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물뚝배기..양푼비빔밥..솥뚜껑 삼겹살..군침 도는 한그릇, 이름값 하네

기자 입력 2022. 6. 30. 09:35 수정 2022. 6. 3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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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가리 매운탕
자루소바
양은냄비 비빔밥
솥뚜껑삼겹살. 무쇠 솥뚜껑 위에 삼겹살을 올려 굽는 게 유행처럼 번지면서, 이제는 아예 솥뚜껑의 재질과 모양을 그대로 본뜬 불판이 나온다.

■이우석의 푸드로지- 조리도구서 이름 딴 음식

어복쟁반·철판볶음·도마고기

그릇만으로 재료·조리법 유추

고유 음식명으로 굳어지기도

中 훠궈는 ‘끓는 냄비’ 뜻하고

日의 돈부리·츄는 ‘덮밥’ 의미

조리도구 자체가 메뉴로 불려

요리의 이름 중에는 식재료와 조리법을 앞세운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 김치볶음밥, 어향가지, 설로인 스테이크. 대부분의 요리 이름은 이런 식. 매우 직관적이라 따로 설명할 수고가 없다. 오늘 먹은 음식도 그럴 것이다. 때로는 지역명을 붙인다. 시카고 치즈케이크, 전주비빔밥, 평양냉면,무교동 낙지나 신당동 떡볶이. 이럴 땐 또 유명세와 경험 학습효과에 의해 그것이 어떤 음식이며 대략 어떻게 조리돼서 나올지 곧잘 알아보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와는 또 다른 영역이 있다. 바로 조리도구 이름이 음식명이 되는 것이다.

조리도구(또는 그릇)를 말하면 듣는 이가 그 음식의 재료나 조리법, 형태를 유추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는 전골이다. 전골이란 원래 투구를 말하는 전립(戰笠)에서 나온 그릇을 뜻하는 이름이다. 그래서 예전엔 전립골이라 불렀다고 한다.(장지연 ‘만국사물기원역사’ 중에서)

장지연은 전쟁터의 군인들이 무쇠 투구에다 밥을 해 먹어서 유래했다고 책에서 설명했다. 경도잡지(京都雜志)는 쇠그릇 모양이 벙거지 같아 전립투(氈笠套)라고 불렀으며 전립투를 뒤집어 모자챙 부분에 고기를 굽고 움푹 들어간 곳에는 국물과 채소를 넣어 끓여 먹었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숯불 위에 전립투를 뒤집어 올리고 파인 공간에 물을 붓고 파·미나리·무·간장을 넣고 끓이며 가장자리 챙에는 저민 고기를 구워 채소와 국물, 고기를 같이 먹는 요리가 ‘전립골’이라 했다. 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비슷한 레시피가 나온다.

불고기전골, 불낙전골, 곱창전골, 김치전골, 두부전골, 만두전골, 오뎅전골 등을 보면 커다란 냄비(이젠 투구처럼 생기지 않았다)에 각기 다양한 식재료를 넣고 끓여가며 함께 나눠 먹는 음식임을 ‘전골’이란 단어 하나만으로 알려준다.

뚝배기 역시 그렇다. 뚝배기는 진흙을 빚어 구워 만든 오지그릇일 뿐인데 음식명에 뚝배기가 들어가면 대략 어떤 식으로 조리해 나오는지 금세 이해가 된다. 해물뚝배기는 해산물을 많이 넣고 국물이 흥건하도록 끓여 각자 하나씩 먹는 음식이다. 뚝배기불고기 역시 보통의 불고기처럼 나눠 먹는 음식이 아니라 기사식당 같은 곳에서 불고기와 국물을 즐기라고 1인분으로 개발한 메뉴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뚝배기라 하면 곰탕이나 설렁탕, 해장국 등 투박한 국밥류가 저절로 연상되기도 한다. 국밥의 역사가 뚝배기와 함께 시작한 까닭이다.

원래 뚝배기를 의미하는 전북 방언인 ‘오모가리(또는 오모리)’는 전주 한옥마을 한벽루 인근 식당가에서 매운탕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예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튼 식당들이 민물 매운탕을 커다란 뚝배기에 끓여냈던 까닭이다. 이게 유명해지면서 이제 ‘전주 오모가리’라 하면 뚝배기 민물고기 매운탕으로 통용된다.

밥과 나물 등을 양푼에 담아주면 양푼비빔밥이란 이름이 붙는 것처럼 음식명은 특정 스타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팔팔 끓여 바로 냄비째 내주는 우동은 ‘냄비우동’, 돌솥에 끓여나오면 ‘돌솥우동’이 된다. 삶아 썰어낸 고기를 작은 도마에 얹어주면 ‘도마고기’다. 항아리 수제비며 솥뚜껑 삼겹살, 철판볶음이 모두 같은 원리로 메뉴 이름으로 남았다. 신선로나 구절판, 어복쟁반 등은 아예 재료 이름이 빠지고 그릇 이름만 남았지만 헷갈릴 일이 없다.

어떤 조리도구가 특정한 메뉴에 최적화됐을 때야 비로소 이런 공식이 등장한다. 중국의 훠궈(火鍋)도 그렇다. 이름 뜻대로라면 ‘끓는 냄비’에 불과하지만 커다란 솥에 육수를 붓고 다양한 푸성귀나 고기류를 넣어 먹는 음식 문화 자체를 의미한다. 영어권에서도 그대로 핫포트(hot pot)라 부른다. 신기하게도 프랑스 수프 요리 ‘포토푀’(Pot au feu) 역시 훠궈와 똑같은 ‘불 위의 냄비’란 뜻이다.

일본에는 그릇 종류가 메뉴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나베요리가 대표적이다. 나베(鍋)는 냄비를 지칭하지만 식탁에서 국물을 끓이는 요리를 죄다 나베요리(鍋料理)라 부른다. 외국에서 잘 알려진 스키야키나 샤브샤브 등도 모두 나베요리의 범주에 포함된다. 스모선수들이 매일 먹는다는 영양식 창코나베(ちゃんこ鍋), 모둠전골 격인 요세나베(寄せ鍋), 곱창전골 같은 모츠나베(もつ鍋), 소고기 전골인 규나베(牛鍋), 우리의 김치전골을 가져간 김치나베(キムチ鍋) 등이 유명하다.

돈부리(·사발)와 츄(重·여러 겹을 올릴 수 있는 찬합)는 어떤가. 모두 ‘덮밥’을 대신하고 있다. 나고야의 명물 뱀장어 덮밥인 히츠마부시의 히츠(櫃)는 덮밥을 담은 ‘나무바가지’ 이름이다. 자루소바(판모밀)의 자루(ざる)는 대나무 발을 깔고 메밀국수를 얹었단 뜻이다. 차완무시(ちゃわん蒸し)와 도빙무시(土甁蒸し)는 찻잔 계란찜과 주전자찜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양에도 이런 경우가 가끔 있다. 팬케이크(pan cake)야 ‘성문기본영어’만 떼면 어찌 조리했는지 당연히 유추할 수 있는 의미며, 컵케이크는 어디에 담아서 파는지도 알 수 있다.

조리도구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그리스 요리 수블라키의 수블라는 꼬치를 뜻하며, 튀르키예(터키)의 시시와 러시아 샤슐릭 역시 같은 뜻이다. 인도 요리 탄두리 치킨의 탄두르는 인도 전통 화덕을 말한다. 이외에도 거창하게 준비한 디저트나 브런치, 애프터눈티 세트를 의미할 때 ‘3단 트레이’란 이름을 붙여 그 내용과 규모를 짐작하게 하기도 한다. 유럽의 물병 종류인 저그(jug)도 일본에 와서 조끼(ジョッキ)로 변형돼 지금도 맥주 한잔을 ‘한 조끼’라 부르고 있다.

“한잔할까?” 생각해보니 술을 마시자는 이 말 속 ‘한잔’ 역시 물이나 차를 뜻하지 않는다. 부쩍 모임과 약속이 많아진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의 첫 나들이 계절이다. 뚝배기가 됐든 투구가 됐든 콩떡같이 전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메뉴 하나 정해두고 저마다 잃어버린 교류의 세월을 보상받을 시간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어디서 맛볼까

◇만두전골 = 다락정. 서울 삼청동 맛집이다. 만두와 전, 떡, 채소를 넣고 팔팔 끓여낸 전골을 파는 집이다. 전골 본유의 특성으로 완자와 호박전 등을 넣는다. 토장을 육수로 한 전골도 있고 김치만두를 선택할 수도 있다. 반찬도 하나하나 정성이 깃들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131-1. 1만2000원.

◇철판해물짜장 = 순심원. 여수 여행객의 대표 순례코스로 꼽히는 집이다. 철판짜장을 판다. 짜장면을 볶아 지글거리는 철판 위에 낸다. 기름이 타들어 가면서 강한 풍미를 유지한다. 강한 화력 덕에 새우와 오징어 등 해물이 겉놀지 않고 짜장에 푹 묻혀든다. 여수시 교동남1길 5-17. 1만1000원.

◇해물낙지삼합 플레이트 = 선셋101. 영어권에선 모둠을 플레이트라 명명하는 경우가 많다. 미식도시로 인기를 끄는 목포에서도 가장 ‘핫플’로 떠오르는 집이다. 차돌박이와 낙지, 조개 등 각종 해산물을 한판에 차려낸다. 삼합이라 하지만 홍어는 들지 않았다. 목포 해양대학로 59 1층. 5만7000원.

◇돔베고기 = 제주도감.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양용진 원장이 운영하는 오리지널 제주 음식점이다. 돼지갈비와 볼살, 항정살 등 다양한 부위를 삶아 도마(돔베) 위에 썰어 내는 도감 한 상이 있다. 잔칫날 고기를 써는 사람이란 뜻의 ‘도감’은 야들하고 풍미가 가득한 갈빗대부터 차례로 다채로운 부위를 각각의 소스(소금)와 함께 즐길 수 있다. 메밀국수, 고기국수, 접짝뼈국 등 정통 제주 음식도 판다. 제주 연북로 257. 6만2000원.

◇오모가리 = 한벽집. 50년째 한옥마을 전주천변에서 오모가리탕을 줄곧 해 온 노포. 화려한 상차림과 더불어 민물고기 매운탕과 민물새우탕을 뚝배기에 끓여 낸다. 시래기도 넉넉히 들었고 따로 밑국물을 잡아 국물의 풍미가 좋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평상에서 즐기는 분위기도 일품이다. 전주 완산구 전주천동로 4. 3만6000원(2인).

◇쟁반 = 남포면옥. 서북지방 음식이다. 어복쟁반인데 그저 쟁반이라 하면 안다. 저며낸 소고기 사태, 유통, 채소를 육수에 천천히 익혀 먹는 정통 평양식 메뉴다. 고기와 채소를 건져 먹은 후 만두와 떡, 냉면 사리를 넣어 먹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중구 을지로3길 24. 6만5000원부터.

◇돌우동 = 만미정. 창원 마산 구도심에서 돌냄비우동으로 오랜 시간 인기를 끌어온 집. 마지막 젓가락까지 열기가 식지 않는 돌우동은 쫀쫀한 어묵에 대추, 맛살, 밤까지 든 고급 우동이다. 달걀을 풀어 고소한 맛을 내는 국물을 싹 비우고 나면 한동안 든든하다. 돌비빔밥도 있다. 창원 마산합포구 불종거리로 27-1. 9000원.

◇돌솥밥 = 상호도 그저 돌솥밥집이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유명한 맛집이다. 김치찌개와 순두부찌개를 주문하면 돌솥에 지은 밥이 따라 나온다. 계란프라이와 고추장, 나물을 담은 그릇에 비벼 먹는다. 미더덕과 꽃게로 끓인 된장찌개와 순두부를 선택할 수 있다. 부산 중구 광복로37번길 7-1. 7000원.

◇자루소바 = 유림면. 대나무 발에 올린 메밀국수를 뜻한다. 우동이든 메밀국수든 일단 자루에 올렸다 하면 국물 없이 똬리를 튼 면 사리를 상상할 수 있다. 유림면은 1962년부터 서울 서소문을 지켜온 노포. 메밀국수와 냄비국수를 판다. 주문 즉시 심이 살도록 살짝 삶아낸 점박이 메밀국수를 집어 살얼음 낀 장국에 찍어 먹으면 메밀향이 입안에 퍼진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139-1.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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