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코멘터리] '동반자살'아닙니다. '자녀살해'입니다.

오병상 2022. 6. 30.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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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선착장에서 최근 실종된 조유나양(10) 일가족이 탔던 아우디 차량이 인양되고 있다. 2022.6.29/뉴스1

1. 완도 바다속에서 발견된 조유나(10)에 대한 연민이 부모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황으로 보자면,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부모가 어린 딸과 함께 자살한 사건입니다. 흔히‘동반자살’이라 불리던 이 사건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2.‘동반자살’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살해 후 자살’이란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여론입니다.

‘동반자살’이란 가해자(부모) 입장에서 본 동정론입니다. 이는‘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봉건적 사고에서 비롯됐으며, 범죄행위를 온정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결과적으로 방관하게 만듭니다.

3. 갑자기 2년전 판결문이 급소환됐습니다.

2020년 5월 울산지법(재판장 박주영)은 두 살 아들을 살해한 어머니에게 4년형을 선고했습니다. 남편과의 불화에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자살을 시도했는데, 아들만 숨졌습니다. 어머니는 사흘만에 살아났는데 뇌세포 손상으로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4. 판결문은 사회적 무관심을 성토하는 격문입니다. 발췌하자면..

-살해 후 자살은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다.

동반자살이라는 워딩에 숨겨진 우리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온정주의적 시각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살해된 아이들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자살은 가해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다.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사건원인을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해버리는 시각 역시 동의할 수 없다..가해부모에 대한 단죄만으로 이런 범죄를 막을 수 없다..당신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면 우리가 맡아 키우겠다고, 최소한 당신이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우리도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자신있게 공표하고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마지막 호명이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출생의 자유가 없다고 죽음마저 그러하다 말할 수 없다..이들의 미래와 생명은 그 누구도 좌우할 수 없다. 부모라도 그러하다..생물학적 부모인 피고인의 아이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회적 부모이다. 우리가 아들을 잃었다..
참담한 심정으로 애통하게 숨져간 아이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이 이름이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부질없는 기대임을 예감하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끝까지 놓을 수 없는 희망이 있다. 부족한 건 언제나 공감과 행동이다.

5. 박주영 판사의 우려는 그대로 현실로 남아 있습니다. 동반자살이란 이름의 자녀살해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박주영의 기대도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언제나 부족했던 ‘공감’이 구름처럼 피어나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것은 ‘행동’입니다. 그러나 희망과 공감이 생겨나니 행동도 멀지 않을 겁니다.
〈칼럼니스트〉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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