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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치는 이용규, 21세기 백인천' 그게 바로 이정후랍니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배지헌 기자 입력 2022. 06. 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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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이정후, 14홈런 14삼진으로 홈런/삼진 1대 1 도달
-역대 홈런/삼진 1대 1 이상 타자는 1982년 김봉연, 백인천 두 명뿐
-38년 동안 사라졌던 홈런/삼진 1대 1, 그 어려운 걸 이정후가 해냅니다
-이용규, 김선빈급 컨택율에 홈런까지..약점이 없는 타자 이정후
이정후의 홈런/삼진 비율은 1대 1이다(사진=키움)

[스포츠춘추]


홈런에 대한 로망이 없다면서 연일 홈런을 펑펑 쏘아 올린다. ‘홈런 치려면 타율을 희생해야 한다’거나 ‘홈런의 반대급부는 삼진’이라는 오래된 상식도 이정후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 리그 역사에 남을 경이로운 시즌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정후는 지난 28일 고척 KIA전에서 시즌 14호 홈런과 함께 또 하나의 특별한 기록을 달성했다. 시즌 홈런 14개에 삼진 14개로 홈런과 삼진 비율이 정확히 1대 1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홈런/삼진 1대 1 타자는 역대 단 2명…1982년 김봉연-백인천

역대 홈런/삼진 비율 최상위 10명. 이정후는 1982년 김봉연, 백인천 이후 첫 홈런/삼진율 1대 1에 도전한다(통계=스탯티즈)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려면,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이후 역대 타자들의 홈런/삼진 비율을 살펴보면 된다. 리그 40년 역사상 홈런/삼진 비율 1.00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이정후 이전에 딱 2명 밖에 나오지 않았다(200타석 이상). 1982년 해태 김봉연과 MBC 백인천이다. 이후 38년 동안 나오지 않았던 기록에 올 시즌 이정후가 도전하고 있다.


김봉연은 1982년 원년 홈런왕이다. 그해 74경기에서 22홈런으로 리그 유일한 20홈런 이상 타자로 남았다.


홈런만 잘 친 게 아니라 콧수염도 멋지고, 타격 정확성도 좋았다. 실업야구 출신 베테랑이었던 그는 타율 0.331에 출루율 0.405, OPS 1.040을 기록하며 리그 투수들을 가지고 놀았다. 무엇보다 홈런 22개를 칠 동안 볼넷 28개에 삼진은 16차례만 당해, 삼진보다 많은 홈런-볼넷을 기록했다.


백인천은 역사상 유일한 4할타자다. 일본프로야구 강타자 출신인 백인천에게 막 아마추어 티를 벗은 한국 투수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72경기에서 19홈런을 칠 동안 삼진은 단 17개. 타율 0.412에 출루율 0.497을 기록하며 리그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남겼다.


원년에 2명 나온 홈런/삼진 비율 1대 1 이상 타자는 이후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다. 김봉연은 1983년에도 22홈런, 28삼진으로 1대 1에 근접한 비율을 기록했지만 원년만큼의 기록은 아니었다. 1992년 ‘악바리’ 빙그레 이정훈도 25홈런 27삼진으로 아깝게 1대 1 달성에 실패했다.


이정후의 아버지인 이종범 LG 퓨처스 감독도 거의 1대 1에 근접한 기록을 낸 적이 있다. 1995년 이종범은 방위병으로 복무하면서 홈에서 열린 63경기에 출전했다. 16홈런에 20삼진으로 거의 1대 1에 가까웠지만 삼진이 홈런보다 4개 많아 달성 실패.


2003년에는 현대 심정수가 53개 홈런을 날리는 동안 삼진은 단 63차례만 기록해 1대 1에 상당히 근접한 숫자를 냈다. 심정수는 역대 홈런/삼진 비율 Top 10 가운데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20년이 지나 올 시즌 이정후다. 이정후는 30일 현재까지 14홈런 14삼진으로 홈런/삼진 비율 1.00, 역대 타자 가운데 세 번째로 1대 1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볼넷도 37개 골라내 2.64개의 높은 볼삼비를 기록 중이다. 여기에 타율도 0.351로 리그 2위다. ‘약점이 없는 타자’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성적이다.


홈런을 노리지 않고 타격하면서 많은 홈런을 날린다는 게 이정후 타격의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그는 “홈런에 대한 로망이 없다. 그보다는 안타나 타율에 대한 로망이 있다” “지금은 OPS를 보는 시대라서 타율이 높거나 안타를 많이 치지 않아도 좋은 타자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타율과 안타가 갖는 상징성이 있다. 야구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홈런을 노리고 타격하면 헛스윙이 많아진다. 홈런을 생각하면 이상한 팝플라이가 많이 나왔다. 그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서, 그걸 더 특출나게 하는 편이 낫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내게 홈런을 원하지도 않는 것 같다”는 지론을 밝혔다. 최근 인터뷰에선 홈런 스윙을 하면 그날 아버지 이종범에게서 ‘육두문자’ 메시지가 날아온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홈런을 의식하지 않는데 어느새 박병호(24홈런)에 이은 리그 홈런 2위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고척 외야에 ‘여기로 날려줘’라는 팬들까지 등장했다. 또 많은 홈런을 치면서 자신의 장점인 높은 타율과 적은 삼진, 낮은 헛스윙 비율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김선빈급 컨택율, 이용규급 커트 능력, 그런데 27홈런 페이스…이게 이정후다

2015년 이후 헛스윙율 최소 Top 10 순위. 이정후와 이용규, 김선빈의 이름만 보인다(통계=스탯티즈)

올 시즌 이정후의 헛스윙 비율은 4.6%로 리그 최소 1위. 이는 10개 구단 체제가 출범한 2015년 이후 5번째로 낮은 헛스윙 비율이다. 이 기간 리그 최소 헛스윙 비율 Top 10 명단은 이정후와 김선빈, 이용규 세 타자가 차지하고 있다.


올해 이정후의 타석 세부지표는 전성기 이용규, 김선빈의 지표와 상당히 유사하다. 93%의 컨택율과 92.9%의 2스트라이크 이후 커트율은 선수 이름을 가려놓고 보면 이용규 기록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


그런데 이용규식 타격을 하면서 홈런은 벌써 14개나 때렸다. 144경기로 환산하면 27개 홈런을 칠 기세다. 전성기 이용규가 용규놀이하면서 홈런까지 많이 날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 불가능한 일을 올 시즌 이정후가 하고 있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 어쩌면 리그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타자의 전성기를 생생하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배지헌 기자 jhpae117@spoc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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