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기업들이 담합하지 않는 한, 폭리가 설 자리는 없다

김영준 경제·경영작가 입력 2022. 06. 30. 09:30 수정 2022. 06. 3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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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경제학자처럼 생각하기
영국 정유사 BP 로고. 최근 유가 인상으로 정유사들이 막대한 이익을 올리자 폭리 논란과 함께 횡재세를 거두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

최근 세계적으로 정유업계가 막대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다. 폭리 논란은 유가(油價)뿐 아니라 돼지고기, 야채 등 식료품 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한다.

그런데 생필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 입장에서 잠시 생각해보자. 이런 상품들은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높기 때문에 기업들은 가급적 가격을 낮게 유지할 유인이 존재한다. 가격을 임의로 높게 책정하면 경쟁사들이 가격을 조금만 낮춰도 시장점유율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기업들은 팔 수만 있다면 상품을 최대한 많이 만들려는 경향성이 있다. 고정비는 정해져 있기에 상품을 많이 만들수록 상품 한 단위당 생산 비용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이 폭리를 취하기 위해 고의로 공급량을 줄이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재고 압박이 없는 이상 상품은 최대한 많은 양이 시장에 풀리게 되고, 가격은 완전경쟁 시장가격으로 형성된다.

만약 A사가 폭리를 취하기 위해 가격을 올렸다고 가정해 보자. 경쟁사 B가 가격을 올리지 않기만 해도 소비자들은 가격이 더 저렴한 B사 상품으로 몰릴 것이다. 이 경우 B사는 시장점유율도 늘어나는 데다 그만큼 생산이 더 늘어나면서 비용은 더욱 하락한다. 기업들이 담합이라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한 폭리라는 초과 이익을 거두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왜 소비자 눈에 폭리로 보이는 현상이 종종 발생할까. 답은 가격 변동성에 있다. 비용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시장가격의 변동성이 클 경우 기업이 큰 이익을 보거나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이런 높은 가격 변동성은 식품과 원자재의 전형적 특징이다. 장기 평균으로 보면 비용에서 약간의 이익을 더 붙인 정도이지만, 단기간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고 엄청난 이익을 볼 수도 있는 게 이런 시장의 특징이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폭리에 가까운 이익을 내는 정유업체도 장기적인 영업 이익률은 일반 제조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이른바 ‘폭리 기업’에 이익 상한 한도를 부여하면 장기 평균 이익률이 하락해 손실 기간에 부도가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생산 기업이 무너지는 것이 공급과 가격 상승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생각해보자. 폭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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