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경제력 확대가 핵심".. '여돕여' 부스터 GSW가 남긴 것 [정지혜의 빨간약]
여성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 필요성 실감
생생한 성공 사례 보며 자극받아
'여적여'는 옛말..'여돕여'의 시대 활짝
‘이 좁은 한국 땅에서도 만만찮은데, 정말 세계 무대에서 무언가 할 수 있을까.’
일하는 여성으로서 나름대로 자신감 갖고 고군분투 하며 살아왔지만 그래도 내면에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한계이지 않을까’, ‘지금보다 더 나아갈 길이 있을까’와 같은 막연한 생각에 때때로 사로잡혔다. 열심히 기회를 모색하고 최선을 다하면서도 불확실성을 즐기거나 새로운 기회로 확장할 만한 상상력은 갖지 못했던 것이다.
개회사에서부터 아이린 나티비다드 GSW 회장은 “나는 늘 여성이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원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GSW를 기획해 올해로 32년간 이끌고 있는 나티비다드 회장은 이 행사가 문제제기를 넘어 ‘해결책’을 찾는 곳이라고 매번 언급한다. 여성 앞에 더욱 가혹한 현실을 여성들이 제 손으로 헤쳐나갈 실용적 방안을 고민한다는 차원이다.
가부장적 시스템이 강고한 나라일수록 여성들은 이런 사회적 가스라이팅을 나도 모르게 내면화하게 된다. 나의 실제 역량과 별개로 기준을 남성에 둔 채 그들보다 더 강해지는 자신을 은연 중에 경계하기에 이른다. 영향력 있는 여성은 너무 쉽게 마녀사냥을 당하며, 그에 비해 기존 질서 속 ‘적당한 안온함’에 머무르는 여성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사회가 아닌가. 이런 분위기에서 도전보다 도피를 택하는 일은 훨씬 쉽다.
김 회장은 지난 25일 GSW 갈라 디너 연설에서 “제발 우리(GSW)를 활용해달라”고 말했다. MCM이 매번 이 행사를 후원하는 것은 브랜드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도약을 꿈꾸는 각국의 여성들과 연결되기 위함이라는 뜻이다. 1998년 GSW에 처음 연사로 초청받은 김 회장은 당시 만난 세계 여성 리더들에게 엄청난 감명과 격려를 받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전통적 결혼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연이 끊어지는 나라인 한국은 내게 너무 작은 땅이었다”며 “그렇게 세계로 눈을 돌려 MCM을 인수했고, GSW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업에 도움을 줄 여성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일본에서 온 아코 스즈키씨는 2014년 처음 GSW에 참석해 만든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업 상담·강연·SNS 관리 대행 등을 하는 회사(AriNa)를 창업해 운영 중이었다. 그는 이를 계기로 매년 GSW에 와 새로운 사업 인연과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스즈키씨뿐 아니라 네트워크 조찬, 오찬 등을 통해 만난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이유로 여러번 GSW를 찾고 있었다.
이를 비롯해 이번 GSW에서는 젊은 나이에 글로벌 창업에 성공한 CEO들의 이야기, 버려지는 못생긴 바나나를 사업적으로 활용하는 스타트업 등 다양한 역발상 사례, 노점상과의 상생을 ESG 관점으로 풀어내 수익 극대화에 성공한 태국 최대 쇼핑몰 개발업체 씨암피왓 대표이사 등 생생한 여성 기업인의 성공 스토리가 쏟아졌다. 한 마디로 시야가 트이는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조금만 눈을 넓히면 이토록 거대한 기회의 장이 있고, 내 또래의 여성들 역시 활발히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할당제가 마치 남성 역차별의 대표 사례인 양 빈번하게 소환되는 실정이다. 한국이 얼마나 세계 기준에서 뒤쳐져 있는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무의미한 젠더 갈라치기 논의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 아일랜드 참가자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성 평등한 나라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면서도 “그래도 여전히 성별 격차가 있다. 여기서 더 논의를 끌어올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질문한 데서는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여성 이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더 높이려면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고, 가장 낮은 곳은 ‘남성 역차별이니 폐지하라’고 하는 아이러니. 이렇게나 다른 문제제기의 수준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번 행사를 통해 직접 만나 본 김 회장은 여성의 강점을 매우 잘 알고 활용하는 인물이었다. MCM은 현재 여성 65% 남성 35% 성비와 임원 성비 5대 5를 유지하고 있다. 그가 쓴 자서전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에서도 창업 초기 성주인터내셔널 당시 전 직원 400명 중 300명이 여성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성이 지금 시대에 리더로 더 활약해야 하는 이유로 김 회장은 “다문화, 다인종 등 다양성을 더 잘 포용해 경쟁력을 빠르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며 “직감적인 힘이 강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훨씬 잘 받아들인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서 디지털 역량을 갖춰 세계 무대에서 무한한 역량을 발휘하라는 주문이다.
성 불평등과 차별적 대우, 전쟁, 코로나19, 인플레이션 등 남성이 만든 지금의 세상은 여러모로 망가져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여기에 불평불만하는 것이 ‘사치’라는 그의 발언은 오히려 여성의 강인함과 잠재력을 확신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부 남성들이 주장하는 ‘여성은 불평만 하고 해 달라고만 한다’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다. (사실 이는 국제 행사에서 언급하기엔 너무 부끄러운 수준의 발언이다.)
방콕=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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