 이상이면 형사처벌을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소년교도소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 교수는 “판사 입장에선 열네 살도 교도소 보내기가 어려운데 열두 살, 열세 살은 더욱 부담스러울 거다. 결국 집행유예가 늘어날 텐데 그렇게 되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함께 범죄를 저지른 주범은 구치소에서 6개월 있다가 집행유예를 받는데, 종범은 2년 동안 소년원에서 지내야 하는 보호처분이 나올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6월8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사진취재단

이수정 교수는 소년사법절차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려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로 ‘통합가정법원’ 도입이 있다. 통합가정법원이란 지금과 같이 일반법원에서 형사처벌을, 가정법원에서 보호처분을 하는 게 아니라 한 가정법원에서 형사처벌과 보호처분을 모두 내릴 수 있는 제도다. 이 교수는 “보호처분을 받으러 소년법원에 왔다가 알고 보니 사안이 너무 심각해서 다시 형사법원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형사처벌을 받으러 일반법원에 왔다가 너무 어려서 다시 가정법원에 가기도 한다. (기관 간에 사건을 넘기고 넘겨받는) 기간이 짧지 않다. 그사이에 아이들은 귀가해서 보복 폭행을 하기도 하고 다시 성매매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런 공백을 막을 수 있는 통합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6월14일 법무부는 ‘촉법소년 연령기준 현실화 TF’를 꾸렸다고 발표했다. TF는 연령 기준뿐만 아니라 교정·교화 대책, 재범 방지 대책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단지 촉법소년 연령기준만 내리는 건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선 좀 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식한 결과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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