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5번 조우..韓 발표와 달리 日은 "극히 짧은 만남"

이영희 입력 2022. 6. 30. 15:44 수정 2022. 6. 30. 17: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현장에서 이틀 간 다섯 차례 대면했다. 하지만 한국 측이 양국 정상의 만남을 자세히 설명하며 의미를 부여한 데 반해 일본 측은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 양국의 입장 차가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NATO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서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나토 정상회의에서 두 정상이 처음 마주한 것은 28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8시 30분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주최한 환영 갈라 만찬에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가 먼저 윤 대통령에 다가와 "대통령 취임과 지방선거 승리를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넸고 이후 3~4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기시다 총리는 "한·일 관계가 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고도 밝혔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통령실 발표가 나올 때까지 두 정상의 만남을 알리지 않고 있다가 29일 오전 이소자키 요시히코(磯﨑仁彦) 관방부(副)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두 정상이 "극히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극히'라는 단어를 사용해 만남 시간이 길지 않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소자키 부장관은 이어 "기시다 총리는 매우 어려운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한국 측이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내용으로 소개한 반면, 일본은 '한국에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식으로 전달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29일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일본의 일관된 입장을 토대로 윤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 측과 긴밀히 의사소통하겠다"고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에 대해 "양국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며 친밀함과 신뢰를 드러낸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이소자키 부장관은 30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선 기시다 총리가 먼저 말을 걸었다고 발표했는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 그런 사실은 알지 못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기시다, 참의원 선거 앞두고 몸 사려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는 다음 달 1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적인 유권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해석했다. 아사히신문은 30일자에서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이 만났지만, 발표문 등에서는 양국 간의 미묘한 입장 차가 드러났다고 전했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9일(현지시간) 마드리드 이페마 컨벤션센터에서 아시아 태평양 4개국 정상, 옌슨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기념촬영을 마친 뒤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당초 나토 정상회의에서 정식 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였지만 기시다 정부는 "참의원 선거 전 한국과 회담해 유화 분위기를 연출했을 경우, 국내 보수계로부터 비판 받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회담을 보류시켰다. 그러면서도 양국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미국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짧게나마 두 정상이 인사하는 모습을 연출했다는 해석이다.

요미우리신문도 한·일 정상의 만남과 관련해 "한·일 관계 개선을 향한 첫걸음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관계 정상화의 길은 험난하다"고 진단했다.

한국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환영 갈라 만찬 이외에 AP4(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회담, 한·미·일 정상회담,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 기념 촬영까지 다섯 차례 대면했다.

한편 26~28일 독일 엘마우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마치고 28일 오후 마드리드에 도착한 기시다 총리는 29일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회의 후 즉시 귀국길에 올랐다. 기시다 총리는 회의에서 중국을 염두에 두고 "동·남중국해에서 힘을 배경으로 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며 "(그런 시도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국제 사회가 결속해 보여줘야 한다"고 발언했다.

기시다 총리는 G7이 열린 독일에서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 등과 단독 회담을 가졌지만 스페인에선 일정 상 개별 회담을 열지 않았다. 현직 총리가 국정 선거 기간 중 장기간 일본을 비우는 데 대한 비판을 의식해 귀국을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