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장르다" 예술 경계 허무는 늦깎이 작가

이한나 입력 2022. 6. 3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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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킴 아라리오 회장 개인전
매일 먹던 커피·들기름도
미술 재료로 활용하는 괴짜
천안 갤러리에 60여점 전시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본인 조각작품 옆에 선 씨킴.
아끼던 분재가 말라 죽자 아쉬운 마음에 브론즈로 캐스팅했다. 빛깔을 더하니 더욱 실제 같다. 죽은 식물이 작품 'The pot-planting'(2022)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이 작품을 만든 씨킴(71)은 김창일 아라리오갤러리 회장의 여러 '부캐(보조 캐릭터)' 중 하나다. 그는 천안버스터미널을 개발하고 경영하는 사업가, 국내 대표 미술품 컬렉터(수집가)이자 갤러리스트, 어떤 재료든 예술로 둔갑시키는 작가, 옷을 마음껏 리폼해 입는 패셔니스타 등 '다중 인생'을 산다.

이젠 하루도 빠짐없이 작업해 '본캐(본래 캐릭터)' 작가가 된 그가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13번째 개인전 'Overcome Such Feelings'를 열었다. "내가 장르다"고 강조하는 그는 회화, 조각, 설치, 드로잉 등 60여 점을 선보였다. 그는 "미술 장르를 정하는 것에 대한 반항심으로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는 작업을 원한다"며 "삶을 살면서 혹은 작업을 하면서 느낀 긴장감, 두려움, 고통, 기쁨 등을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회화, 조각 등 장르는 물론 재료에 대한 제약도 다 뛰어넘었다. 매일 아침 챙겨 먹던 블루베리나 커피, 들기름, 철가루, 시멘트, 테이프, 본드마저 모두 재료로 둔갑한다. 거침없는 재료 실험으로 형상 표현을 극대화했다. 데이미언 허스트 등 영국 젊은 현대예술가(yBa) 작품을 초기부터 모은 현대예술 수집가답다. 컬렉터로서 신진 작가들과 교유하던 그는 40대 후반부터 직접 예술활동에 나섰다. 인생의 큰 스승이던 모친이 작고한 후 '생명과 영혼'이라는 화두를 분출할 통로가 필요했다.

그는 "좋은 그림은 조화와 생화의 차이를 보여준다"며 "멀리서는 똑같이 아름다운 꽃처럼 보이지만 생화는 가까이에서 생명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컬렉터로 작품을 고를 때도 그런 느낌을 아주 중시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작품에 쓰는 블루베리도 냉동만 고집하고 녹을 때의 색감을 고정해 담으려 한다. 커피도 풍미가 최상일 때 그림 재료로 써야 생명의 느낌을 더욱 살릴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작품에는 인생의 교훈 같은 문장이 많다. 커피로 그린 작품 '무제'(2020)에는 작가 본인이 마틴 루서 킹 목사에게 '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적힌 음반을 전달하는 모습을 담았다. 낯선 환경에서, 세상 냉대 속에서 고통받았던 기억은 알록달록 네온등이 켜진 작품 '고통의 시간 뒤에는 꿈이 따른다'으로 치유되는 듯싶다. 전시를 다 보고 난 후 그를 다시 쳐다보게 된다. 그림에서 거칠지만 강한 젊음의 에너지가 느껴진 때문이다.

[천안 =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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